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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에 마음을 묻다 - 그림책이 건네는 다정한 위로
최혜진 지음 / 북라이프 / 2017년 11월
평점 :
많은 부분이 매력적이었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매력은 복잡 미묘하고 떄로는 이해 불가한 마음의 작용에 가만히 귀 기울여주고 공감해주는 그림책의 넉넉한 품이었다. ( 중략 ) 아이에게나 어른에게나 삶은 여러 순간 낯설고 거대하고 복잡한 얼굴을 드러낸다. 남아서 버틸 날을 초조하게 셈하는 근속연차 20년의 부장님도, 일상의 매순간을 살얼음판으로 만드는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도, 밥을 안칠 때마다 알 수 없는 서러움이 솟는 주부도, 늘 남보다 나은 성과를 내기 위해 달음박질하는 30대 직장인도, 꿈이라는 막막한 단어앞에서 자책하는 20대도, 하루 종일 오지선다 문제들에 갇혀지내는 고등학생도 어느 날 갑자기 불안과 질문으로 마음이 가득 찰 때가 있다. 그런 불안을 다독여주고 질문에 답해줄 수 있는 이야기가 그림책 안에 있다면 비단 아이들만 읽어야 할 이유는 없다. - 프롤로그 중 7,8p
프롤로그에서 밝힌 위와 같은 이유로, 다시 말해 상처 입고 고민 많은 누군가가 자신에게 딱 맞는 그림책을 추천받아 그림책의 넉넉한 품에 기댈 수 있게끔(그 효과가 있으리란 맹목적인 믿음하에) 책의 저자는 자신의 블로그에 '그림책 처방'이란 페이지를 연재했다. 에디터 C에게 보낸 사연에 답하여 저자는 성심성의껏 답장을 쓰며 함께 고민하고 한 권의 책을 소개한다. 저자의 답장과 그림책 소개 부분도 물론 흥미롭고 공감하며 읽었지만 본문 전에 등장하는 저자가 받은 사연들 또한 다채롭다. 사연을 보낸 사람 전부가 나이와 신분을 밝힌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으며 드러난 힌트를 보자면 대학생, 임용고시생, 직장인, 프리랜서, 주부 등등 다양한 인간군이 나온다. 천진한 10대나, 60대 이상의 어르신들도 편지를 보내왔을까 궁금해하며 책을 덮었는데 이런 궁금증은 조만간 책날개에 쓰인 저자의 블로그로 들어가 살펴봐야 할 것 같다.
나는 그림책을 좋아한다. 어린아이도 아니고 아이가 있는 부모도 아니지만 어마어마하게 쏟아져 나오는 그림책 중에서 보물 같은 책들이 많다는 걸 알고 어느샌가 집 앞 도서관의 아동문헌실로 발걸음을 옮기거나 헌책방에 가서 그림책 코너를 기웃거리기도 한다. 이미 방의 책장 한 칸은 다양한 크기의 그림책들이 차지하고 있다.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는 그런 보물 같은 그림책을 추천받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런 마음에 이 책은 충분한 보답을 해주었다. 본문에 소개된 그림책의 표지와 속지 몇 장들이 고스란히 들어가 있는 점이 마음에 쏙 들었다. 글 속에 소개된 그림책의 내용 설명도 상당히 상세한 편이고 사연과 결부 지어 저자가 전하고 싶은 말도 명확하게 표현되어 있어 읽기 편한 글이었다. 사연들이 가볍지 않은 만큼 저자도 그만큼의 무게감과 책임감을 갖고 신중하게 표현하려 한 것이 느껴져서 나처럼 가볍게 책을 펼친 사람도 묵묵하게 진지하게 책을 읽어내리게 만들었다.
저자의 답장이 사연을 보낸 이의 마음에 꼭 맞는 책을 찾아내 주었는지는 알수 없지만, 나는 책을 읽으면서 읽고 싶고 갖고 싶은 그림책들이 참 많이 늘었다. 중간중간에 포함된 '그림책 작가 이야기'는 한 명의 작가를 집중 조명하면서 이런저런 사연이 없이 읽어도 매력적인 그림책을 다수 추천한다. 가장 인상 깊었던 독일 작가 '볼프 에를브루흐'의 내용에서 작가에 대한 믿음을 설명한 마지막 부분을 발췌한다.
그는 인터뷰에서 "출판된 아동도서의 90퍼센트는 출판사가 돈을 벌기 위해 동어 반복한 불필요한 잉여분이다."라고 일갈할 정도로 잘 만든 좋은 책의 기준이 높다. 이런 사유의 깊이와 작가정신을 가진 지닌 사람이 지은 그림책이라니, 열렬히 지지하고 신뢰할 수밖에. - 본문 중 77p, 그림책 작가 이야기 01
대학생 때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문학>청소년 문학>그림책으로도 관심의 가지를 뻗어나갔다. 내가 좋아하는 책을 남들에게도 읽게 하고 싶은데 문장들로 가득한 책을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조금 더 쉽게 책에 접근할 방법을 찾다가 그렇게 된 것 같다. 내가 책을 읽고 난 후 받은 감동과 여러 가지 감정, 떠오른 생각, 치유 효과, 어느샌가 조금씩 넓혀지는 생각과 지식의 틀. 이런 것들은 설명하기 어렵지만 분명 책의 덕분인데 그것을 함께 공유하기 위해서 남들에게 책을 추천하고 반응을 이끌어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인문치료, 독서치료, 독서지도 등등 관심 있는 분야에 조금씩 귀를 열어가고 있는 정도였는데 이 책의 저자는 전문가나 직업으로서가 아니더라도 이미 실행에 옮기고 있었다.
그림책은 읽기 쉽고 그림이 그려져 있다는 것 외에도 정말 많은 매력이 있다. 예전에는 아이들을 위한 책이라는 의미에서 그림책=아동도서라고 생각하기도 했는데 지금에 와서는 그게 꼭 맞는 표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좋은 책은 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두가 읽을 수 있는 책'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는데 그림책이 그 좋은 책이 안될 이유가 없다. 나는 남들보다 조금 빨리 그림책의 매력을 알아챈 사람이라 살짝 자부해보면서 이 책을 읽게 될 많은 사람들이 그림책의 재발견을 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