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 게임
오음 지음 / 팩토리나인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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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의 훈자라는 여행지에서 만난 다섯 명의 이야기. 각자의 삶과 상처는 비밀로 하고, 어울리는 시간 동안 나누는 적당한 친목의 대화가 현실감 있어서 좋았다. 서로에게 100퍼센트 솔직하지 않아도,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많은데도 낯선 곳에서 어울리는 동안 자연스레 '우리'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의 유대와 관계가 쌓인다. 등장인물은 저마다 큰 상처를 갖고 있는데 여행 안에서 만들어진 이 관계에 크게 위로받는 이가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대부분 여행은 도피, 회복, 힐링 등을 꿈꾸며 떠나게 되는데 그중에 하나라도 이룬다면 그 여행과 이야기는 해피엔딩이 아니겠는가.


김설, 남하나, 최낙현, 전나은, 오후. 이렇게 다섯 명의 인적 사항(이름, 나이, 직업 등)이 목차에 등장하고, 본문은 그 인물의 시각으로 그들의 여행을 풀어낸다. 여행을 떠나게 된 이유, 여행을 하며 마주한 이들의 인상, 외계인 게임에 참여하는 동안 나누게 된 이야기들. 외계인 게임을 주선한 이가 '오후'라서 인지 그 인물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평이 전부 나오는 게 재미있었다. 개인적으로 후라는 인물이 그리 매력적으로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그의 이름만큼은 큰 인상을 남겼다. 보라가 불러주던 "후..."와 설이가 외쳐주던 "후야."가 귀에 들리는 것처럼 생생했다.


후가 시작한 질문에 답을 선택하는 일도 어려웠지만, 막상 더 어려운 건 문제를 만들어내는 일이었다. 이전엔 생각해 본 적 없는, 현실에서 좀처럼 일어날 리 없는 질문을 만드는 일. 현실에서 숱하게 마주치는 사소한 문제들을 해결하기에도 빠듯하게 살아왔으니 당연한 일이다. 어쩌면 한 사람이 택한 답보다, 스스로 만든 질문이 더 많은 걸 말해주지 않을까.(남하나)


삶을 살아간다는 건, 모두가 버스에 올라타 함께 목적지로 향하는 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토록 비좁고,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험한 길을 서로가 서로를 다독이고 견디며 나아간다고. (전나은)


본문 중 115p / 225p



책을 읽기 전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외계인 게임의 룰이 흥미롭고 각자가 낸 질문과 답이 궁금했는데, 소수의 선택이 외계인이 되는 게임의 룰에는 거짓을 말하면 안 된다는 전제가 없었다는 걸 책을 읽으면서 깨달았다. 애초에 소수의견을 부정적인 뉘앙스로 취급하고, 누군가는 대놓고 드러내지는 않더라도 소수에 끼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는 것도 현실적이면서 안타깝게 느껴졌다. 사실은 소수나 다수로 가를 수 없는, 한 명 한 명의 존재가 다를 수밖에 없는 게 사람인데. 이 책에서는 각자의 시선으로 자신의 삶을 바라보고 여행하며 그 삶을 의미를 반추한다. 나는 어떤 인물의 시각에 가장 공감했는지, 이들과 함께 했다면 나는 외계인 같은 존재가 되었을지 생각해보며 책을 덮었다. 





※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남긴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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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이야기 -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효게쓰 아사미 지음, 요시타케 신스케 그림, 김은하 옮김 / 담푸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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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에 대한 이야기이자 화장실에서 읽기에도 적당한 이야기들. 목차를 보면 제목 앞에 1 또는 5가 표시되어 있는데 작가의 소개말을 빌리자면 '1분짜리 짧은 이야기와 5분짜리 긴 이야기로 가득 채웠으니 크든 작든 골라 읽어 보세요' 라고 한다. 호시 신이치의 쇼트쇼트 스토리가 생각날 정도로 짧다. 1분짜리 이야기 중에는 단 두 페이지에 이야기가 끝나는 경우도 있다.

이야기의 장소와 소재가 어느 정도 한정되어 있다 보니 읽다 보면 뭔가 느낌이 오는 그런 경우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재미있다. 일단 지루해지기도 전에 이야기가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다 읽고 나면 피식 웃음이 나기도 하고 때론 약간의 감동이 있기도 했다. 감정 폭이 아주 크진 않지만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이야기들이 많다. 가끔은 앞의 이야기와 이어지는 경우도 있는데, 이야기가 짧아 아쉽다거나 뒷이야기가 더 궁금하던 차에 조금 더 풀어주는 이야기는 반갑기까지 해서 개인적으로는 이어지는 이야기들을 더 재미있게 읽었던 것 같다.








이미 국내에선 유명한 작가인 요시타케 신스케의 삽화는 생각보다 양이 적지만(정말 적다!), 등장할 때마다 소설이 그리고 있는 분위기와 딱 들어맞는다는 인상이었다. 책에서 차지하는 분량은 많지 않아도 감초 같은 역할을 해준다. 요시타케 신스케의 그림을 많이 기대하고 있던 독자라면 아쉬울지 모르겠지만,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고 가치 있는 책이라 크게 실망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이 책은 그야말로 화장실에 대한 모든 상상력을 이야기로 풀어낸 책이라고 할 수 있다. 화장실은 어떤 사건이 벌어지는 장소이기도 하고, 어떤 사건에서 벗어나기 위한 도피처이기도 하다. 볼일을 보기 위해 화장실을 찾아헤매는 과정이 하나의 이야기가 되기도 하고, 어떤 이야기는 변기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키기도 한다. 작가의 상상력은 장르도 가리지 않아서 이 짧은 이야기들은 일상, 코믹, 로맨스, 범죄, 감동, 스릴러, 판타지 등등 정말 다양한 장르를 담고 있다. 우리 집 화장실 변기 앞에 대롱대롱 매달아 놓고 싶은 책. 그냥 읽어도 재미있었지만, 왠지 화장실에서 읽으면 더 재밌을 것 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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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만드는 사람들 (한국어판 스페셜 에디션) - 2019 볼로냐 사일런트북 대상 수상작
곽수진 지음, 김지유 옮김 / 언제나북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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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직후에 이 책을 읽어서 일까 솔직한 감상을 먼저 적어보자면​, 진심으로 "아이들의 순수한 시각이 필요해!"라고 생각했다. 별을 만드는 로망보다는 익숙한 노동 현장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고 해야 할까, 직장인의 기계적이고 단계적인 작업 과정들이 짠하달까. 막판에 가서 이룩한 성과(별이 반짝반짝 떠있는 아름다운 밤하늘)가 보이는 창가에서  퇴근인사를 건네며 뿌듯해하는 얼굴들을 보면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아, 자신의 로망이 1프로 정도 실현된 걸 보고 좋아하는 어른들의 애수가 보인달까,(아니면 직업의식?) 별 자체가 아름답고 다양한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임은 분명한데, 별이 만들어지는 스토리가 더해진 이 책을 아이들이 보면 어떤 상상과 생각을 할지 어떤 점이 특히 좋았는지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주변에 아이들은 별로 없는 관계로 일단 직장 동료들에게 책을 돌리고 간단한 감상을 받아냈다. 누구는 표지를 보고 별*먹자 과자가 떠오른다 했고, 누군가는 부모가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줘야 하는 책이라고 평했고, 아이들 상관없이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별을 칠하는데 드는 페인트의 양이 너무 많아서 신경 쓰인다고 했다. 유일하게 감상을 받은 초등학생 5학년 아이의 한줄평은 '별을 재활용하는 이야기네'였다. 그림으로만 이루어진 짧은 책을 똑같이 읽고도 이토록 다양한 한줄평이 나오는 게 재미있었고, 그 와중에 뭔가 모범적인(?) 답변이 없는 것 같아 조금 웃었다. 




주변의 감상을 듣고 난 후 잃어버린 동심을 애써 불러들이며 다시금 읽어보자 모든 작업을 하는 등장인물들의 얼굴이 하나같이 웃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여러 사람들의 노력과 많은 과정을 거쳐 빛나게 된 별들은 더 아름다워 보인다는 것과 비록 까맣게 빛을 잃은 별들도 누군가의 도움으로 다시 빛날 수 있다는 것 역시. 순수한 시각, 동심 등을 운운했던 건 그림책이나 동화책을 보며 아름다운 것, 새로운 것, 바른 것, 재미있는 것을 알아채고 상상하는 능력이 어른들보다는 아이들에게 더 탁월하게 발휘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뒤집어 생각하면 그런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 아이들이 읽는 그림책의 역할이기도 한 것 같다.

글이 없는 그림책은 그림을 보는 이마다 다양한 스토리가 만들어질 수 있고, 그림 중에서도 어떤 장면에 집중하느냐에 따라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고 그 장면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어서 더욱 좋다. 글이 없는 만큼 독자의 상상력과 감상이 그 자리를 채워주는 것 같다. 글이 없는 그림책을 외국에선 '사일런스 북'이라고 부른다는 건 처음 알았다. 이 책의 소개 글을 보면 '2019 볼로냐 사일런트 북 대상 수상작. 이탈리아 기존 버전에서 리터치하여 전 연령 대상으로 변화한 한국어판'이라고 쓰여있는데, 리터치 이전의 버전은 어떤 차이가 있을지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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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 아무거나 먹지 마세요
안티 투오마이넨 지음, 전행선 옮김 / 리프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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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버섯에 중독된 버섯 회사 사장님의 이야기라는 심상치 않은 콘셉트에 엉뚱함과 유머러스한 뉘앙스가 담긴 제목(+표지의 일러스트), 나에겐 낯설지만 유럽에서 가장 재미있는 작가라고 평가받는 핀란드 작가 안티 투오마이넨의 소설. 게다가 장르는 코믹 스릴러 범죄소설이라고 하니 이 소설이 도대체 어떤 책인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그저 이 책이 어느 방향으로 흘러갈지 궁금했고, 막상 어느 쪽으로 흐르든지 재미있을 것 같다는 기대를 잔뜩 가지고 책을 폈다.

병원을 찾은 주인공은 자신이 독에 중독되었고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된다. 그 사실을 진지하게 받아들기도 전에 아내의 불륜 행각을 목격하게 되고 자신의 회사를 위협하는 새로운 버섯 회사의 견제가 시작된다. 주인공은 자칭 모든 걸 목록으로 만드는 사람인지라 이 모든 일을 '1. 진행 중인 프로젝트' 라는 이름으로 묶어 정리하고, 살아 있기를 '2. 계획된 프로젝트' 에 적은 후 앞으로 자신이 죽기 전에 해야 할 일들을 '3. 오늘의 과제' 에 써 내려간다. 자신에게 독을 먹인 사람은 누구인지를 추리하고, 아내의 불륜 조사, 회사 내 직원관리, 경쟁사 조사 등등 (시도 때도 없이 통증이 찾아오고 몸은 죽어가고 있는데도)이 남자 해야 할 일이 정말 너무 많다.





이야기의 전개도 기상천외했지만, '시한부 판정을 받고 주요 장기와 뇌까지 손상시킨 지독한 독에 중독된 주인공'만이 내릴 수 있는 수많은 확신과 결정들에 흥미로워하면서 읽었다. 주인공은 자신의 추리에 나름대로 근거를 찾아가며 하나하나 단호하게 확신하곤 하는데, 그 확신을 어디까지 믿어야 하나 싶었달까. 장르에 코믹이 하나 붙었을 뿐이지만 나는 왠지 사소한 그 확신 하나하나가 주인공의 오해나 뇌 손상에 따른 환상 같은 건 아니었을까 괜한 의심이 들기도 했다. 유머는 글쎄, 나의 코드와 딱 맞는다고는 못하겠으나 마지막에 드러날 진실과 반전은 무엇일지 기대하며 술술 읽어나갈 수 있는 재밌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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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떠난 뒤 맑음 상.하 + 다이어리 세트 - 전2권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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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못하는 요즘, 여행에 대한 바람을 대리 만족시켜주는 이야기라서 좋았다. 사실 열네 살 레이나, 열일곱 살 이츠카 이 둘의 긴 여정은 두 사람에는 명백하게 '여행'이었지만 그 외 사람들에게는 일탈, 가출 등의 우려 섞인 시선으로 보일만한 여지가 잔뜩 있다. 미성년자 두 명이 구체적인 계획 없이, 예산 없이(부모님 카드를 들고 나오긴 했지만), 그리고 예고 없이(보호자의 동의 또한 없었다) 떠난 여행이었으니까. 다만 두 사람은 여행하는 동안의 일은 영원히 둘만의 비밀로 하기로 약속하며, 부모님이 찾으러 와서 여행이 정지되는 일이 없도록 안부를 전하는 엽서를 보내고 가끔 전화로 목소리를 들려주는 등 나름의 규칙을 정하고 지키며 여행을 계속한다.

현실이라면 마냥 찬성해 줄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이야기라는 것을 핑계로 나는 두 사람의 여행에 편승했고 상, 하로 나누어진 두 권 동안 함께 여러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하고, 여러 경험을 겪어낸 기분을 느꼈다. 잘 알지 못하는 장소인 미국의 곳곳을 함께 돌아다닌 것 같아 기뻤고, 그 안의 몇몇 장면들이 나의 여행의 기억들과 겹쳐지는 것 같아 반가웠다. 좋은 사람을 만날 때 함께 웃고, 레이나를 보호하기 위해 화가 난 이츠카에 감정이입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두 사람이 새로운 경험을 하며 꺄르르 웃음을 터뜨릴 때 함께 웃을 수 있어서 좋았다.(개인적으론 크리스를 만나고 함께 산악열차를 타고 올라갈 때가 가장 신났다.) 난 대학생 때 친구와 함께 간다는 거짓말을 하고 혼자 유럽 여행을 하고 온 전적이 있기에 두 사람의 입장에 설 수밖에 없었다. 많은 일을 겪겠지만 무사히 여행을 끝마치고 돌아온다면 살면서 오래도록 떠올리고 행복해할 기억을 가질 수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으니까.

이 책에서는 여행의 전과 후를 거의 밝히지 않는다. 레이나와 이츠카가 함께 여행을 떠나기로 한 결정적인 계기가 무엇인지 뚜렷하지 않고, 여행 직전에 계획을 세우는 과정을 보여주지도 않는다. 여행 후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후반부에 아주 살짝 뒷이야기를 보여주긴 하지만 여행에서 돌아온 직후의 상황을 풀어내지는 않는다. 오로지 여행(떠난 순간부터 다시 돌아와 집에 도착한 순간까지)에 포커스가 맞추어져 있다. 그 여행 내내 아이들은 반짝반짝 빛난다. 둘만의 여행이라 둘의 사이는 더욱더 돈독해지는데 레이나가 이츠카에게 "치ㅡ크!" 하며 뺨을 부비는 장면이 너무나도 눈부셨다.







아이들은 예상대로(?) 좋은 일과 나쁜 일, 혹은 그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없는 예기치 못한 일들을 겪으면서도 여행을 지속한다.(신용카드가 정지된 걸 아츠카가 아는 순간 상권이 끝나는 건 정말 절묘했다.) 여행하는 아이들과 그들을 기다리는 가족들의 이야기가 교차하여 나오는데, 그들의 여행보다 오히려 그들이 떠나온 집에서 일어나는 아슬아슬한 균열들이 더 마음을 졸이게 했다. 아이들을 걱정하고, 우려하고, 자랑스러워하거나, 응원하는 어른들, 혹은 화를 내고 있는 어른들은 단편적으로 등장하는데도 쉴 새 없이 이동하고 있는 아이들보다 더 불안정해 보인다. 여행에서 돌아온 아이들은 어떻게 될까, 책에서는 세세하게 알려주지 않았지만 책의 제목에서 유추해보건대, 아마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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