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로마신화 - 명화와 함께 가장 빠르고, 재미있고, 명확하게 알기
구예 지음, 정세경 옮김 / 도도(도서출판) / 2020년 5월
평점 :
품절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질문 하나만 해볼까요? 서양화가들은 어째서 그리스신화를 작품으로 즐겨 그렸을까요? 제가 보기에 원인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중략)

원인 2 : 이런 신화가 정말 재미있었으니까요!

한마디로 '겁나게' 재미있었던 거죠. 그리스신화는 피비린내와 폭력, 근친상간, 암투, 동성애가 모두 등장하는 미성년자 관람불가 등급의 영화였거든요!


(본문 중 17p)

항상 흥미롭고 재미있고 막장이기까지 한 신화 이야기는 그 인기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의 머릿속엔 늘 어렴풋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이야기는 들어본 거 같은데 등장인물의 이름은 모르겠거나(길었다는 것만 기억나기도 한다) 신의 이름은 들어본 거 같은데 얽힌 이야기가 이거였나 저거였나 아리송하기도 하다. 많이 들어서 익숙하긴 한데 참 안 외워지는 신과 등장인물들의 이름, 이야기 속의 복잡한 관계성과 방대한 스케일 때문에 읽고 또 읽어도 까먹기 쉽고, 또 그렇기 때문에 읽고 또 읽어도 늘 재미있는 이야기가 바로 그리스 로마 신화다.

이 책의 특징은 참 많지만 그중 내게 가장 크게 와 닿았던 부분은 다양한 크기/굵기의 글자를 넉넉한 공백과 함께 배치하며,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듯 서술자가 친절한 구어체 즉 요즘 말을 구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전에 비슷한 서술체의 책을 읽어본 적이 있는데 출간된 지 10년도 채 되지 않은 책인데도, 예전에 쓰인 재기 발랄한 어투는 어색하고 손발이 오그라들 뿐이고 재미를 위해 넣은 그 당시 최신 유머들이 이제는 썰렁하고 소위 '한물 간' 개그가 되어버려서 웃기도 애매한 문장들의 연속이었다. 결국 그 책은 포기해버렸고 에세이도 조금은 낯설어하는 내가 도전하기엔 어려운 책이었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그 책이 조금 극단적이었지만 그 후로 너무 가벼운 구어체의 문장은 위험하다는 생각을 늘 하곤 한다. '요즘 말'은 언젠가 '옛말'이 되기 마련이라 이 책의 서술체도 역시 조금 걱정이 되었지만, 다행히 유행어나 줄임말 등 특정 계층에서 주로 쓰이는 어휘들이 자주 사용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출간된 직후 바로 지금 읽었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내 예상보다도 술술 읽혔고, 정말 부제처럼 '빠르고 재밌게' 읽은 책이었다.

이 책은 시간순으로 차례차례 모든 이야기를 전해주지는 않는다. 다만 얽히고설킨 신들의 관계나 이야기의 앞뒤 맥락이 이어져야 할 필요가 있는 부분을 위해 아주 순서를 섞어놓지도 않아서 대충 흐름은 시간 순을 따르되 신화의 재밌고 강렬한 이야기나 인물들을 쏙쏙 뽑아 들려준다고 생각하면 된다. 난 비교적 최근(올해 3월 즈음) 시간순으로 잘 배열된 신화들과 명화를 함께 보여주는 책을 읽어서 이 책의 이야기들이 아주 낯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처음 들어보는 듯한(분명 들었거나 읽었지만 기억에서 사라졌을) 이야기와 정보도 꽤 있었다.









가나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에 신들의 관계표나 그리스 혹은 로마식의 이름을 나열한 표가 있다. 그 표들을 본문을 보기 전에 먼저 보면 자신이 신화를 얼마나 기억하고 있고, 신들의 이름 중 어느 이름이 더 익숙한지도 알 수 있다. 비너스가 '여우 같은 여자'였다거나 아폴론은 '잘생겼지만 평생 솔로'라는 식으로 신들을 마치 스타처럼 다루고 그들의 이야기를 가십처럼 꾸며 헤드라인(목차만 봐도 재밌다ㅋㅋ)을 달고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이 재미있었고, 수록된 수많은 명화(정말 많다, 가끔은 조각상의 사진도 있다)들 덕에 명화 감상은 기본에 다양한 화가가 그려낸 같은 인물들을 대조해보거나 그림의 제목으로 쓰인 신들의 이름이 어느 쪽인지(그리스/로마) 확인해보는 재미도 있다.

대부분의 그림에서 한 인물이 가진 공통적인 특징(예를 들어 큐피드의 짝인 프시케에게 화가들이 나비 날개를 그려주었다거나, 북풍의 신은 유괴가 취미이자 특기라서 항상 여자를 끌어안은 모습으로 그려진다는 등)들을 설명해 주는 부분도 좋았다. 맨 마지막에 다룬 별자리 신화 이야기는 앞서 다룬 다른 이야기들에 비해서는 조금 부족한 느낌지만 부록처럼 가볍게 읽기엔 딱 좋았다. 여러모로 평범한 신화 책들과는 차별화되는 장점이자 특징들이 참 많은 책이었다. 그래서 익숙하지만 낯선 신화를 더 재밌게 읽기에 참 적합한 책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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