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보면 푸른 봄 1
지늉 지음 / 책들의정원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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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담한 키에 웃는 얼굴로 완전 무장한 채 사람들 사이로 파고들어 예쁨 받길 원하는 신입생 여 준, 훤칠한 키에 잘난 얼굴에도 늘 피곤하고 화난듯한 인상으로 퍽퍽한 삶을 버텨내며 살아가는 복학생 남수현. 겉으로 드러나기에는 하나도 닮은 바 없는 두 사람이 대학 캠퍼스에서 만났다. 그것도 좋은 인연이 되기는 하늘에 별 따기와 같다는 팀 과제로. 두 주인공의 첫 만남과 대학생이 되어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나름대로의 사교와 방어법을 익혀가는 과정을 보니 대학교 다닐 때의 난 어땠더라 하는 생각과 이어져 기억이 새록새록 났다. 이 책은 다음 웹툰에서 연재되었던 작가의 데뷔작이다. 그림의 첫인상은 단순히 예쁘다- 정도였는데 다 읽고 나니 엉성한듯하지만 다채롭게 변하는 인물들의 표정들이 더 인상적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외향적인 것과 내향적인 것의 갭이 있기 마련인데 주인공인 준은 그 갭이 매우 큰 사람인 것 같다. 물론 외향과 일치하게 기본적으로 긍정적이고 사랑스러운 성격도 갖고 있지만 가정적인 요인으로 인해 그 누구보다 외로움과 타인에 대한 포기가 큰 것을 속으로 숨겨가며 살고 있다. 부유하지만 냉정한 가족들과의 짧은 만남으로 드러난 것은 준이 가지고 있는 상처의 일부분이겠지만 그로 인해 흔들리고 힘들어하는 준의 이야기가 절절했다. 준과 반대로 수현은 겉과 속의 갭이 아주 작은 사람 같다. 거짓말이 싫고, 기분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필터링 없이 그대로 표출하며 살아간다. 물론 그가 그렇게 사교를 위한 사소한 거짓말이나 예의상 하는 빈말조차 하지 않는 성격이 된  바탕엔 그런 사소한 부분을 챙기기엔 그의 생활(아직까지 드러나기엔 주로 경제적인 면에서)이 너무나도 팍팍해 지쳐있기 때문이 아닐까. 아무튼 이런 두 사람의 갭이 외향적인 특징들을 정반대로 보이게 하지만 사실은 비슷한 내향적인 면을 지녔을 것 같다. 준이  수현을 보고 처음부터 '나와 닮은 사람일지도' 하고 느낀 것은 그런 이유가 아닐까. 사실을  전 3권으로 나온 완전 소장본의 제1권에 담긴 내용만으로 두 주인공의 캐릭터를 완전히 파악하기는 무리지만 어디에나 있을 법한 두 청년의 이야기가 무척 궁금하다.  


이야기의 앞부분이다 보니 주인공을 필두로 그 외 여러 등장인물들이 가볍게 소개되고 있지만,  아직 본격적인 갈등이나 큰 줄거리의 전개가 시작되지 않았다. 표지에 쓰인 "우리 집 룸메 조심"이란 문구가 무색하게 두 사람의 한집살이가 시작되지도 않았으니.  두 사람이 얼른 룸메이트가 되어서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친해졌으면 좋겠다. 타인 없이 두 사람만이 주고받던 핑퐁 같은 대화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믿을만한 사람이 되어줄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이 보였기에. 2권, 3권에서 가까이 보면 아수라장일지라도 멀리서 보면 푸른 봄과 같이 싱그러울 그들만의 대학생활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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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의 높은 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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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1부 집을 잃다, 2부 집으로, 3부 집. 이렇게 총 3부로 구성된 책은 각 부가 서로 다른 주인공, 시간적, 공간적 배경을 내세워 각각의 이야기가 무관한 듯 독립된 소설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하나의 끈처럼 이어진 이야기이며, 다른 듯 보이지만 여러가지 공통점과 반복적인 질문들이 등장해 3부의 이야기를 하나의 책으로 꽁꽁 묶어주고 있는 것 같다. 그만큼 방대하고 철학적이며 현실적인 동시에 몽환적인 이야기였다.
1부의 주인공 토마스는 아들과 아내, 아버지를 연달아 잃고, 직장(정확히는 직장인 박물관에서 파견보낸 기록보관소)에서 찾아낸 율리시스 신부의 일기로 알게된 기이한 십자고상을 찾아 리스본에서 포르투갈의 높은산으로 머나먼 길을 떠난다. 2부에서는 브라간사(포르투갈의 높은산 인근지역)의 병리학자 에우제비우 로조라가 하룻밤새 겪은 환상같은 이야기가 등장한다. 신앙과 미스테리 소설을 탐닉하던 그의 아내가 알수 없는 이유로 죽음을 맞았다. 하지만 새해를 맞이 하는 밤 그의 아내와, 죽은 남편의 시신을 이끌고 온 한 노부인이 차례로 그를 방문한다. 3부의 주인공은 캐나다 상원의원인 피터 토비이다. 아내와 사별한 후 지인의 권유로 휴가를 떠났다가 들린 미국의 영장류연구소에서 한 침팬지와 깊은 교감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꽤나 충동적인 결정으로 침팬지 '오도'를 사들이고 그의 부모가 살았던 터전이며 자신의 출생지인 포르투갈의 높은 산으로 이민을 결정한다.
일부뿐인 줄거리지만 이 세이야기를 읽으면서 내가 찾아낸 공통점은 죽음, 신앙, 침팬지, 포르투갈의 높은 산이라는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다. 주인공 세 사람은 모두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겪거나 가까이에서 죽음을 마주하게 되고, 신앙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들을 주고 받으며, 침팬지라는 유인원이(운명적이거나 충격적인 만남을 바탕으로) 이야기의 중간에 등장하고, 사건이 시작되는 배경은 다르지만 결론적으로 포르투갈의 높은산을 마지막 배경지로 삼는다.(다만 두번째 이야기만은 시체로 등장하는 라파엘 카스트루의 출신지이자 살아온 곳의 배경으로 나올 뿐이다.) 맨 처음 나는 각 부의 제목에 등장하는 "집"이라는 단어에 주목했다. 단순한 줄거리와 제목만으로 이해했을 때 1부의 '집'은 죽음으로서 헤어지게된 사랑하는 아내를 비롯한 가족이었으며, 침팬지의 형상을 한 십자고상을 찾아냄으로써 파괴되어버린 예수라는 고상한 존재에 대한 '믿음'이었다. 2부에서의 '집'은 마리아가 직접적으로 언급한 바에 따르면, 죽은 남편의 시체(온갖 오물과 새끼곰(=잃어버린 아이)과 침팬지를 품고 있는)였으며, 3부의 '집'은 침팬지 오도와 함께 정착하게 된 포르투갈의 높은산에 자리잡은 현실적인 집 혹은 자신의 삶을 차지하고 있는 어떤 존재에 의한 안도감 등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 같다. 피터는 자신이 충동적으로 침팬지 오드와의 삶을 선택하고 남들이 그 이유를 물어올 때 스스로도 잘 대답하지 못하지만 이미 오드가 자신의 삶을 차지하고 있다고 말한다.
  테레사의 말이 옳다. 오도는 그의 삶을 차지해버렸다. 그녀는 오도를 닦아주고 보살펴준다는 의미에서 한 말이다. 하지만 그 정도를 훨씬 넘어선다. 피터는 침팬지의 기품에 감동받았고,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갈 수가 없다. 그렇다면 이것은 사랑이다. 
  "테레사, 누구나 상황이 납득되는 순간을 찾고 싶어하잖아. 난 그곳을 떠나와 여기서 항상, 매일매일 그런 순간들을 발견해."    (본문 중 366p)

소중한 사람을 잃고 외로움과 괴로움에 휩쓸린 사람이 그 죽음을 극복하고 다시 삶으로의 의욕을 회복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어떻게 해야 자신을 삶을 차치해버릴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을까. 소설 속 세 사람은 그 발견을 위해 여행을 떠난다. 토마스와 피터가 실재적으로 포르투갈의 높은산으로 떠나는 여행을 감행한다면, 에우제비우는 포르투갈의 높은 산에서 살다가 자신을 찾아온 노부부와의 만남과 부검과정에서 벌어진 몽환적인 환상들을 통해 내면적인 여행을 거친다. 토마스와 에우제비우가 그 여행을 통해 다시 한번 슬픔과 절망을 느꼈다면 피터는 다행스럽게도 '오도'를 만났다. 잘 설명하기 어렵지만 앞서 발견한 공통점들은 '집'과 더불어 죽음과 삶의 철학적인 질문들에 대한 비유로도 보인다. 너무나 다르지만 어쩌면 단 하나의 이야기를 이렇게 풍성하고 매력적으로 이끌어낸 작가의 솜씨가 감탄스럽다. 이 책은 절대 도중에 끊어서는 안된다. 하나하나의 이야기도 물론 매력적이지만 온전히 읽고 난 후 몇번을 되짚어보고서야 완벽히 감탄할 수 있다. 이 책을 온전히 읽고 소개할 수 있으려면 나도 몇번의 완독이 더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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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에 마음을 묻다 - 그림책이 건네는 다정한 위로
최혜진 지음 / 북라이프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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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부분이 매력적이었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매력은 복잡 미묘하고 떄로는 이해 불가한 마음의 작용에 가만히 귀 기울여주고 공감해주는 그림책의 넉넉한 품이었다.  ( 중략 )  아이에게나 어른에게나 삶은 여러 순간 낯설고 거대하고 복잡한 얼굴을 드러낸다. 남아서 버틸 날을 초조하게 셈하는 근속연차 20년의 부장님도, 일상의 매순간을 살얼음판으로 만드는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도, 밥을 안칠 때마다 알 수 없는 서러움이 솟는 주부도, 늘 남보다 나은 성과를 내기 위해 달음박질하는 30대 직장인도, 꿈이라는 막막한 단어앞에서 자책하는 20대도, 하루 종일 오지선다 문제들에 갇혀지내는 고등학생도 어느 날 갑자기 불안과 질문으로 마음이 가득 찰 때가 있다. 그런 불안을 다독여주고 질문에 답해줄 수 있는 이야기가 그림책 안에 있다면 비단 아이들만 읽어야 할 이유는 없다.      - 프롤로그 중 7,8p


 

프롤로그에서 밝힌 위와 같은 이유로, 다시 말해 상처 입고 고민 많은 누군가가 자신에게 딱 맞는 그림책을 추천받아 그림책의 넉넉한 품에 기댈 수 있게끔(그 효과가 있으리란 맹목적인 믿음하에) 책의 저자는 자신의 블로그에 '그림책 처방'이란 페이지를 연재했다. 에디터 C에게 보낸 사연에 답하여 저자는 성심성의껏 답장을 쓰며 함께 고민하고 한 권의 책을 소개한다. 저자의 답장과 그림책 소개 부분도 물론 흥미롭고 공감하며 읽었지만 본문 전에 등장하는 저자가 받은 사연들 또한 다채롭다. 사연을 보낸 사람 전부가 나이와 신분을 밝힌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으며 드러난 힌트를 보자면 대학생, 임용고시생, 직장인, 프리랜서, 주부 등등 다양한 인간군이 나온다. 천진한 10대나, 60대 이상의 어르신들도 편지를 보내왔을까 궁금해하며 책을 덮었는데 이런 궁금증은 조만간 책날개에 쓰인 저자의 블로그로 들어가 살펴봐야 할 것 같다.  


 

 

나는 그림책을 좋아한다. 어린아이도 아니고 아이가 있는 부모도 아니지만 어마어마하게 쏟아져 나오는 그림책 중에서 보물 같은 책들이 많다는 걸 알고 어느샌가 집 앞 도서관의 아동문헌실로 발걸음을 옮기거나 헌책방에 가서 그림책 코너를 기웃거리기도 한다. 이미 방의 책장 한 칸은 다양한 크기의 그림책들이 차지하고 있다.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는 그런 보물 같은 그림책을 추천받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런 마음에 이 책은 충분한 보답을 해주었다. 본문에 소개된 그림책의 표지와 속지 몇 장들이 고스란히 들어가 있는 점이 마음에 쏙 들었다. 글 속에 소개된 그림책의 내용 설명도 상당히 상세한 편이고 사연과 결부 지어 저자가 전하고 싶은 말도 명확하게 표현되어 있어 읽기 편한 글이었다. 사연들이 가볍지 않은 만큼 저자도 그만큼의 무게감과 책임감을 갖고 신중하게 표현하려 한 것이 느껴져서 나처럼 가볍게 책을 펼친 사람도 묵묵하게 진지하게 책을 읽어내리게 만들었다.

 

저자의 답장이 사연을 보낸 이의 마음에 꼭 맞는 책을 찾아내 주었는지는 알수 없지만, 나는 책을 읽으면서 읽고 싶고 갖고 싶은 그림책들이 참 많이 늘었다. 중간중간에 포함된 '그림책 작가 이야기'는 한 명의 작가를 집중 조명하면서 이런저런 사연이 없이 읽어도 매력적인 그림책을 다수 추천한다. 가장 인상 깊었던 독일 작가 '볼프 에를브루흐'의 내용에서 작가에 대한 믿음을 설명한 마지막 부분을 발췌한다.

 

그는 인터뷰에서 "출판된 아동도서의 90퍼센트는 출판사가 돈을 벌기 위해 동어 반복한 불필요한 잉여분이다."라고 일갈할 정도로 잘 만든 좋은 책의 기준이 높다. 이런 사유의 깊이와 작가정신을 가진 지닌 사람이 지은 그림책이라니, 열렬히 지지하고 신뢰할 수밖에.     - 본문 중 77p, 그림책 작가 이야기 01  


 
대학생 때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문학>청소년 문학>그림책으로도 관심의 가지를 뻗어나갔다. 내가 좋아하는 책을 남들에게도 읽게 하고 싶은데 문장들로 가득한 책을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조금 더 쉽게 책에 접근할 방법을 찾다가 그렇게 된 것 같다. 내가 책을 읽고 난 후 받은 감동과 여러 가지 감정, 떠오른 생각, 치유 효과, 어느샌가 조금씩 넓혀지는 생각과 지식의 틀. 이런 것들은 설명하기 어렵지만 분명 책의 덕분인데 그것을 함께 공유하기 위해서 남들에게 책을 추천하고 반응을 이끌어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인문치료, 독서치료, 독서지도 등등 관심 있는 분야에 조금씩 귀를 열어가고 있는 정도였는데 이 책의 저자는 전문가나 직업으로서가 아니더라도 이미 실행에 옮기고 있었다.

 

그림책은 읽기 쉽고 그림이 그려져 있다는 것 외에도 정말 많은 매력이 있다. 예전에는 아이들을 위한 책이라는 의미에서 그림책=아동도서라고 생각하기도 했는데 지금에 와서는 그게 꼭 맞는 표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좋은 책은 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두가 읽을 수 있는 책'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는데 그림책이 그 좋은 책이 안될 이유가 없다. 나는 남들보다 조금 빨리 그림책의 매력을 알아챈 사람이라 살짝 자부해보면서 이 책을 읽게 될 많은 사람들이 그림책의 재발견을 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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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담한 하지만 뾰족한 - 자신을 이해하고 타인을 사랑하는 이들과의 그림 같은 대화
박재규 지음, 수명 그림 / 지콜론북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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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규의 '위로의 그림책'을 보고 힘을 얻은 적이 있다. 내 스스로 마음에 닿았던 글도 있지만 함께 그 책을 읽은 어머니가 내용을 되새기고 가족들에게 기운차게 그 이야기를 전달할 때, 그 모습을 보며 괜히 뿌듯하고 나도 함께 힘을 얻었다. 제목처럼 어머니에게 위로를 전해준 그 책이 고마웠다. 그래서 동일 저자의 '담담한 하지만 뾰족한'이란 책이 나왔을 때 이전의 책처럼 가족들과 함께 보며 마음에 드는 내용을 서로 골라 이야기할 수 있는 책이길 바랐다.


질문을 "......"으로 대체했지만 대화이기에 부드러운 존대어에 차분한 흑백 그림이 어우러진 책이다. 164번의 대화의 짤막한 토막들이지만 저마다의 주제를 가지고 진솔한 이야기를 전한다. 책의 제목처럼 담담하지만 가끔은 뾰족하고 단호하게 여러 주제에 대해 말하고 있다. 스스로 되뇌고 마는 생각의 토막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전달하는 대화의 부분이어서 그런지, 한번 읊고 사라지는 혼잣말이 아니라 작가로서 선배로서 멘티로서 혹은 누군가의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전하는 진심 어린 조언 같아서 이 글이 참 따듯했다.

 

어차피 돌들은 사는 동안 끊임없이 당신의 가슴속으로 던져지겠지요.
결국 산다는 건 그 돌을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일 것인가의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고요한 호숫가에 던져진 돌들처럼 그 돌을 받아들이며 살 것인지
아니면 꽝꽝 언 호수의 빙판 위로 던져진 돌들처럼 그 돌을 튕겨내며 살 것인지...

                                                         -본문 중 15p, #001 파장에 대해


 
우리는 모두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만약 난 누구와도 연결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인간이 있다면

저는 그에게 묻고 싶습니다.
그럼 당신의 배에 있는 그 배꼽은 뭔가요?

                                                        -본문 중 84p, #047 연결에 대해



이 많은 대화는 크게 4부로 나누어지는데 각부의 제목을 보면 긍정, 존재(연결), 역경(기회), 본질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각 페이지의 상부 모서리엔 본문보다 작은 글씨로 (자칫 읽지 않고 지나가기 쉬운)제목들도 쓰여있다. 개인적으로는 본문을 먼저 읽고 각 제목을 맞춰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작가의 에필로그에 쓰인 대로 "......"으로 대체된 질문들이 무언인지 생각해보며 읽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각 부의 이름이나 대화에 달린 제목들을 크게 의식하지 않고 읽었을 때도 이 책이 주로 하고 싶은 말은 위로나 조언, 자신이 살아가다 보니 알게 된 사소한 이치들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읽을 때는 그리 떠올리지 못했는데 이 글이 대화라는 것을 인지하고 나자, 글의 사근사근한 투와 그 내용들이 더 마음에 와닿고 기억에도 더 많이 남았다. 사람들은 보통 자신이 체험한 것들, 혹은 그 체험으로부터 얻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내며 서로를 다독이고 위로하고 서로에게 이해받기 마련이니까.

내 경우에는 특히 꿈에 대한 이야기(이상적이거나 현실적인 조언들)가 많이 기억에 남는데 그 분량이 실제적으로 많은지, 아니면 내 지금 상황이나 고민을 떠올리게 해서 그런 건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하지만 누구나 이 책을 읽으면 특히나 기억에 남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아마도 그 내용은 현재 자신에게 사색이나 조언이 필요한 부분이 아닐까. 작가의 이전 책만큼이나, 혹은 그보다 더 묵직한 매력이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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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왕자 1 - 조선의 마지막 왕자
차은라 지음 / 끌레마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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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 전에 알고 있던 이우 왕자의 이야기는 그 시대에도 지금에도 통용될만큼 빼어난 미남자였다는 것, 그 시대의 많은 조선인들과 마찬가지로 일본군에 들어가 전쟁 중에 최후를 맞이했다는 것 정도였다. 책을 읽게되면서 더 알게된 건 그의 아버지 의친왕이 독립운동을 위해 상해로의 망명을 시도했었다는 것과 이우왕자가 그 당시의 왕족 중 유일하게 조선여성과 결혼했다는 것이었다. 문득 덕혜옹주의 이야기가 영화화되면서 그녀를 절절한 독립투사로 둔갑시켰다는 비판을 많이  받았던 것이 생각났다. 그녀의 실제 삶과 그 마음 속은 어떠했는지 지금와서 명명백백 밝히기는 불가능하지만 실제로 기록된 그녀의 삶에서 적극적인 독립운동이나 저항적인 면모는 그다지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 일반적인 의견인 것 같다. 그에 비하면 이우 왕자의 흔적은 제법 드러나는 부분이 있다. 내선일체를 들먹이며 남아있는 왕공족을 일본 황족 혹은 귀족들과 결혼시키던 그 시기에 조선여성과 결혼했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었다는 것쯤은 알겠다. 이 단서 하나만으로도 그의 외모와 더불어 세기의 연애담을 만들어 내거나, 일본에 저항하여 왕족의 혈통과 자존감을 지켜내려 한 투사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기에 충분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매력적인 주인공 감인 이우 왕자의 이야기가 지금껏 책으로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이 의아할 정도였다. 

 

 

 

총 2권으로 나누어진 이 책은 이우왕자의 실제 사진을 표지로 하고 있어 더욱 눈길이 간다. 실제 인물과 역사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인 만큼 초반엔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느 부분이 더해진 것인지 의심하며 읽어나갔다. 최근 한국사를 공부하고 있는 참이라 여러 역사적 사건이나 단서들을 조합하며 읽는 게 제법 재미있었다. 하지만 고증을 위한 책읽기가 아닌만큼 나중에 가서는 그저 인물에 집중하여 이우왕자의 신념과 행보, 일제에 의한 시련에 굴복하거나 극복해가는 이야기 하나하나에 빠져 읽어갈 수 있었다.(사실 문체나 몇몇 에피소드의 디테일은 조금 어색하다고 할까, 읽기 불편한 정도는 아니지만 아주 매끄럽고 내내 좋기만 한 빼어난 소설은 아니었다. 하지만 인물이 가진 스토리와 주변인물들의 이야기 자체가 꽤 풍부한 편이라 구성은 지루하지 않아 끝까지 읽기에 어려움은 없었다.)

 

 

1권에서는 이우 왕자가 성년식을 하기 전후의 시기-주로 이전의 이야기, 그의 성년식이야기를 마지막으로 1권이 끝이난다-로, 그의 졸업 이후 일본에 의해 정해진 앞길-어느 부대의 장교로 임명되고, 일본 여성과의 결혼을 추진하는 등-에 자신의 신념을 꺾지 않기 위한 준비과정 등이 주요 이야기로 나온다. 의친왕의 망명을 도우려했던 독립운동가의 딸로서 이야기의 주요인물인 정희와의 만남과 이우 왕자에겐 고모인 덕혜옹주의 결혼이야기, 친일파 박영효 일가와 그의 손녀딸 박찬주의 이야기 등 그 시대의 인물들과 얽힌 이우왕자의 이야기가 다양하게 진행된다. 젊은 청년시절의 이야기가 주를 이뤄 고집있고 담대한 성격의 그가 군사학교나 일제의 감시하에서도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내는 장면들이 은근히 통쾌하고 멋지게 그려져있다. 

 

2권에서는 성년이 된 그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우왕자를 비롯한 그의 동생 진원과 그 외 주변 인물들의 결혼이야기, 상해로 떠나 임시정부에무사히 합류한 정희의 이야기가 동시에 진행된다. 역사의 이야기는 이미 끝이 공개되어 있는지라 두 사람의 씁쓸한 결말은 어쩔 수 없었다. 해방 전후를 살아간 인물 중에 일본군의 장교로서 일본과 조선의 현 정황을 실제에 가깝게 파악하고 일본의 항복 직전 상황을 바라본 시점은 흔치 않은 것이라 신선했다. 소설이라는 장르에 기대 이우 왕자의 기적적인 생환을 끈질기게 기대했지만 오히려 더 충격적인 밀담이 하나 더 더해진 결말은 믿기 싫지만 왠지 있을 법해서 제법 충격을 받았다.

 

 

조선왕조가 대한제국이 되고, 일제강점기의 암흑같은 역사가 진행될 때 여전히 남아있는 왕족의 핏줄들이 있었다.  일본에게 끊임없이 견제받고 이용당하는 와중에 더이상 왕족으로의 존경과 권위를 누리지 못하고 민중들의 기대와 관심 또한 점차 옅어져갔지만 그들도 그 시대를 함께 겪어나가고 있었다. 고종과 순종을 마지막으로 우리의 역사에서 주목받지 못한 여러 왕족들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오랜시간 지켜왔던 왕조의 마지막을 제대로 지켜보고, 우리 민족이 겪었던 아픈 역사를 그들 또한 그들만의 고초를 이겨내며 지나오고 있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인식하게 만들어주는 계기를 만들어준다. 그 시기를 겪은 우리의 이야기가 아픈만큼 그들의 이야기도 비참하고 슬프기 짝이없다. 이미 책과 영화로 많은 인기를 얻은 덕혜옹주의 이야기처럼 '이우왕자'의 이야기 역시 많은 사람들에게 퍼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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