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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나를 배반하지 않는다
레지너 브릿 지음, 이원경 옮김 / 김영사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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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52
공개적인 자리에서 울면 사람들이 울음을 그치게 하려 한다. 울음을 불편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울음은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는다. 욕보다 더 나쁘다.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들은욕하는 사람보다는 우는 사람을 더 불편하게 여긴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우는 것은 자제력의 부족, 나약함의 정표이기 때문이다. 강인함을 중시하는 문화에서는 눈물을 보이는 것조차 용납되지 않는다.
나는 울음을 줄여서 더 강해지려고 평생 노력했다. 하지만 슬픔을 억누르려 할 때면 얼굴이 붉어지고 볼이 아팠다. 그리고 아무리 참으려고 기를 써도 기어이 눈물이 나왔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상담가가 내게 말하기를, 눈물은 재산이라고 했다. 그녀는 눈물이 나의 파란 눈과 갈색머리처럼 내 일부라며 이렇게 말했다.
"그토록 강렬한 감정이야말로 신이 우리에게 준 멋진 선물입니다."
울음에 대해서 이제껏 내가 들은 최고의 충고는 누군가와 함께 울라는 것이었다. 그 상담가는 다른 사람과 함께 우는 것이 혼자 우는 것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한다고 했다. 혼자 울면, 같은 눈물이 계속 흐른다. 함께 울면, 그 눈물이 당신을 완전히 치유해준다.
p. 149
무엇을 망설이는가.
지금 당장 괴짜가 되어라.
노인과 아이는 사는 방법을 안다. 삶의 처음과 끝인 이 사람들은 가장 즐겁게 살아간다. 그들은 남이 어떻게 생각하건 신경쓰지 않는다. 너무 어려서 철이 없고 너무 늙어서 눈치 보지 않는다.
가운데 끼어 있는 우리는 그들에게서 삶의 진리를 배워야 한다.
(중략)
이따금 나는 북적이는 엘리베이터 안에 서서 문 반대쪽을 보고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읊조리거나 노래를 흥얼거리고 싶어진다. 어떤 날은 회의장에서 난데없이 피리를 불거나, 우체국에서 줄 서 있느다가 뜬금없이 탭댄스를 추고 싶어진다.
'무언가를 하려거든 화끈하게 해라.'
이 괴짜의 슬로건을 더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인다면 삶이 얼마나 재미있어지겠는가. 자주색 옷을 입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이 세상이 얼마나 화려해지겠는가.
자주색 옷을 입은 묘령의 여자를 볼 때마다 나느 그 시가 생각난다. 언제나 틀에 맞추는 인생, 남들 눈치나 보는 인생, 규칙에 연연하는 인생은 너무 따분하지 않은가. 내가 좋아하는 생일 카드 문구가 떠오른다.
'규칙에 연연하면 즐거움을 놓친다네!'
p. 212
세상은 나 없이도 계속 돌아갔다. 내 세상을 돌아가게 한 건 친구들이었다.
내 친구 마티가 늘 하는 말이 있다.
"친구와 건강만 있으면 필요한 건 다 있는 거야."
암은 내게 친구를 늘 우선순위 꼭대기에 두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화사하게 밝은 주황색 책표지가 눈에 띈다. 비소설 책의 경우에는 디자인 서적이 아니고서야 보통 심플한 표지를 많이 쓰는데 눈이 부실 정도의 주황색의 책을 받으니 어쩐지 낯설었다. '삶은 나를 배반하지 않는다' 귀여운 표지와는 다르게 뭔가 엄중해 보이는 느낌의 제목. 그래서 처음엔 괜히 신청했나 후회를 할 뻔하기도 했다. 책이든 음악이든 받아들이는 사람의 정신상태가 무거울수록 그 콘텐츠들도 무겁게 받아들여지는 법이니까. 요즘 갖은 생각으로 어지러운 나로서는 조금 무겁게 느껴지는 제목이었다.
밤을 지새운 낮, 해가 떠버리자 잠이 와도 잠이 들지 않아 옆에 있던 책을 집어 들었다. 첫 페이지, 첫 문장을 읽고 그나마 있던 잠의 끄트머리마저 사라져버렸다. 생각보다 밝고, 생각보다 흡입력 있는 문장들. 긍정을 노래하는 여느 다른 책들과 별반 차이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글자가 읽어지는 감이라고 할까? 글자를 씹는 느낌이 달랐다. 저자 레지너는 너무 많은 형제 사이에서 사랑받지 못하고 자랐고, 열여섯에 술에 찌들고, 스물한 살에 미혼모가 되었다. 그리고 18년 동안 싱글맘으로 살게 되었고 마흔 살이 되어서야 운명 같은 남자와 결혼을 하였으나 마흔한 살에 유방암 진단을 받고, 마흔세 살에 유방암을 이겨냈다. 여기까지만 보면 이 같은 비극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힘든 삶이었다. 레지너는 그간의 생을 바탕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하고 싶은 공부, 즐길 수 있는 과목을 체크해가며 추리고 추리다 그녀는 글을 쓰고 싶다는 것을 알게 되고 마흔일곱에 오하이오 주 최고의 칼럼니스트로 선정, 쉰두 살에는 퓰리처상 최종후보로 2년 연속 올랐다. 처음에는 정말 그녀의 삶은 그녀를 배반하지 않았구나 하며 막연히 영화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영화 같은 삶이라 당연히 책으로 쓰였겠지 하고 넘어가려는 순간, 새삼 다시 놀라게 되었다. 이 책 또한 레지너 그녀가 쓴 거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졸리는 와중에도 시선을 끄는 문구들. 희망을 놓지 말라는 메세지로 긍정을 강요하는 흔해빠진 자기계발서가 될 수도 있는데 이 책은 에세이의 느낌이 들 정도로 가볍게 읽혔다. 순간 밀려오는 생각은, '이렇게 글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레지너는 어떻게 글을 쓰는 법을 배웠을까?' 하는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비극적인 상황을 위트있게 그렇지만 정직하게 적어내는 레지너의 책에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드라마에서 한석규가 연기했던 세종처럼 산더미 같은 분노가 일 때는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욕설기도를 하라고 권하는 그녀의 말이 어쩐지 친한 친구가 술 한잔 하며 해주는 듯한 말처럼 음성이 되어 귓가에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