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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쁜 딸입니다 ㅣ 라임 청소년 문학 65
파스칼린 놀로 지음, 김자연 옮김 / 라임 / 2024년 5월
평점 :

나는 나쁜 딸입니다
파스칼린 놀로 지음 / 김자연 옮김
라임 / 2024.5.17.
아버지는 의처증으로 어머니를 폭행했다. 무차별적인 폭력 앞에 무기력한 어머니, 그리고 주인공과 어린 동생은 그런 가정 환경에 그대로 노출되어 살고 있었다. 주인공은 어머니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 자리를 피하고 싶은 마음만은 간절했지만, 최소한 동생들을 보호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자신도 어린 아이임에도 불구하고 애쓰는 모습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내가 아빠의 폭력에 휩쓸릴 상황에 놓일 때 마다 엄마가 나서서 방패가 되어 주었다. 내게 엄마는 피난처와도 같았다. 그런데 나는 엄마 혼자 그 모든 걸 감당하도록 내버려둔 채 도망쳤다. 동생들을 보호한다는 구실을 내세우고는 잽싸게 숨어버렸다. 나는 항상 좋은 누나가 되려고 노력했지만, 엄마에게는 나쁜 딸이었다. "아이가 부모를 보호해야 할 의무는 없어. 부모로부터 자신을 지켜야 하는 일이 생겨서도 안 되고." (p.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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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복도에서 리라의 기억은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리라의 기억은 여러가지 색깔로 표현되었다. 하얀색의 병원 복도였다가, 어두컴컴한 화장실, 빨갛고 빨갰던 부엌, 그리고 회색빛이였던 욕실까지……. 리라의 기억은 여러가지 색상에 비유되어 표현되지만 결국 리라에게 온 세상은 회색빛으로 기억된다. 아빠가 엄마를 때린 여느 날도, 아빠가 엄마를 죽인 어제도 타인들에게는 여느 때와 같이 아주 평범한 날이었을 것이다. 엄마를 구하지 못한 나쁜 딸인 '리라'에게는 또 다른 상처를 남겼지만 말이다. 엄마가 맞던 날들도, 엄마가 죽던 날도 리라에겐 온통 회색빛이였다.


어제, 아빠가 엄마를 때렸다.
여느 때와 같이 아주 평범한 날이었다.
다만 어두운 하늘과 비명 소리로 흐렸던…….
무관심한 사람들의 마음처럼 세상은 온통 회색이었다.
(p. 9)
어제, 아빠가 엄마를 죽였다.
순식간에 모든 게 얼어붙어 버린 날이었다.
어두운 하늘과 비명 소리로 흐렸던…….
무관심한 사람들의 마음처럼 세상은 온통 회색이었다.
(p.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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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끊임없는 폭력에 시달리면서도 아빠에게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리라에게 아빠에게서 벗어나겠다고 말하지만 결국 여전히 그 자리 그대로 머물렀다. 아빠는 황금빛 가면의 남자이다. 자신의 이중성을 감추기 위해 밖에서는 의인처럼 행동하고, 집에서는 폭력성을 여과없이 드러냈다.
할머니는 자신의 딸이 습관적인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엄마 스스로 선택한 일이라며 방관했다. 이웃집 부부는 엄마의 비명 소리를 들었다. 그들은 '조금 심하게 흥분한' 일상적인 불화라고 여기며 역시 방관했다.
리라가 기댈 곳은 어디도 없었다. 그저 폭력과 공포에 그대로 노출되어 상처받고 힘들 뿐이다.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지만 늘 좌절되었고, 결국 엄마를 떠나보내게 된다.


<나는 나쁜 딸입니다> 라는 제목과 상반되는 근사한 표지에 어떤 내용일지 매우 궁금했다. 읽는 내내 안타깝고 답답한 감정이 맴돌았다. 소설 속에 진정한 어른은 없었다. 잠시나마 등장한 블리치 선생님은 조금 다르긴 했다. 하지만 폭력의 사각지대에 놓인 경우, 주변 사람들의 적극적인 도움이 절대적이라 생각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가정사여서, 사랑을 빙자한 훈육이기 때문에 무관심으로 내버려두면 안된다. 따뜻한 손길을 내밀 수 있는 용기와 관심이 필요하다.
그들은 끝끝내 가만히 있었지만 리라는 엄마에게 약속한다.다시는 그 누구도 엄마에게 등을 돌리지 못하도록 만들어 가겠다고……. 비록 자신은 엄마를 보호하지도, 엄마의 이야기도 들어주지 못했지만 말이다. 우리 사회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을 것만 같은 소설 같은 이야기. 리라 같은 나쁜 딸(사실은 착한 딸)이 더 이상 힘들어하지 않도록 우리가 도와줄 차례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