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로마신화 - 명화와 함께 가장 빠르고, 재미있고, 명확하게 알기
구예 지음, 정세경 옮김 / 도도(도서출판)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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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질문 하나만 해볼까요? 서양화가들은 어째서 그리스신화를 작품으로 즐겨 그렸을까요? 제가 보기에 원인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중략)

원인 2 : 이런 신화가 정말 재미있었으니까요!

한마디로 '겁나게' 재미있었던 거죠. 그리스신화는 피비린내와 폭력, 근친상간, 암투, 동성애가 모두 등장하는 미성년자 관람불가 등급의 영화였거든요!


(본문 중 17p)

항상 흥미롭고 재미있고 막장이기까지 한 신화 이야기는 그 인기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의 머릿속엔 늘 어렴풋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이야기는 들어본 거 같은데 등장인물의 이름은 모르겠거나(길었다는 것만 기억나기도 한다) 신의 이름은 들어본 거 같은데 얽힌 이야기가 이거였나 저거였나 아리송하기도 하다. 많이 들어서 익숙하긴 한데 참 안 외워지는 신과 등장인물들의 이름, 이야기 속의 복잡한 관계성과 방대한 스케일 때문에 읽고 또 읽어도 까먹기 쉽고, 또 그렇기 때문에 읽고 또 읽어도 늘 재미있는 이야기가 바로 그리스 로마 신화다.

이 책의 특징은 참 많지만 그중 내게 가장 크게 와 닿았던 부분은 다양한 크기/굵기의 글자를 넉넉한 공백과 함께 배치하며,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듯 서술자가 친절한 구어체 즉 요즘 말을 구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전에 비슷한 서술체의 책을 읽어본 적이 있는데 출간된 지 10년도 채 되지 않은 책인데도, 예전에 쓰인 재기 발랄한 어투는 어색하고 손발이 오그라들 뿐이고 재미를 위해 넣은 그 당시 최신 유머들이 이제는 썰렁하고 소위 '한물 간' 개그가 되어버려서 웃기도 애매한 문장들의 연속이었다. 결국 그 책은 포기해버렸고 에세이도 조금은 낯설어하는 내가 도전하기엔 어려운 책이었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그 책이 조금 극단적이었지만 그 후로 너무 가벼운 구어체의 문장은 위험하다는 생각을 늘 하곤 한다. '요즘 말'은 언젠가 '옛말'이 되기 마련이라 이 책의 서술체도 역시 조금 걱정이 되었지만, 다행히 유행어나 줄임말 등 특정 계층에서 주로 쓰이는 어휘들이 자주 사용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출간된 직후 바로 지금 읽었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내 예상보다도 술술 읽혔고, 정말 부제처럼 '빠르고 재밌게' 읽은 책이었다.

이 책은 시간순으로 차례차례 모든 이야기를 전해주지는 않는다. 다만 얽히고설킨 신들의 관계나 이야기의 앞뒤 맥락이 이어져야 할 필요가 있는 부분을 위해 아주 순서를 섞어놓지도 않아서 대충 흐름은 시간 순을 따르되 신화의 재밌고 강렬한 이야기나 인물들을 쏙쏙 뽑아 들려준다고 생각하면 된다. 난 비교적 최근(올해 3월 즈음) 시간순으로 잘 배열된 신화들과 명화를 함께 보여주는 책을 읽어서 이 책의 이야기들이 아주 낯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처음 들어보는 듯한(분명 들었거나 읽었지만 기억에서 사라졌을) 이야기와 정보도 꽤 있었다.









가나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에 신들의 관계표나 그리스 혹은 로마식의 이름을 나열한 표가 있다. 그 표들을 본문을 보기 전에 먼저 보면 자신이 신화를 얼마나 기억하고 있고, 신들의 이름 중 어느 이름이 더 익숙한지도 알 수 있다. 비너스가 '여우 같은 여자'였다거나 아폴론은 '잘생겼지만 평생 솔로'라는 식으로 신들을 마치 스타처럼 다루고 그들의 이야기를 가십처럼 꾸며 헤드라인(목차만 봐도 재밌다ㅋㅋ)을 달고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이 재미있었고, 수록된 수많은 명화(정말 많다, 가끔은 조각상의 사진도 있다)들 덕에 명화 감상은 기본에 다양한 화가가 그려낸 같은 인물들을 대조해보거나 그림의 제목으로 쓰인 신들의 이름이 어느 쪽인지(그리스/로마) 확인해보는 재미도 있다.

대부분의 그림에서 한 인물이 가진 공통적인 특징(예를 들어 큐피드의 짝인 프시케에게 화가들이 나비 날개를 그려주었다거나, 북풍의 신은 유괴가 취미이자 특기라서 항상 여자를 끌어안은 모습으로 그려진다는 등)들을 설명해 주는 부분도 좋았다. 맨 마지막에 다룬 별자리 신화 이야기는 앞서 다룬 다른 이야기들에 비해서는 조금 부족한 느낌지만 부록처럼 가볍게 읽기엔 딱 좋았다. 여러모로 평범한 신화 책들과는 차별화되는 장점이자 특징들이 참 많은 책이었다. 그래서 익숙하지만 낯선 신화를 더 재밌게 읽기에 참 적합한 책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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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팽 양 이삭줍기 환상문학 3
테오필 고티에 지음, 권유현 옮김 / 열림원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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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줄거리와 등장인물들은 지금 봐도 꽤 신박한데, 그보다 더 재미있었던 건 서술형식과 서술자의 태도였고 책에 얽힌 실제 이야기도 만만치 않게 흥미로웠다. 책 밖의 이야기를 먼저 하자면 1835년 발표된 이 소설은 프랑스에서는 빅토르 위고, 발자크 등 유명 문인들에게 칭송을 받았고 미국으로 번역되어 출간되는 과정에서는 이 소설이 음란물이다 아니다를 가르는 재판까지 벌어졌다고 한다. 지금 시대에 보아도 드라마 등에서나 나오는 여장남자의 존재는 소설에서 꽤나 강렬하고 매력적인 캐릭터인데, 이 소설의 주인공은 놀랍게도 실제 인물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소설 속 주인공의 이름은 여자일 땐 '마들렌 드 모팽', 남자일 땐 '테오도르 드 세란'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데 여성의 이름은 실제 인물의 이름(마들렌 도비니, 후에 모팽부인이 됨)을 그대로 가져다 쓰고, 남자의 이름은 그녀가 관계를 맺고 그녀에게 검술을 가르쳤던 남자 '세란'의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그 외에도 이 작품이 지닌 문학사적인 의미나 작가 고티에의 문학적 성향 및 해설을 본문 맨 끝에 수록된 작품 해설에서 볼 수 있다. 고전 중에서도 꽤나 독특한 이 작품은 혼자 읽고 끝내기보다는, 작품 해설 및 타인의 평가와 해석들을 적극적으로 찾아보는 게 더 쉽고 재미있게 이 책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일 것 같다.

​​

이 작품은 거의 200년 전에 발표된 소설이고, 신화적 비유가 많고 장식성이 강한 문체에, 서술형식 또한 일반적인 소설의 형식을 따르지 않는다. 그래서 내용의 흥미로움을 떠나 읽는 것이 마냥 쉬운 책은 아니었다. 특히 초반에 달베르가 자신의 모든 것을 숨기지 않고 고백하기로 한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 담긴 구구절절한 연애 사정과 몽상에 가까운 탐미적 가치관은 이 책을 읽을 때 맞는  첫 번째 고비가 아닌가 싶다.(덧붙이자면 내게 최대 고비는 '작가의 말'이었다. 주석이 페이지의 반을 차지하는 경우도 있고, 분량이 무려 77페이지나 된다.) 하지만 달베르 외의 주역들인 로제트와 테오도르가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더 다채로워지고, 실제적인 사건들이 드러나면서 읽는 게 조금 쉬워진다.


이는 달베르의 이야기가 -딱 한 번 로제트와의 대화를 극적 형식으로 더하긴 하지만-독백에 가까운 편지글로만 쓰였진 데 비해, 그 이후의 이야기는 형식이 변경되고 다양한 서술 방식이 함께 쓰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여기서 또 재밌는 점은 서술자가 글에 직접 등장하고 형식이 변경된 것을 고한다는 것. 친절하게 이유까지 밝힌 데다 이 서술자는 후반에 가서도 또 등장한다. 이 의도적이고 돌발적인 서술자의 개입이 나중에 작품 해설을 보고서야 작가의 다양한 실험적 시도와 도발적인 글쓰기 방법이란 걸 알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읽을 때는 우리나라 고전소설(혹은 판소리 소설)과 신소설의 과도기를 보는 듯한 인상을 받아 혼자 좀 웃었다. 어쨌든 이야기의 후반으로 갈수록 더 읽기 쉬워지고 더 재미있어진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이쯤에서 관대하신 독자께서 허락해 주신다면, 여태까지 무대를 독점하고 혼자만 지껄여온 잘난 인물을 잠깐 그대로 몽상에 잠기게 하고, 보통 형태의 소설로 바꾸어보도록 하겠다. 그러나 필요에 따라 극적인 형식도 섞을 것이며, 또 앞서 말한 청년이 친구에게 보내는 서한체로 된 고백도 여전히 사용한 것임을 양해해주기 바란다. 그 까닭은 우리가 아무리 통찰력이 강하고 명민하다 하여도 이 이야기에 관해서는 당사자보다는 아는 바가 적은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본문 중 178p )



오 테오도르, 빨리 창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어요! 아주 캄캄한 어둠 속의 계단을 오르기 시작한 지 벌써 오래된걸요, 그 출구가 막혀 있고, 꼭대기까지 기어올라가야 할까봐 두려워요. 그리고 그 수없이 많은 층계 끝이 닫혀버린 문이거나 돌천장이라면 어떻게 하죠?​

(본문 중 198p)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연인을 꿈꾸는 시인 달베르, 테오도르를 깊이 사랑하지만 이내 좌절하고 애인을 만들며 방탕한 생활을 반복하는 젊은 미망인 로제트, 남자에 대한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모든 것을 알아내겠다는 의지로 남장을 시작한 테오도르(여성일 때의 이름은 '모팽'이지만 이 책에서 그 이름이 언급되는 건 거의 드물기에 테오도르라는 이름이 더 익숙하다). 세 사람의 자세한 이야기는 책을 읽으면서 파악하는 게 재밌기에 더 이상의 줄거리는 생략하겠다.


달베르의 은근한 멍청미(로제트와 테오도르에 대해 자신이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는 번번이 뒤통수 맞고 있는 점), 로제트의 아름다움과 순정, 테오도르의 솔직함과 대범함(특히 배운 것을 바로바로 써먹는 그 행동력이란...) 등 각 인물들의 매력이 컸다. 그중에서도 테오도르는 로제트와 달베르의 사랑을 받는 존재로 그의 행동이 주요 사건들을 만들어내지만, 친구에게 자신의 모험담을 알리는 편지글 부분을 제외하면 제일 속을 알 수 없는 인물이었다. 여성의 아름다움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그 당시 남성들이 가진 자유로움을 한껏 만끽한 사람. 처음 남장을 시작하면서 남성들의 실체(?)에 실망하고 분노하는 장면을 보면 페미니즘적인 요소도 있다고 느꼈는데, 이 책과 동시에 읽고 있는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에서 작가가 성이 남성과 여성 단 두 가지로만 이루어진 것은 너무나도 부족하다고 한 표현이 생각났다. 모팽이자 테오도르인 이 책의 주인공은 정말 그 표현에 딱 들어맞는 사람인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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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도서관으로 온 엉뚱한 질문들
뉴욕공공도서관 지음, 배리 블리트 그림, 이승민 옮김 / 정은문고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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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사람들은 정말 다양한 목적으로 도서관을 찾는다. 책을 빌리러, 공부하러, 컴퓨터나 프린트를 이용하러, 문화강좌를 들으러, 혹은 자판기나 화장실을 사용하기 위해 등등. 하지만, 과거에 도서관 이용자들은 어땠을까? 초기 도서관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은 장서의 수집 즉, 정보 수집의 기능이 강했다. 많은 정보가 모이고 공공 도서관이 운영되면서 일반대중인 이용자들은 다른 이유보다도 정보를 찾기 위해 도서관을 찾았을 것이다. 그 정보는 책일 수도 있지만, 책에서 답을 찾을 수 있는 질문일 수도 있고, 공공기관이라는 특성상 공공자료에 대한 정보일지도 모른다. 혹은 그냥 도서관 앞을 지나다 문득 떠올린 궁금한 것일지도. 이 책은 그렇게 다양한 이유로 이용자들이 도서관에 던진 질문들을 모은 책이다. 어떠한 이유로 필요한 정보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전에 이용자들이 남기고 간 질문들, 즉 뉴욕공공도서관에서 개관이래 쭉 기록해둔 이용자들의 질문지 중 엉뚱하고 재미있는 과거의 질문들(주로 1940~80년대의 것들로 추정)에 현재의 사서들이 친절하고 유쾌한 답변을 달았다. 과거의 이 질문지를 남긴 이용자들은 원하던 대답을 들을 수 있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1895년 뉴욕공공도서관이 처음 문을 연 이래, 이곳의 사서들은 끊임없이 밀려드는 질문 세례를 받아왔습니다. 뉴욕이라는 도시 그리고 그 너머의 사람들은 지식에 대한 왕성한 식욕을 자랑합니다. 100년이 넘도록 이 사람들이 답을 찾으러 오는 곳이 도서관입니다.

'들어가는 말' 중 7p

​작년에 읽은 책 중에 <그런 책은 없는데요...>라는 책이 생각났다. 서점을 찾은 손님들과 서점 직원의 엉뚱하고 재밌는 문답들을 실어놓은 책이다. 그 책을 읽으면서 도서관에 오는 손님(이용자)들도 만만치 않을 텐데, 도서관 버전도 책이 나왔으면 좋겠다-하고 생각했는데 마침 올해 그 기대에 부응하듯 이 책<뉴욕공공도서관으로 온 엉뚱한 질문들>을 읽게 되었다. 직접적으로 주고받은 문답은 아니고 종이에 남겨둔 기록으로 얼마간의 시간을 사이에 두고 단발적으로 주고받은 질문과 대답이지만 재미있고 흥미로운 건 마찬가지다. 사실은 서점보다도 도서관에 더 애정이 깊고 '사서'라는 도서관 전문가들의 활약도 궁금했기에 이 책을 더 재미있고 즐겁게 읽었던 것 같다. 참고로 도서관은 과거는 물론 지금까지도 모든 이용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는데 책에서도 언급된 바 있는 '사서에게 물어보세요'는 전 세계 도서관의 사서들이 협업해 온라인상에서 운영되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국립중앙도서관을 중심으로 국내 여러 참여도서관들이 협력하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질문의 폭이 굉장히 넓어서 도서관은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찾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에 하나하나 필요한 답을 찾아낸 사서들의 보이지 않는 노고가 가득 담긴 책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과거에 비하면 검색 기능과 방법 등도 훨씬 발전되었겠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수고가 없어지는 건 아닐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보면서 사서라는 직업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서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아직까지도 사서라는 직업이자 명칭을 낯설어하는 사람 역시 많다.)에 대해 느긋하게 책을 보고, 대출반납 업무를 주로 하며, 힘든 일은 그다지 없는 만사태평한 직업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꿈같은 직업이라면 '사서는 고생을 사서 해서 사서다'라는 말이 있을 리가 없다. 난 대학생 때 약간의 로망을 가지고 공공도서관에서 기간제로 일해본 적이 있는데, 도서관에서 제공하는 서비스가 다양해진 만큼 그 안에서의 업무도 정말 다양했다. 책을 직접 접하는 업무는 개인적으로 참 좋았지만 은근한 중노동을 필요로 했으며, 온갖 이용자들을 응대하는 대민업무는 가장 까다로웠다. 당시 내가 했던 업무는 주로 사서의 전문적인 업무라기보다 공공도서관으로서 제공하는 기초적인 업무들에 가까웠다. 하지만 도서관의 한 기능을 담당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은 내게 꽤 뜻깊은 경험이었다. 그 이후 난 예전에는 '도서관학'이라는 명칭이었던 '문헌정보학'을 공부하기도 했다.

말이 샌 김에, 책을 읽는데 얼마 전에 우연히 다시 보았던 도서관인 윤리선언의 항목들이 생각났다. 그 항목은 아래와 같다.  

1. 도서관인은 도서관 이용자의 신념, 성별, 연령, 장애, 인종, 사회적 지위 등을 이유로 그 이용을 차별하지 아니한다.

2. 도서관인은 도서관 서비스를 제공함에 있어서 자신의 편견을 배제하고 정보 접근을 저해하는 일체의 검열에  반대한다.

(출처 :한국도서관협회, '도서관인 윤리선언' 중)

이를 보면 도서관인(=사서)는 어떠한 이용자가 얼마나 엉뚱한 질문을 던져도 차별하지 않고, 편견을 배제한 채 필요한 답을 내놓을 직업적 윤리를 가진 사람들이라는 거다. 최근 사람들은 궁금하면 인터넷에 검색을 하곤 하지만, 이런 점에서 도서관 역시 참 친절하고 신뢰성 있는 정보기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물론 이러한 점을 악용해서 도서관내 진상 이용자가 될 사람들은 없길 바란다) 그렇다고 이 책에 나온 사서들의 대답이 늘 딱딱하고 정석적인 것만은 또 아니다. 질문의 답을 찾지 못하거나 정보가 부족한 경우에는 그 자료를 찾을 수 있을 법한 다른 정보원을 소개하기도 하고, 질문에서의 오타나 실수를 찾아낸 경우 올바른 질문을 유추하고 질문자가 무안하지 않게 유연하고 재치 있는 답변을 해주는 경우도 있다. 간혹 질문에 대한 정상적인 답변 마지막에 덧붙이는 의견 겸 조크들은 은근한 재미를 선사하기도 한다.  


Q. 하와이 춤에서 골반 동작은 무슨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나요?(1944)

A. (중략) 하지만 궁극적으로 훌라의 온전한 의미를 글로 전달하기란 불가능합니다. 훌라의 골반 동작을 글로 쓴다는 건 마치 건축을 노래로 전하는 것과 같다고 할까요. ​

(본문 중 21p)







질문 하나당 짧으면 한 문장, 길어야 두 페이지 이내의 간결한 답변을 실어놓아서 싫증 내기도 전에 몽땅 읽어버릴 수 있는 책이다. 간간이 들어가 있는 삽화도 질문을 토대로 그려진 그림이라 책의 내용과 무관하지 않고 상상력을 발휘해 그려져 있어 묘한 매력이 있었다. 특히 뉴욕공공도서관을 상징하는 사자상과 물음표를 던지는 새의 그림이 그려진 표지가 참 예쁘다. 도서관의 이용자로서 그리고 책과 도서관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어쩌면 이 책에 어떤 내용이 들어가 있어도 난 참 재미있게 읽었을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난 뒤 또 바라게 되는 건 국내 버전도 나올 법하지 않나... 하는 욕심ㅎㅎ 도서관에 대한 책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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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튼 생각 : 살아간다는 건 뭘까 인생그림책 2
브리타 테켄트럽 지음, 김서정 옮김 / 길벗어린이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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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지금까지도 한 번쯤은 다 해봤던 질문들. 나에 대해, 내 주변에 대해, 점점 범위를 넓혀 세상 만물에 대해 던졌던 질문과 단편적인 생각들. 물음표를 붙여 한 번씩 더 돌아보게 만드는 문제들. 단순한 현상부터 감정, 그리고 점차 깊어져 철학적인 생각들까지 질문의 저변이 확대되고 축소되기를 반복하는 이 책은 참 신기하다.


'나는 커서 뭐가 될까?', '그 애가 날 좋아할까?' 처럼 어릴 때 궁금해했던 질문들,'나는 왜 늘 벽에 부딪히지?', '왜 언제나 봄날이 아닌거야?'처럼 실패와 절망을 겪어야만 나올 수 있는 질문들, '저 별을 딸 수 있을까?', '새들은 하늘을 나는 게 재밌을까?'처럼 조금은 몽상적인 질문들, '사람들이 아름다운 것만 생각할 수 있다면, 행복할까?', '살아간다는 일의 의미는 뭘까?'처럼 세상과 삶에 대한 질문들까지 특별히 단계적으로 심화되는 것이 아니라 마구잡이로(정말 생각나는 대로 질문들을 적은 것처럼) 섞여 있다. 두서없는 질문들에 비해 그림들은 은근한 통일성이 있어 마치 그림을 먼저 시리즈로 그려놓고 그림을 보며 떠오르는 질문들을 적어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림에 비해 글밥이 적어서 그냥 '읽기만'한다면 정말 순식간에 완독할 수 있는 책이다. 하지만 하나하나 질문에 답을 생각해보고, 입으로 말해보고, 글로 적어보며 읽는다면 적어도 하루 이틀로 완독하기는 힘든 책일 것 같다. 질문을 던져 생각을 하게 이끌어주는 책. 아이들에게 읽어줄 때 나이에 따라 조금 어려운 질문도 있겠지만 생각의 폭을 정말 넓혀줄 수 있을 것 같다. 질문에 답을 달아보면 책의 제목대로 '허튼 생각'이란 건 세상에 없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혹은 누구나 허튼 생각을 하며 살아간다는 것을 알려주는 걸까.


살다 보면 생각만큼 모든 일이 잘 풀리지는 않아서 누구나 벽에 부딪히고 가끔은 깊이 절망한다. 반대로 행복에 흠뻑 빠질 때 또한 있다. 희로애락 같은 감정의 기복은 보통 생각에 깊은 영향을 미치는데 그래서인지 정말 예쁜 그림과 함께 있는 질문인데도 감정에 관한 질문들은 더욱 서글퍼지고, 깊이 공감하며 울컥하는 질문들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은 어른들을 위한 독서치료에 쓰기도 정말 좋은 자료가 될 것 같다. 이제 이 서평을 다 쓰고 나면 이 책의 모든 질문에 짧게나마 답을 달며 다시 한번 읽어보려 한다. 내게 가장 쉬운 질문, 힘들었던 질문이 뭔지를 찾아보면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 자가 판단을 해보기에도 좋지 않을까. 하드커버에다 속지마저 단단한 책이니 내가 얼마든 다시 펼쳐도 튼튼하게 유지될 것 같은 점이 참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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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사람에게 웅진 모두의 그림책 30
전이수 지음 / 웅진주니어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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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뒤에는 작가의 편지가 붙어있다. 자신의 보물 같은 하루하루를 글과 그림으로 담았다고, 이 책을 통해 각자의 소중한 사람에게 마음을 전해달라고. 목차의 각 파트가 'Letter' 라는 단위로 쓰인 것도 비슷한 맥락일 것 같다. 그림의 해설집 같기도 하고, 일기 같기도 하고, 혹은 누군가(독자, 엄마, 혹은 미래의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 같기도 한 이 책의 글들은 굉장히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제주도에 살고 있는 아직 어린아이인 작가가 형제들과 뛰놀며 생각한 것, 평화스러운 나날의 감사함, 환경과 생물과 사람에 대한 관찰과 생각들, 스스로 하는 선한 다짐들, 그리고 엄마에게 보내는 애정 어린 편지글까지. ​


어젯밤엔 불을 끄고 자려고 누웠는데

반딧불이가 한 마리 들어와

우리의 별이 되어주었다.

나의 하루 시간은 늘 이렇게 행복하다.


(본문 중 '우리 집 2', 발췌​)


작가에게 가족은 굉장히 소중하고 커다란 존재인데, 씩씩하고 똑똑한 바로 아래 동생 우태와 아직 보살펴줘야 할 점이 더 많은 어린 동생들 유담이, 유정이가 등장하는 이야기마다 굉장히 인상적이었고, 엄마에게 배운 점, '우리 엄마는 이런 사람이에요' 하는 자랑 섞인 글들을 보면 참 사랑스러웠다. 동생 우태의 이름은 작가의 이름만큼이나 잊히지 않을 것 같은데 Letter 4의 '강인함' 이라는 글에서 우태가 유정이를 위해 소리치는 모습이 정말 멋있었고, 형인 이수가 보기에도 동생의 그런 모습이 멋지고 강인해 보였기에 이런 글이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Letter 5. 들리지 않나요'에서의 다룬 글들도 인상적이었는데 사람들이 만들어낸 빛에 눈이 멀고 온난화로 얼음이 녹아버린 환경에 살고 있는 북극곰 이야기, 바다에 버려진 플라스틱 조각들로 배를 가득 채운 새들의 서러운 울음소리, 세계의 반은 굶주린다는 기아 상황과 빈곤문제, 노키즈존에 관한 경험담 등등 어른들도 필히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할 문제들을 많이 이야기했는데 아이들의 시점으로 본 문제들의 심각성과 새로운 시각이 신선했다. ​

​​

각 파트가 나뉘는 페이지에 이수가 글을 쓰고, 기타를 치고, 그림을 그리는 모습들이 작은 사진으로 보여지는데, 그리는 그림의 사이즈가 제법 커서 조금 놀라웠다. 화가이자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현직 예술가로서 커다란 그림을 그려내고 그림과 관련해서도 글을 쓰는 작가의 실제 모습은 나이에 걸맞는 순수해 보이는 모습이라 신기했다. 참고로 책 맨 뒤쪽 작가의 편지가 붙어있는 페이지의 옆 페이지에는 왼쪽 아래에 QR코드가 있어 이를 통해 작가의 작업 영상도 볼 수 있다.



운이 좋게도 정식 출간 전에 가제본으로 먼저 책을 받아 읽고 서평을 남기게 되어, 내게는 페이지의 묶음별로 몇 등분 분리되어 있는 책이 왔다. 책은 그림만 보면 이대로 낱장으로 간직하다 액자에 넣어두고 싶었고, 글 중심으로 보자면 글에 맞는 그림과의 순서를 어지럽히고 싶지 않아 하나로 묶어두고 싶었다. 아직도 제본을 따로 할까 그대로 둘까 고민 중이다. 글은 솔직하고, 인간으로서 성장해나가는 와중에 느끼는 조금은 복잡하고 무거운 마음과 생각이 와닿아서 좋았고, 가끔 나오는 시적인 문구들이 정말 예뻤다.


엄마가 빨리 건강해져서 나랑 한라산에 올라갈 수 있으면 좋겠어. 

그래서 난 오늘도 이렇게 기도해.

'엄마의 아픔이 꽃으로 변하게 해주세요.'

엄마, 오늘도 힘내줘서 고마워. 사랑해.


(본문 중 '엄마에게 2', 발췌)


그림들은 저마다 개성적이었지만, 표지로도 사용되었던 '위로 3'의 글과 함께 실린 그림, 그리고 바다에서 일어난 여러 사건들을 떠올리게 하는 '떠오르는 꽃'이란 글과 함께 실린 그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이 그림 역시 표지의 회색 배경 쪽으로 부분 사용되었다) 대부분 그림 하나당 한편의 글이 쓰여 있고 글 맨 위에 쓰인 제목은 글의 제목인지 그림의 제목인지, 혹은 둘 다인지도 모른다. 추상적인 그림과 정물화에 가까운 그림, 상징적인 그림들도 있었다. 몇몇 그림은 정말 작품 같았고 몇몇 그림은 초등학생 그림일기에 나올 것 같은 인상을 주는 것도 있었다.





글에서도 느껴지듯 작가는 어린이로서, 예술가로서, 작가로서 점점 성장하고 있는 것 같다. 2008년생, 아직 초등학생인 나이에 이번에 출간된 <소중한 사람에게>까지 6권의 책을 출간한 작가로서의 이력은 이미 대단하지만, 이 글을 읽는 어른들이라면 전이수작가의 엄마아빠, 혹은 이모삼촌 같은 마음으로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했을 것 같다. 대견스럽고 훈훈하다고, 그 마음과 솜씨가 모두 예쁘다고, 그러니 부디 이대로만 자라주길.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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