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 치
김순실
어느 저녁
무심코 멸치의 머리를 떼다가
까만 내장을 발라내다가
비닐봉지 속 수북한 멸치대가리
좁쌀알 박힌 퀭한 눈과 딱 마주쳤는데
그래 내 국물이 그리 시원하더냐
멸치의 일갈에
순간, 섬짓하데
검푸른 바다
헤엄치는 상상만으로도 심장이 오그라드는
그 넓은 세계를 넘어
이곳까지 온 멸치가 아니던가
제 몸과 비교 한다는 게 불가능한
고래와도 한 물에서 놀았던
자유로운 영혼
그러나 이제 인간의 한 끼 식사를 위해
소신공양중이다
멸치의 소멸 끝 남는 국물처럼
나도 세상 앞에
한 대접 올릴 수 있으려나
한 대접 가득 뜬다
잘 우려낸 국물이 멸치의 유영처럼
목구멍으로 미끄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