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꽃 -김준태
어릴 적엔 떨어지는 감꽃을 셌지
전쟁 통엔 죽은 병사들의 머리를 세고
지금은 엄지에 침 발라 돈을 세지
그런데 먼 훗날엔 무엇을 셀까 몰라.
* * * * *
이제는 감꽃이 피어도 아무도 그 떫은 꽃을 먹지 않는다. 밤새 떨어진 감꽃을 주워다 목걸이를 만들지도 않는다. 감꽃 필 때 올콩 심고 감꽃 질 때 메주콩 심으라는 농부의 지혜도 옛것이 되어버렸다. 오늘도 이라크에서는 소년들이 죽은 병사들의 머리를 세고 있을 것이고, 그 뉴스를 보며 누군가 천연덕스럽게 돈을 세고 있을 것이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총소리, 바퀴소리, 시계소리, 벨소리…. 이 봄날에 그 소리들 속에서 나는 무엇을 세고 있나.
- 나희덕 시인
봄밤 / 이면우
늦은 밤 아이가 현관 자물통을 거듭 확인한다 가져갈 게 없으니 우리집엔 도둑이 오지 않는다고 말해주자 아이 눈 동그래지며, 엄마가 계시잖아요 한다 그래 그렇구나, 하는 데까지 삼 초쯤 뒤 아이 엄마를 보니 얼굴에 붉은 꽃, 소리없이 지나가는 중이다.
春思
춘사
晩灣谷塵嗔
만만곡진진
凍潼果頭伸
동동과두신
竊節折愁心
절절절수심
愍悶何余振
민민하여진
待歸把酒忍
대귀파주인
* 과두=올챙이를 가리키는 한자어 "과두"를 다른음으로 썼습니다
늦은저녁 굽이치는 계곡에 먼지만 일어나네
얼었던 강물에 올챙이가 기지개를 켜고
계절을 빼앗기고 꺾인 마음은 수심이 가득하구나
나는 어느제나 떨치고 일어날수 있을까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네
돌아가 잔을 높이들 그날을 기다리며 오늘은 우리 참고 또 참으세
멸 치
김순실
어느 저녁
무심코 멸치의 머리를 떼다가
까만 내장을 발라내다가
비닐봉지 속 수북한 멸치대가리
좁쌀알 박힌 퀭한 눈과 딱 마주쳤는데
그래 내 국물이 그리 시원하더냐
멸치의 일갈에
순간, 섬짓하데
검푸른 바다
헤엄치는 상상만으로도 심장이 오그라드는
그 넓은 세계를 넘어
이곳까지 온 멸치가 아니던가
제 몸과 비교 한다는 게 불가능한
고래와도 한 물에서 놀았던
자유로운 영혼
그러나 이제 인간의 한 끼 식사를 위해
소신공양중이다
멸치의 소멸 끝 남는 국물처럼
나도 세상 앞에
한 대접 올릴 수 있으려나
한 대접 가득 뜬다
잘 우려낸 국물이 멸치의 유영처럼
목구멍으로 미끄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