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줄거리와 등장인물들은 지금 봐도 꽤 신박한데, 그보다 더 재미있었던 건 서술형식과 서술자의 태도였고 책에 얽힌 실제 이야기도 만만치 않게 흥미로웠다. 책 밖의 이야기를 먼저 하자면 1835년 발표된 이 소설은 프랑스에서는 빅토르 위고, 발자크 등 유명 문인들에게 칭송을 받았고 미국으로 번역되어 출간되는 과정에서는 이 소설이 음란물이다 아니다를 가르는 재판까지 벌어졌다고 한다. 지금 시대에 보아도 드라마 등에서나 나오는 여장남자의 존재는 소설에서 꽤나 강렬하고 매력적인 캐릭터인데, 이 소설의 주인공은 놀랍게도 실제 인물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소설 속 주인공의 이름은 여자일 땐 '마들렌 드 모팽', 남자일 땐 '테오도르 드 세란'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데 여성의 이름은 실제 인물의 이름(마들렌 도비니, 후에 모팽부인이 됨)을 그대로 가져다 쓰고, 남자의 이름은 그녀가 관계를 맺고 그녀에게 검술을 가르쳤던 남자 '세란'의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그 외에도 이 작품이 지닌 문학사적인 의미나 작가 고티에의 문학적 성향 및 해설을 본문 맨 끝에 수록된 작품 해설에서 볼 수 있다. 고전 중에서도 꽤나 독특한 이 작품은 혼자 읽고 끝내기보다는, 작품 해설 및 타인의 평가와 해석들을 적극적으로 찾아보는 게 더 쉽고 재미있게 이 책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일 것 같다.
이 작품은 거의 200년 전에 발표된 소설이고, 신화적 비유가 많고 장식성이 강한 문체에, 서술형식 또한 일반적인 소설의 형식을 따르지 않는다. 그래서 내용의 흥미로움을 떠나 읽는 것이 마냥 쉬운 책은 아니었다. 특히 초반에 달베르가 자신의 모든 것을 숨기지 않고 고백하기로 한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 담긴 구구절절한 연애 사정과 몽상에 가까운 탐미적 가치관은 이 책을 읽을 때 맞는 첫 번째 고비가 아닌가 싶다.(덧붙이자면 내게 최대 고비는 '작가의 말'이었다. 주석이 페이지의 반을 차지하는 경우도 있고, 분량이 무려 77페이지나 된다.) 하지만 달베르 외의 주역들인 로제트와 테오도르가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더 다채로워지고, 실제적인 사건들이 드러나면서 읽는 게 조금 쉬워진다.
이는 달베르의 이야기가 -딱 한 번 로제트와의 대화를 극적 형식으로 더하긴 하지만-독백에 가까운 편지글로만 쓰였진 데 비해, 그 이후의 이야기는 형식이 변경되고 다양한 서술 방식이 함께 쓰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여기서 또 재밌는 점은 서술자가 글에 직접 등장하고 형식이 변경된 것을 고한다는 것. 친절하게 이유까지 밝힌 데다 이 서술자는 후반에 가서도 또 등장한다. 이 의도적이고 돌발적인 서술자의 개입이 나중에 작품 해설을 보고서야 작가의 다양한 실험적 시도와 도발적인 글쓰기 방법이란 걸 알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읽을 때는 우리나라 고전소설(혹은 판소리 소설)과 신소설의 과도기를 보는 듯한 인상을 받아 혼자 좀 웃었다. 어쨌든 이야기의 후반으로 갈수록 더 읽기 쉬워지고 더 재미있어진다는 것만은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