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 치 

                                                     김순실

 

어느 저녁

무심코 멸치의 머리를 떼다가

까만 내장을 발라내다가

비닐봉지 속 수북한 멸치대가리

좁쌀알 박힌 퀭한 눈과 딱 마주쳤는데

 

그래 내 국물이 그리 시원하더냐

멸치의 일갈에

순간, 섬짓하데

 

검푸른 바다

헤엄치는 상상만으로도 심장이 오그라드는

그 넓은 세계를 넘어

이곳까지 온 멸치가 아니던가

 

제 몸과 비교 한다는 게 불가능한

고래와도 한 물에서 놀았던

자유로운 영혼

 

그러나 이제 인간의 한 끼 식사를 위해

소신공양중이다

 

멸치의 소멸 끝 남는 국물처럼

나도 세상 앞에

한 대접 올릴 수 있으려나

 

한 대접 가득 뜬다

잘 우려낸 국물이 멸치의 유영처럼

목구멍으로 미끄러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