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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의 저택 ㅣ 폴라 데이 앤 나이트 Polar Day & Night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조호근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8년 1월
평점 :
"부디, 제발, 저도 지금 도착할 가족들처럼
자라나게 해주세요. 늙지도 않고, 죽을 수도 없는 존재가 되게
해주세요." - 본문 중 61p
"우리 아가. 우리는 너를 사랑한단다. 모두 너를 사랑해. 네가 우리와 다른 존재라도, 네가
언젠가 우리를 떠나게 되더라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단다." 어머니는 소년의 볼에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네가 죽음을 맞이해도 우리는 네 뼈를
건드리지 않을 거란다. 약속할게. 영원토록 편안히 누워 있게 될 거야. 매년 핼러윈 이브가 찾아올 때마다 너를 보러 가서 단단히 붙들어줄
거야." - 본문 중 82, 83p
유령 혹은 그 이상의 모든 미신적 존재들은 모두 한 가족이다.
전 세계에 퍼져 있는 그들은 시월, 핼러윈 이브를 맞아 시월의 저택에서 가족모임을 맞는다. 물론 시월의 저택에 상주하는 가족도 있는데 천 번
고조할머니, 어머니, 아버지, 세시, 그리고 티모시가 바로 그들이다. 그 안에서 유일하게 살아있는 '인간'의 아이 티모시는 온 가족이 모이는
핼러윈 이브를 맞이하며 자신이 그들과 같은 존재가 되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저택에 살고 있는 가족들의 이야기, 그리고 저택에 잠시 머물다 가는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미국 환상문학의 대가, 레이 브래드버리의 연작소설이 하나의 소설책으로 모였다. 1950년대에 주로 쓰인
단편들, 그리고 책의 출간을 위해 개작 혹은 새로 쓰인 단편까지 합해 하나의 소설이 된 이 이야기는 장르의 이름만큼이나 환상적이었다.
"죽음은 신비로운 것이란다." 어머니가 티모시의 뺨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삶은 더욱 신비롭지. 네가 고르면 된단다.
그리고 삶의 끝자락에서 먼지가 되어 흩날리는 일도, 모두 단순히 이상하다고는 표현할 수 없는 일이 아니겠니?"
"그렇겠죠.
하지만-."
"받아들여." 아버지가 포도주 잔을 높이 들면서 말했다. "그리고 이 기적을 축하해라." -본문 중
180p
아침에는 잠들고 해 질 무렵 깨어나 활동을 시작하며, 침대가 아닌 상자에 몸을 뉘고, 몸이
사라져도 어딘가에 깃들어 유지되기도 하며,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머무는 것이 가능한 존재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평범한
인간들이면 갖지 못하는 특징을 지니고 해내지 못하는 일을 해내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어린 티모시는 그들의 가족으로 자라며 그들과 같은 존재가
되길 바라며 그들과의 이질성을 순수하게 느끼고 반응한다. 티모시 이외의 등장인물들을 단순히 유령이라고만 표현하기에는 어색하지만 그들과 티모시의
가장 큰 차이는 역시 '살아있음'과 '죽음'이 아닐까. 시적인 상상력과 풍부한 은유가 가득한 문장들은 꽤나 담담하고 생기발랄한 느낌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나가지만 그 안에서 자주 등장하고 자꾸 생각하게 만드는 테제 또한 삶과 죽음이었던 것 같다. 어릴 때부터 그들과 함께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온 티모시는 여전히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고 하니, 책의 마지막에서 티모시가 준 힌트처럼 '귀를 기울이면' 나도 언젠가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날이 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