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흥미롭고 재미있고 막장이기까지 한 신화 이야기는 그 인기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의 머릿속엔 늘 어렴풋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이야기는 들어본 거 같은데 등장인물의 이름은 모르겠거나(길었다는 것만 기억나기도 한다) 신의 이름은 들어본 거 같은데 얽힌 이야기가 이거였나 저거였나 아리송하기도 하다. 많이 들어서 익숙하긴 한데 참 안 외워지는 신과 등장인물들의 이름, 이야기 속의 복잡한 관계성과 방대한 스케일 때문에 읽고 또 읽어도 까먹기 쉽고, 또 그렇기 때문에 읽고 또 읽어도 늘 재미있는 이야기가 바로 그리스 로마 신화다.
이 책의 특징은 참 많지만 그중 내게 가장 크게 와 닿았던 부분은 다양한 크기/굵기의 글자를 넉넉한 공백과 함께 배치하며,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듯 서술자가 친절한 구어체 즉 요즘 말을 구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전에 비슷한 서술체의 책을 읽어본 적이 있는데 출간된 지 10년도 채 되지 않은 책인데도, 예전에 쓰인 재기 발랄한 어투는 어색하고 손발이 오그라들 뿐이고 재미를 위해 넣은 그 당시 최신 유머들이 이제는 썰렁하고 소위 '한물 간' 개그가 되어버려서 웃기도 애매한 문장들의 연속이었다. 결국 그 책은 포기해버렸고 에세이도 조금은 낯설어하는 내가 도전하기엔 어려운 책이었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그 책이 조금 극단적이었지만 그 후로 너무 가벼운 구어체의 문장은 위험하다는 생각을 늘 하곤 한다. '요즘 말'은 언젠가 '옛말'이 되기 마련이라 이 책의 서술체도 역시 조금 걱정이 되었지만, 다행히 유행어나 줄임말 등 특정 계층에서 주로 쓰이는 어휘들이 자주 사용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출간된 직후 바로 지금 읽었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내 예상보다도 술술 읽혔고, 정말 부제처럼 '빠르고 재밌게' 읽은 책이었다.
이 책은 시간순으로 차례차례 모든 이야기를 전해주지는 않는다. 다만 얽히고설킨 신들의 관계나 이야기의 앞뒤 맥락이 이어져야 할 필요가 있는 부분을 위해 아주 순서를 섞어놓지도 않아서 대충 흐름은 시간 순을 따르되 신화의 재밌고 강렬한 이야기나 인물들을 쏙쏙 뽑아 들려준다고 생각하면 된다. 난 비교적 최근(올해 3월 즈음) 시간순으로 잘 배열된 신화들과 명화를 함께 보여주는 책을 읽어서 이 책의 이야기들이 아주 낯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처음 들어보는 듯한(분명 들었거나 읽었지만 기억에서 사라졌을) 이야기와 정보도 꽤 있었다.

가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