나의 이브 생 로랑에게
피에르 베르제 지음, 김유진 옮김 / 프란츠 / 202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편지도, 앞으로 쓸 글들도 네가 읽을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잘 알아. 그러나 상관없이 써볼 생각이야. 결국 혼잣말에 지나지 않게 되더라도 말이지. 이 편지는 온전히 너를 향한 것, 우리의 대화를 이어 나가는 방법이자 너에게 말을 거는 나의 방식이니까. 듣지도 답하지도 않을 너에게. ​

(본문 중 17p)

이브 생 로랑이 21살 때 처음 만났고, 사업의 파트너이자 연인으로 곁을 지키다 이브 생 로랑이 세상을 떠날 때 눈을 감겨준 사람, 피에르 베르제가 이 책의 저자이다. 이 책은 이브 생 로랑이 떠난 후 장례식에서 읽었던 추도문을 시작으로 피에르 베르제가 이브 생 로랑에게 쓴 편지들을 모았다. <나의 이브 생 로랑에게>는 일반적인 책의 판형이 아니라 시집 혹은 편지지처럼 긴 판형을 가진 책으로, 본문은 날짜를 제목처럼 두고 그 날짜에 쓴 편지글만이 실려있다. 글을 읽을 수신인이 정해져 있다는 것만 빼면 자신의 위치와 안부를 전하고 누군가를 떠올리는 일상을 이야기하고 있어 일기 같은 글이기도 하다. 편지 하나의 분량이 여러 장으로 길어질 때도, 단 한 줄로 그칠 때도 있어 더 그렇다. 

다른 이의 일기나 편지를 엿보는 데는 기묘한 희열이 있다. 대외적인 것 말고, 여기에만 남기고픈 혹은 특정인에게만 하고픈 말들이 쓰여 있을 것 같아서, 아니면 글을 쓰는 이나 받는 이의 깊은 속마음이나 비밀이 한두 개쯤은 발견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 반 걱정 반의 마음으로. 이 편지들에는 그다지 비밀이랄 건 없는 것 같다. 그저 두 사람이 늘 바라던 영원에 대해, 당신이 남기고 간 것들(수집품, 재산, 추억, 업적 등등)을 정리하는 과정에 대해, 젊은 날에 함께 했던 주변 사람들에 대해, 가끔은 현실적이고 가끔은 철학적인 이야기들을 전하며 여전히 당신이 그립다는 마음 또한 담아 쓰여있다.




마지막 편지에 남겨있는 내용을 보면, 어쩌면 이 편지들은 공개하기 위해 쓰인 글일지도 모른다. 떠나기 직전의 고통받고 힘겨워하던 그를 바라보던 사람들이 그에 대해 오해하는 것이 싫어서, 그들이 모르는 더 멋지고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운 모습들이 많이 있다고 알려주고 싶어서, 자신과 그의 일생을 결산하기 위해, 피에르 베르제는 편지를 남겼다. 그 글이 왜 편지의 형식일까 내 마음대로 생각해 보자면, 1. 그를 생각하며 쓰고 싶어서 2. 그가 없다는 외로움과 고통을 줄여보기 위해서 3. 가끔 자신의 마음을 전하던 이브의 편지가 떠올라서(자신도 그에게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


서류를 정리하면서 너의 '특별한 여행'전시회 날 네가 내가 쓴 편지를 다시 읽었어. 눈물을 흘리지 않고는 끝까지 읽기가 힘들더군. 너는 이따금씩 그런 식으로 사랑을 전하곤 했어. 편지 말미엔 이렇게 적혀 있었지. "언제나, 앞으로도 영원히, 너의 이브." 2006년, 네가 죽기 2년 전이었어. 그 편지는, 읽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순정의 극치야. 처음부터 우리는 그 만남이 영원이 되리라는 것을 알았잖아. 편지는 그에 관한 내용이었어.

(본문 중 101p)

​​



이브 생 로랑의 이름은 들어본 적 있지만, 그의 일생이나 업적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별로 없었다. 그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다양한 나라와 도시의 이름이 나오고, 대부분이 유명인사인 그의 주변인들의 이름도 잔뜩 나온다. 나는 책을 먼저 읽고 난 후 그들(저자와 이브 생 로랑, 그리고 책에 등장하는 그의 주변인들)에 대해 검색을 해봤는데, 개인적으로는 최소한의 정보는 알고 책을 보는 걸 추천한다. 이브 생 로랑과 피에르 베르제의 이름을 검색했을 때 나오는 지식백과의 정보 한두개만 읽어봐도 충분하다. 그들의 인생사에서 굵직한 사건들이 편지속에서도 등장하는데 먼저 알고 있다면 '이 얘기가 그 얘기군!' 하며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물론 귀찮다면 생략해도 된다. 책에서 각주로 설명이 되어있는 부분도 있다.) 

피에르 베르제의 말처럼 예술가의 시간은 느리게 흘러서 이브 생 로랑은 이미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넘었지만 그를 기억하고, 그가 만들어낸 패션을 이어가려 애쓰는 재단이나, 그의 옷을 사랑하는 이들 역시 많이 남아있다. 그가 떠난 후로도 꾸준히 사랑을 보내는 연인도 있었다. 그들의 인생을 결산하고 싶었다던 편지에서 이브 생 로랑에 대한 감탄과 찬사와 자랑과 사랑은 있지만, 정작 글쓴이인 피에르 베르제에 대한 내용은 많지 않다. 그 역시 뛰어난 재능과 노력으로 수많은 업적을 이룬 사람이지만 그의 앞에 붙는 수식어 중 '이브 생 로랑의 연인'이라는 수식어가 가장 유명하며 가장 오랜 시간 자리했다고 한다. 이브 생 로랑의 업적과 인생에 대해서는 두 편의 영화와 한 편의 다큐멘터리로도 제작되었지만, 그의 연인이자 든든한 파트너에 대해서는 주목도나 정보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어쩌면 그는 그의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를 자랑스러워하며 열렬한 사랑꾼으로 남기를 바랐을까, 궁금해진다.





※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남긴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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