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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등고래 모모의 여행
류커샹 지음, 하은지 옮김 / 더숲 / 2018년 2월
평점 :
미하엘 엔데의 모모가 떠올라서 반가웠고, 우리 세대의 처지를 표현한 고래 그림(작은 링을 통과하려고 그 앞을 서성이는 커다란 고래 그림)이 떠올라서 내 멋대로 동병상련의 마음을 가졌다. 외로움과 겁은 많은 데다 삶의 목표를 잃고 바다를 헤매는 고래의 이야기라니 더욱 그랬다. 헤매더라도 일단 길은 나섰으니 무언가 느끼고 찾아내었겠지, 가만히 그대로 둥둥 떠 있는 채 숨만 쉬는 것보다는 무언가 변했기에 이야기가 되었겠지 하는 기대를 걸고 책을 펼쳤다.
하지만 내 상상과는 조금 다른 책이었다. 강어귀를 역류해 늪지로 찾아가는 모험을 하는 모모는 늙은 고래였고, 죽음을 앞두고 있었으며,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는다. 흔히 '방황'과 '모험'하면 떠올리기 쉬운 젊음과 활기와 역경을 극복해가는 과정 등이 다이내믹하게 진행되는 그런 이야기도 아니었다. 물론 젊은 고래였을 시절, 바이야와 함께 늪지까지 회유하는 이야기도 나오지만 그때도 모모는 역시 삶의 재미를 잃고 겁 많은 고래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읽다 보면 알게 되는 것은, 모모는 한결같이 모모 다웠으며, 그가 살아온 과정을 추억했을 때 특별하게 느껴졌던 생의 마지막에 꼭 다시 해야 할 일을 찾아내었으며, 그 과정을 지금까지처럼 자신만의 템포로 해내고 있다는 것이었다.

동화와 소설을 동시에 읽고 있는 기분이었다. 책 도중에 삽입된 그림에는 몇 줄의 짧은 글이 함께 쓰여있는데, 본문의 글에서 내용을 함축하거나 장면에 맞게 재편집하여 쓰여있다. 그림보다 앞서 나온 내용이거나 뒤쪽에 쓰인 내용이어서 자연스레 이어진다기 보다 그 그림이 그려진 동일 원작의 그림책을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한가지 색으로 정성스레 그려진 그림은 책의 저자가 직접 그린 것으로 정갈한 분위기나 실물에 가까운 생생한 멋이 있어서 실제로 그림책으로 출간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겼다.
혹등고래 모모의 이야기와 할아버지를 따라 늪지를 찾아온 샤오허의 이야기가 교차적으로 진행되는데, 두 이야기의 인물들이 만나는 지점이 두근거리면서 감동적이었다. 작가가 실제로 강에 출현한 고래들의 이야기를 접하고 가슴이 두근거렸던 것처럼, 그 고래의 속마음은 알 수 없지만 눈앞에서 마주하게 된 거대한 생명체(그것도 자주 볼 수 없는)의 특이 행동을 바라보는 것은 쉬이 상상할 수 없는 생각과 감동을 전해줄 것 같다. 인간들의 허둥지둥하지만 그 고래를 위해 행동하는 모습이나 고래가 노래를 부른 후 유유히 되돌아가는 모습은 정적이었던 전체적인 이야기 안에서 꽤나 유쾌하고 로맨틱한 느낌마저 주었다.
살다 보면 누구나 해보는 일을 해보기도 하고(모든 수컷 고래가 호위 고래가 되어 암컷 고래와 짝짓기를 하는 것처럼), 누군가의 용기에 편승해서 일생일대의 도전(바이야와 함께 한 강으로의 역류)을 해보기도 한다. 모모가 늘 있던 익숙하던 바다를 떠나 강의 밑바닥과 늪지를 찾아가는 과정은, 젊어서는 도전이 되기도 하고 늙어서는 휴식이 되기도 한다. 책의 후기에서 저자가 밝힌 바로 혹등고래의 수명은 40~50살이라고 한다. 사람보다 조금 더 짧은 삶이지만 모모의 이야기는 마치 한 사람의 삶을 엿보는 것과 같았다. 생의 마지막에 짧게나마 마주친 인간들과의 만남이 모모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았기를, 그리고 인간들이 들려준 노래가 그의 마지막 휴식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