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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의 높은 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1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1부 집을 잃다, 2부 집으로, 3부 집. 이렇게 총 3부로 구성된 책은 각 부가 서로 다른 주인공, 시간적, 공간적 배경을 내세워 각각의 이야기가 무관한 듯 독립된 소설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하나의 끈처럼 이어진 이야기이며, 다른 듯 보이지만 여러가지 공통점과 반복적인 질문들이 등장해 3부의 이야기를 하나의 책으로 꽁꽁 묶어주고 있는 것 같다. 그만큼 방대하고 철학적이며 현실적인 동시에 몽환적인 이야기였다.
1부의 주인공 토마스는 아들과 아내, 아버지를 연달아 잃고, 직장(정확히는 직장인 박물관에서 파견보낸 기록보관소)에서 찾아낸 율리시스 신부의 일기로 알게된 기이한 십자고상을 찾아 리스본에서 포르투갈의 높은산으로 머나먼 길을 떠난다. 2부에서는 브라간사(포르투갈의 높은산 인근지역)의 병리학자 에우제비우 로조라가 하룻밤새 겪은 환상같은 이야기가 등장한다. 신앙과 미스테리 소설을 탐닉하던 그의 아내가 알수 없는 이유로 죽음을 맞았다. 하지만 새해를 맞이 하는 밤 그의 아내와, 죽은 남편의 시신을 이끌고 온 한 노부인이 차례로 그를 방문한다. 3부의 주인공은 캐나다 상원의원인 피터 토비이다. 아내와 사별한 후 지인의 권유로 휴가를 떠났다가 들린 미국의 영장류연구소에서 한 침팬지와 깊은 교감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꽤나 충동적인 결정으로 침팬지 '오도'를 사들이고 그의 부모가 살았던 터전이며 자신의 출생지인 포르투갈의 높은 산으로 이민을 결정한다.
일부뿐인 줄거리지만 이 세이야기를 읽으면서 내가 찾아낸 공통점은 죽음, 신앙, 침팬지, 포르투갈의 높은 산이라는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다. 주인공 세 사람은 모두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겪거나 가까이에서 죽음을 마주하게 되고, 신앙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들을 주고 받으며, 침팬지라는 유인원이(운명적이거나 충격적인 만남을 바탕으로) 이야기의 중간에 등장하고, 사건이 시작되는 배경은 다르지만 결론적으로 포르투갈의 높은산을 마지막 배경지로 삼는다.(다만 두번째 이야기만은 시체로 등장하는 라파엘 카스트루의 출신지이자 살아온 곳의 배경으로 나올 뿐이다.) 맨 처음 나는 각 부의 제목에 등장하는 "집"이라는 단어에 주목했다. 단순한 줄거리와 제목만으로 이해했을 때 1부의 '집'은 죽음으로서 헤어지게된 사랑하는 아내를 비롯한 가족이었으며, 침팬지의 형상을 한 십자고상을 찾아냄으로써 파괴되어버린 예수라는 고상한 존재에 대한 '믿음'이었다. 2부에서의 '집'은 마리아가 직접적으로 언급한 바에 따르면, 죽은 남편의 시체(온갖 오물과 새끼곰(=잃어버린 아이)과 침팬지를 품고 있는)였으며, 3부의 '집'은 침팬지 오도와 함께 정착하게 된 포르투갈의 높은산에 자리잡은 현실적인 집 혹은 자신의 삶을 차지하고 있는 어떤 존재에 의한 안도감 등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 같다. 피터는 자신이 충동적으로 침팬지 오드와의 삶을 선택하고 남들이 그 이유를 물어올 때 스스로도 잘 대답하지 못하지만 이미 오드가 자신의 삶을 차지하고 있다고 말한다.
테레사의 말이 옳다. 오도는 그의 삶을 차지해버렸다. 그녀는 오도를 닦아주고 보살펴준다는 의미에서 한 말이다. 하지만 그 정도를 훨씬 넘어선다. 피터는 침팬지의 기품에 감동받았고,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갈 수가 없다. 그렇다면 이것은 사랑이다.
"테레사, 누구나 상황이 납득되는 순간을 찾고 싶어하잖아. 난 그곳을 떠나와 여기서 항상, 매일매일 그런 순간들을 발견해." (본문 중 366p)
소중한 사람을 잃고 외로움과 괴로움에 휩쓸린 사람이 그 죽음을 극복하고 다시 삶으로의 의욕을 회복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어떻게 해야 자신을 삶을 차치해버릴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을까. 소설 속 세 사람은 그 발견을 위해 여행을 떠난다. 토마스와 피터가 실재적으로 포르투갈의 높은산으로 떠나는 여행을 감행한다면, 에우제비우는 포르투갈의 높은 산에서 살다가 자신을 찾아온 노부부와의 만남과 부검과정에서 벌어진 몽환적인 환상들을 통해 내면적인 여행을 거친다. 토마스와 에우제비우가 그 여행을 통해 다시 한번 슬픔과 절망을 느꼈다면 피터는 다행스럽게도 '오도'를 만났다. 잘 설명하기 어렵지만 앞서 발견한 공통점들은 '집'과 더불어 죽음과 삶의 철학적인 질문들에 대한 비유로도 보인다. 너무나 다르지만 어쩌면 단 하나의 이야기를 이렇게 풍성하고 매력적으로 이끌어낸 작가의 솜씨가 감탄스럽다. 이 책은 절대 도중에 끊어서는 안된다. 하나하나의 이야기도 물론 매력적이지만 온전히 읽고 난 후 몇번을 되짚어보고서야 완벽히 감탄할 수 있다. 이 책을 온전히 읽고 소개할 수 있으려면 나도 몇번의 완독이 더 필요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