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비저블 - 자기 홍보의 시대, 과시적 성공 문화를 거스르는 조용한 영웅들
데이비드 즈와이그 지음, 박슬라 옮김 / 민음인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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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신입사원 채용에 ‘자기PR 전형’이라는 것까지 생겼다고 합니다. 면접관 앞에서 자신의 재능을 홍보해야 하는 전형이라는데요. 이런 전형에서 자신을 알리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무능한 사람이라는 인식을 주게 되겠지요. 굳이 채용이 아니더라도 페이스북이든 트위터든 유튜브든 어떻게 해서든 자기 자신을 홍보하지 않으면 안 되는 분위기가 사회적으로 가득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 반기를 들고 나온 저자가 있습니다. 영화배우를 연상시킬 정도로 잘생긴 저자 데이비드 즈와이그입니다. 이 <인비저블>이란 책은 외부의 인정이 아니라 일 자체에서 나오는 보람을 통해 만족을 얻는 사람들, 즉 인비저블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저자 자신도 ‘사실 검증 전문가’라는 인비저블의 업무를 경험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저자가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고 박수 받기 원하는 인간의 기본적 욕구를 폄훼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슈퍼스타로서의 삶도 있을 수 있고, 그 삶을 지향할 수는 있지만, 남이 주목하지 않아도 자신의 일에 보람을 느끼며 탁월한 삶이 있다는 걸 저자는 말하려 합니다. 저자는 인비저블의 조건으로 세 가지를 꼽는데요. 1. 타인의 인정에 연연하지 않는 태도, 2. 꼼꼼함과 치밀함, 3. 무거운 책임감입니다. 외적 보상이 섬세하고 정교한 작업의 수행 능력을 저하시킨다거나 집중력의 범위를 제한해 창의적 사고에 필요한 폭넓은 시각을 좁힌다는 연구 결과도 저자가 소개해 주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실제 인비저블들의 이야기를 읽는 것이 더 마음에 와 닿지요. 그리고 작가는 이 세 조건에 부합하는 인물들이 어떻게 일을 하며 살아가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인비저블로서의 세 가지 조건은 도대체 어느 수준을 말하는 걸까요. 1. 완벽하게 구축해 낸 길 찾기 시스템을 소비자가 인지하지 못해도, 완벽하게 해 냈다는 사실 그 자체에서 뿌듯함을 느낄 줄 아는 길 찾기 시스템 디자이너의 초연함. 2. 무시무시한 양의 향료를 0.001그램 단위까지 따져가며 원하는 향이 나오기까지 조합하는 조향사의 치밀성. 3. 모든 경우의 수(심지어 테리러즘까지도) 고려해야만 하는 초고층 빌딩의 수석 구조 공학자의 책임감. 대략 이 정도입니다.

 

이 외에도 저자는 충분히 많은 인물들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사실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실제 어떻게 일하는지 풍성하게 맛볼 수 있다는 점이 이 책이 주는 쏠쏠한 맛이기도 하고요. 제가 언제 길 찾기 시스템 디자이너, 조향사, 구조 공학자, 촬영감독, UN 동시통역사, 기지국 수리공, 대역배우 등으로 일하는 분들을 만나보겠습니까. 저자 덕분에 저는 책에 소개된 인비저블들이 하는 업무의 세밀한 내부까지 들여다 볼 수 있었고, 저자가 인터뷰를 매우 심도 있게 했다는 느낌이 확실히 받았습니다. 특히 폴 토머스 앤더슨의 모든 영화에 촬영감독으로 참여한 로버트 엘스윗은 자신의 경험을 말하면서 벤 에플렉(배우가 아닌 감독으로서)하고 일하는 게 힘들었다는 이야기까지 털어놓을 정도입니다.


제 호기심을 특히 자극했던 것은 UN 동시통역사에 관한 대목이었습니다. 제 자신이 외국어를 잘 하지 못하기 때문에 동시통역사가 하는 일이 어떻게 이뤄지는지가 더욱 궁금했습니다. 저자가 소개하는 UN의 동시통역사 윌킨스 아리는 입이 딱 벌어질 만큼 언어에 능통한 사람입니다. 초등학교 시절 프랑스어, 영어, 이탈리아어에 능통해 있었고, 그 후 스페인어를 익혔으며, 성인이 된 후 포르투갈어를 따로 공부해 포르투갈에서 동시통역사 경력을 쌓았다고 하네요. 그러다 UN에 들어가게 됐는데, UN의 동시통역 업무는 고도의 긴장 상태에서 엄청난 양의 전문정보를 다뤄야 하기에 그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습니다. 그렇지만 동시통역사 윌킨스 아리는 그런 긴장 상태를 즐길 줄 아는 사람입니다. 윌킨스 아리는 통역 도중 일종의 황홀경 상태에 빠진다고 고백합니다. 이는 기술에 ‘숙달’하면 몰입을 이룰 수 있다는 저 유명한 미하이 칙센트미하이가 말한 ‘몰입’ 개념과도 상통하지요. 그러니까 몰입을 위해선 ‘꽤 잘하는’ 아마추어 정도로는 부족한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꽤 잘하는’ 수준에 만족하고 있다며 저자는 아쉬움을 표합니다. “만일 우리가 그들만큼 역량을 밀어붙일 수 있다면, 단순히 ‘꽤 잘하는 수준’을 넘어 그 이상을 추구한다면, 어쩌면 ‘탁월함’의 경지에 이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저자는 도전합니다.

 

저자는 인비저블에 관해 심리학자 진 트웬지가 한 말을 들려줍니다. “... 자아도취자들을 예로 들어볼까요. 그들은 젊었을 때에는 대부분 행복하고 타인의 관심을 얻으면서 만족감을 느낍니다. 그렇지만 나이가 들면 눈에 띄게 불행해지죠. 자신이 받아 마땅한 관심과 인정을 더 이상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구구절절 공감되는 말입니다. 업무에서 성취를 내고, 박수 받고, 승진을 하는 데서 얻는 만족감은 당연히 짜릿합니다. 그렇지만 그 시간이 지나고 홀로 남았을 때 밀려오는 공허감을 저는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니 저자가 소개하는 인비저블들의 삶이 그냥 괜찮아 보이는 게 아니라 인비저블들처럼 사는 게 진짜로 사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요.


지금까지 이야기 한 것, 그러니까 인정에 연연하지 않는 태도, 꼼꼼함과 치밀함, 무거운 책임감이라는 세 가지 특성을 저자는 단 한 가지 기질로 요약합니다. 바로 “왕성한 호기심”입니다. 저자가 만난 인비저블은 자신의 영역에서 최고 수준의 전문성을 익혔음에도 늘 새로운 것을 배우려고 한다고 합니다. 일 자체가 인비저블의 보상이기 때문에 남이 칭찬하건 말건 상관하지 않지요. 이 대목을 읽으면서 여러 생각이 스쳤습니다. 내게는 “왕성한 호기심”이 있는가, 하고 자문했을 때, 저는 머뭇거렸습니다. 그 동안 제 업무는 왕성한 호기심이 요구되는 업무는 아니라고 생각하며 살았기 때문이지요. 사무직으로 일하는 회사원들의 업무라는 게 대개 그렇듯이 말이지요. 그래서 저는 제 업무에서 어떻게 “왕성한 호기심”을 발현해야 할지 더 고민해보려고 합니다. 저자가 소개한 인비저블들에게 저는 완전히 매료됐고, 저도 이제부터라도 인비저블로 살아가고 싶다는 열망을 강하게 느꼈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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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의 언덕
박희섭 지음 / 다차원북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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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는 제게 그다지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제게 70년대가 혹독한 가난과 정치적 억압의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읽은 <축제의 언덕>이 바로 이 70년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인데요. 이 소설에도 가난으로 인해 힘겹게 살아가야 했던 이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소설 화자는 ‘문수’라는 이름의 소년입니다. 서울에서 살다가 아버지가 바람을 피워서 작은 도시로 쫓기듯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문수네 가족이 도착한 동네는 이전에 살던 곳과는 견주기 민망할 정도로 열악한 곳이었습니다. 그것을 잘 보여주는 대목을 옮기면 이렇습니다.

 

“... 더 고약한 점은 수백 명은 됨직한 동네 주민 수에 비해 변소 수가 너무 적다는 데 있었다. 그래서 아침 출근시간이면 집안에 변소가 없어서 공중변소에 볼일을 보러 나온 남녀노소가 길게 장사진을 치고 자신의 차례를 묵묵히 기다려야 했다. 여기에 다급한 설사를 만나기라도 할라치면 사흘 굶은 시어머니처럼 잔뜩 우거지상을 한 채 배를 움켜진 엉거주춤한 자세로 자신의 차례가 오기를 최고의 인내심을 발휘하며 기다려야 하는 실정이었다.”

 

삼형제 가운데 둘째 문수는 집안 형편 때문에 중학교 입학을 미루고 집안일을 돕게 됩니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는 문수의 눈에 비친 작은 동네의 풍경을 그리고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이 소설을 읽으며 저는 김원일 작가의 <마당 깊은 집>을 떠올렸습니다. <마당 깊은 집>의 주인공도 문수와 같은 나이에 학교에 갈 형편이 못 돼 집안일을 도우면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많은 것들을 보고 듣게 되는 이야기이니까요.

 

제가 이 소설에서 찾은 가장 큰 재미라면 역시 주인공 문수에게 찾아온 사춘기를 지켜보는 일입니다. 여성에 대해 눈을 떠가는 문수의 모습이 특히 흥미롭게 그려집니다. 옆집 부뜰이 엄마가 낮에 냉수욕하는 것을 잠망경까지 이용해 훔쳐보기도 합니다. 자기 집에 세든 선이 누나에게 애틋한 감정을 느끼기도 하고요. 길에서 보게 된 여학생에게 연애편지를 썼다가 그 여학생의 어머니가 집까지 찾아와 따지는 바람에 좌절하기도 합니다.

 

소년 문수의 성장기를 작가는 크게 힘주지 않으면서 정겨운 풍경으로 묘사해냅니다. 가령 친구 병태가 문수에게 이제 막 여자친구를 만들었다며 자부심 가득 찬 말로 자랑하는 장면에서 전 킥킥대며 웃었습니다. 문수는 병태의 자랑스런 말에 기대를 가득품고 병수 여자친구를 기다리는데요. 드디어 나타난 병수 여자친구에 대한 묘사가 이렇습니다. “그녀는 큰 얼굴에 비해 눈이 작았다. 웃을 때 입술 사이로 작은 덧니가 보였는데, 그걸 감추려고 손으로 입을 가리는 모습이 약간 매력적으로 보이는 정도였다. 윤곽이 없을 만큼 밋밋한 몸매 역시 그다지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소년은 병태의 미적 감각이 의심스러웠다. 무얼 보고 남정임보다 낫다고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런 소소한 묘사들이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즐거움을 줍니다.

 

저는 이 소설을 가난에 허덕이던 상황에서 당시 딱히 배운 것도 없어 가진 것이라고는 몸뚱이밖에 없던 우리네 어른들의 분투기로도 읽었습니다. 백수로 하릴없이 집에서 빈둥거리던 문수 아버지는 목수일을 잠깐 배우다가 사정이 여의치 않아 그만 두고, 냉차 판매를 해보기도 하고, 고춧가루 장사를 하다가 사기를 당해 감옥신세를 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국회의원 선거운동을 하다가 극장 일을 맡게 됩니다. 이렇게 이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은 비루한 시대 안에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해보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그리고 그런 인물들을 보고 있노라면,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짓게 됩니다.

 

돌이키기도 싫었던 70년대를 이렇게 미소 지으며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은 작가의 공일 것입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맞아, 그때 어려워도 재밌는 일도 많았지.’라는 생각이 고개를 들면서 옛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더군요. 어느 시대나 어려운 건 마찬가지지만 특히나 눈물겨웠던 시대를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삶에 대한 낙관이라는 것도 확인하게 됩니다. 아마도 작가가 이 소설에 <축제의 언덕>이라는 제목을 붙인 것도 그런 뜻에서 일 것이라 믿고 싶습니다. 물론 이런 낙관은 미래에 대한 무조건적 방관이 아니라, 지금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버티고 서 있으려는 안간힘에서 비롯하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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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다른 아이들 1
앤드류 솔로몬 지음, 고기탁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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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는 질병일까요? 정체성일까요? 어쩌면 우리는 장애가 질병이라는 사고방식에 익숙해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저자는 장애를 정체성으로 규정하는 것이 더 나은 사회를 이루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이를 위해 저자는 먼저 수직적 정체성과 수평적 정체성에 대해 말합니다. 부모와 동일하게 물려받은 민족성, 피부색 유전, 언어, 종교 등은 수직적 정체성입니다. 그에 반해 부모와 구별되는 속성, 이를테면 게이, 신체장애, 천재성, 정신병, 자폐, 지적장애 등은 수평적 정체성입니다. 그러니까 이 책 제목 <부모와 다른 아이들>의 그 “부모와 다른”이 바로 수평적 정체성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장애가 정체성이라는 사실이 당사자들을 온전히 위로해줄 수는 없는 일입니다. “겉으로 명백히 드러나는 자식의 장애는 부모의 자부심을 욕보이고 그들의 사생활을 침해한다.”(49)라는 저자의 말처럼 장애가 있는 자식을 키우는 부모의 마음은 그렇지 않은 부모의 그것에 비해 이루 말할 수 없이 무겁겠지요. 심지어 저자는 이렇게도 말합니다. “아무리 폭력적인 아버지도 자신의 외모를 닮은 자식한테는 상대적으로 덜 폭력적이다. 혹시라도 불량배의 자식으로 태어났다면 부디 아버지와 닮은 외모를 가졌기를 빌어야 할 것이다.”(24)

 

그런데 사실 저자 자신부터가 수평적 정체성으로 고민하고 상처받았던 사람입니다. 저자는 ‘게이’라는 자신의 성정체성을 드러내 놓습니다. 그러니까 이 책의 ‘아들’이란 제목의 1장은 저자 자신의 이야기입니다. 열일곱 살에 한 남자와 성관계를 가졌다는 사실도 숨기지 않지요. 미국 사회가 여전히 동성애에 적대적이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저자의 용기에 박수쳐주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저자는 이 책 1권에서 청각 장애, 소인증, 다운증후군, 자폐증, 정신분열증, 장애에 관해 다룹니다. 어느 것 하나 가볍지 않고, 쉽게 말할 수 없는 소재입니다. 저자는 자신이 직접 취재해 장애를 지닌 자녀를 둔 부모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사실 저는 청각 장애와 소인증, 다운증후군을 각각 다루는 2장과 3장, 4장을 읽을 때만해도 평정심을 유지하며 읽었습니다. 그렇지만 5장 자폐증 이야기부터는 계속 마음이 흔들리더군요. 희망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한숨을 쉬었던 적이 많았습니다.

 

자폐증 아이들에 관해 말한다면, “부모가 준 사랑에 반응하기 어려운 아이들”이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우리는 부모님 주신 사랑의 극히 일부도 갚지 못하지요. 하지만 자폐증의 경우에는 그 정도가 심합니다. 치료를 통해 증상이 완화될 수는 있지만, 어느 부모나 그것을 참아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자폐증 아들을 살해하려다 뜻을 이루지 못한 데브라 윗슨은 경찰에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그 아이가 ‘엄마, 사랑해요’라고 말해 주기를 기대하면서 장장 11년을 기다렸어요.”(525) 이 책에는 자폐증 자녀를 살해한 사례가 너무도 많이 열거돼 있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살해하는 일은 아마도 세상에서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일 것입니다.(물론 그 역도 마찬가집니다.) 저자는 자폐증 자녀를 살해한 부모들 중 절반가량이 이타적인 행동이었다고 주장한다면서, 법정이 이런 범죄에 대해 관대함을 보이는 것은 위험하다고 지적합니다. 저도 저자의 의견에 적극 동의합니다. 그렇지만 “자폐증 자녀를 두었다면 과연 끝까지 참는 부모가 될 수 있는가”란 질문이 제게 주어진다면, 쉽게 대답하진 못할 것 같습니다.

 

정신분열증은 다른 수평적 정체성과는 달리 늦은 사춘기나 성인 초기에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부모에게는 더 큰 아픔으로 다가옵니다. 지금까지 알고 있던 자기 자식을 영원히 잃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입니다.(529) 저자는 심지어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보기에 그들(정신분열증 환자와 그 부모)의 고통은 끝이 없으며, 특이하게도 그 어떠한 보상도 없다.”(630) 정신분열증 환자 해리의 어머니 키티의 말을 들어볼까요. 해리를 보살피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심력을 소모하는지 묻는 저자에게 키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게 있는 전부요, 모조리 다요. 정말 이렇게까지 말하고 싶지 않았어요.”(541) 자신의 전부를 자기 자식을 위해 소모해버리는 부모 앞에서, 저는 부모로서 자식에게 어떤 보상을 바랐던 적은 없었는지 되돌아보게 되네요. 세상에는 비유적 표현에서가 아니라 정말 “자신의 전부를 불태워” 자식을 돌봐야 하는 부모도 있었습니다.

 

가슴을 치는 이야기들이 수없이 많이 나오지만, 특히 7장의 ‘장애’에서 중도 중복 장애의 사례가 가장 마음을 울리더군요. ‘중도 중복 장애’의 ‘중도’는 정도가 심하다는 의미고, ‘중복’은 말 그대로 장애가 겹쳐진 상태를 말하지요. 그러니까 중도 중복 장애는 그 두 상태를 포괄하는 말입니다. 다음은 중도 중복 장애 아이를 두 명이나 낳았던 데이비드와 세라 해든의 이야깁니다. 첫째 아들 제이미는 지적 장애에 전신마비로 평생을 살게 됩니다. 둘째 딸 라이자는 다행히 건강하게 태어나지만 아뿔싸! 셋째 샘이 제이미와 동일한 증후군을 앍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어머니 세라는 샘의 진단명이 나온 지 이삼 개월이 지났을 때 자신의 상태를 이렇게 회고합니다. “나는 주방 바닥에 주저앉아 갈등했어요. 그대로 제이미와 샘을 데리고 차고로 가서 자동차에 시동을 걸고 다 같이 일산화탄소를 마시고 죽고 싶었죠.”(641) 막내 샘은 몇 년 후 욕조에 잠겨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이런 이야기를 읽으면서 마음이 먹먹해지지 않기란 불가능합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저는 너무도 쉽게 부모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다보니 부모가 되었다고도 말할 수 있겠네요. 장애를 지닌 자녀들을 위해 끝까지 버티고, 끝까지 사랑해준 부모들에 견주면 제 사랑은 정말이지 왜소한 것이었더군요. 그리고 제 아이들을 생각했습니다. 제가 자식에게 한 수많은 실수 가운데 부정적 영향을 끼친 것들이 얼마나 많을지 생각하면 마음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네요. 저자는 이렇게도 말해줍니다. “부모는 완벽하지 않고 수많은 실수를 범한다. 그리고 나는 선의가 부모의 실수를 감쪽같이 지워 주는 것은 아니지만, ... 적어도 실수의 무게를 줄여 준다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받는 일은 끔찍한 경험이다. 그러나 그 사람이 당신을 도와주려고 그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 끔찍함이 줄어들 것이다.”(700) 저는 확실히 진짜 부모가 되려면 아직도 멀었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부모들처럼 비록 자녀들이 나와 다르고, 내 기준에 미치지 못해도, 끝까지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라도 이 절실한 이야기들을 오래도록 기억해두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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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만장 선배의 신입사원 상담소 - 입사 직후부터 3년차까지 알아야 할 직장생활 생존법칙
양성욱 지음 / 민음인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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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사원 상담소>라는 책의 리뷰를 쓰고 있는 저는 신입사원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 책을 무척이나 읽고 싶었습니다. 회사생활을 해 볼 만큼 해봤다지만, 저는 제 회사생활에서 무언가 놓치고 있는 건 없는지 요즘 고민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최근 방영된 드라마 <미생>을 보면서 회사생활에 관해 이런저런 상념들이 들더군요. <미생>을 보면서서 제 신입사원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 가더군요. 미숙하고 우왕좌왕 하던 그 시절, 정말이지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그 시절이 말입니다. “초심으로 돌아가라”는 말처럼 저도 신입사원 시절을 떠올리며 어떻게 하면 현재 회사생활을 더 효과적으로 해나갈 수 있을지 조언을 듣고 싶었습니다.

 

언론사, 청와대, 공기업, 대기업을 거쳤다는 저자의 조언은 굉장히 현실적입니다. 회사 업무를 할 때 부족하더라도 빨리 처리하는 게 좋은지, 아니면 느리더라도 완벽을 기해 처리하는 게 좋은지 고민하는 신입사원들이 많을 겁니다. 저자는 상사의 입장에서는 진행 상황을 체크하고 싶어 할 것이라면서 속도를 우선시하라고 조언해 줍니다. 회식에 참가할지 말지를 지금도 고민하고 있을 신입에게 들려주는 조언을 볼까요. 저 자신도 어리바리한 신입사원이었던 시절 정말 고민하던 문제여서 더욱 공감이 가더군요. 저자는 “불가피한 선약이 있지만, 2차라도 꼭 합류하도록 최대한 노력해 보겠습니다.”라는 말로 ‘열의와 정성’을 보여주라고 말합니다. 가슴깊이 새겨둘 만한 팁이지요. 실제로 무턱대고 선약이 있다며 회식을 불참하는 것과 이런 말을 해두고 불참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본인 의견을 제시했음에도 상사가 업무 수행을 지시하면, 끝까지 반대하기보다는 일단 그 업무를 어느 정도는 수행하는 ‘척’이라도 하는 게 낫습니다.”라는 조언도 같은 맥락에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저자의 글에는 읽는 이들에 대한 애정이 깃들어 있습니다. 신입이라고 타 부서에서 무시한다고 고민하는 이에게 들려주는 조언을 보실까요. 신입 시절 흔히 마주하는 문제가 타부서에 업무협조를 얻어내는 일이지요. 갓 입사한 신입사원이라면 대부분 주눅 든 상태에서 여기저기 눈치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는 상사를 방패막이로 이용하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자기 소속 부서 상사에게 부탁을 해서 대신 업무 협조 요청을 하게 하는 식입니다. 저자는 친절하게도 “과장님, 기획 부서 OO대리한테 전화 좀 해 주세요. 제가 해도 되지만 과장님의 엄청난 파워로 압력 좀 팍팍 넣어 주세요.” 같은 멘트까지 예를 들어 보여줍니다. 이메일과 보고서를 어떻게 써야하는지에 관한 대목도 그렇지요. 리드미컬한 문장을 위해 불필요한 조사를 생략하라는 식으로 상세하게 알려줍니다. 읽는 내내 듬직한 멘토에게 비법을 전수받는 느낌입니다.

 

 

거시적 관점에서 세상 흐름을 파악하라는 대목에서는 제 자신이 그러지 못했던 게 참 아쉽더군요. 바로 다음과 같은 대목 말입니다. “내가 투입된 이 생산 라인에 언제까지 우리 회사가 재원을 투입할지, 새로운 라인 증설은 어떤 제품 쪽으로 이뤄질지 파악해야 본인 인생 계획도 그에 맞춰 세울 수 있습니다.” 사표를 쓰고 싶을 때 무작정 직장을 그만두기보다는 자신만의 디데이를 정해 새 직장을 구할 때까지 한시적으로 다닌다는 마음을 먹어보라는 조언도 유용한 팁입니다. 저도 예전에 정말 회사를 그만두고 싶었던 때가 있었는데, 반년만 다녀보자는 마음을 먹고 버텼던 기억이 나네요. 뜻하지 않게 회사를 그만두게 될 때 주변 사람들에게 최대한 널리 퇴직 사실을 알리는 게 유리하다는 조언도 고개가 끄덕여지더군요. 주변인들의 추천이나 소개로 새로운 직장을 얻는 경우를 실제로 많이 보아왔기 때문입니다.

 

이런 조언들을 두고 회사생활의 요령에 지나지 않느냐고 말하며 가볍게 지나치실 분도 계실 수 있겠지요. 그렇지만 회사생활을 해본 제가 보기에는 요령이 아니라 지혜입니다. 이 지혜는 결국 상사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에게는 ‘인사고과’라는 엄정한 현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냉정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가정이나 학교와 달리 회사는 언제라도 여러분을 포기할 수 있는 곳입니다. 아무리 친한 직장 선후배 간이라도 기본적인 상하 관계의 틀을 흔드는 언행을 해서는 안 됩니다.” 같은 엄혹한 현실을 상기시키는 충고는 정말 마음에 새겨둬야 합니다. 회사 마다 분위기가 다를 수도 있지만, 긴장을 늦추는 순간 실수할 가능성도 커지기 때문이지요.

 

책을 읽으며 저자의 조언을 듣고 있자니 문득문득 신입사원 시절이 그리워지기도 했습니다. 지금 다시 한다면 더 잘 할 수 있을 것도 같은데, 하고 중얼거리는 제 자신을 발견하기도 하면서요. 그래서 저는 이 책을 ‘신입사원들의 교과서’로 부른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교과서에는 언뜻 보기에 너무 당연한 말들이 들어있지만, 우리는 늘 시험에서 그 당연한 것들 때문에 고전합니다. 그 당연한 것들을 얼마나 자기 것으로 만들어 적용하느냐가 시험의 성패를 가르지요. 저는 이 책의 지침들을 어떻게 회사생활에 적용하느냐가 이제 막 회사생활을 시작한 분들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신입사원들에게 괜히 어쭙잖은 충고를 늘어놓지 않게 되어서 다행입니다. 그저 그들 손에 이 다정다감한 교과서를 쥐어주면 될 테니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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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과 예순 사이 행복한 잡테크 - 2만 명의 퇴직 예정자에게서 찾아낸 인생 2막 직업설계 노하우
김명자 지음 / 민음인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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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테크’? 처음 들어보는 말입니다. 우리가 재테크를 할 때 수많은 관련 서적들을 들추어보고 전문가들의 조언을 구하듯이, 은퇴 준비도 그렇게 철저하게 해야 한다는 뜻이겠습니다.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하지만, 직장 생활을 하면서 틈틈이 은퇴 준비를 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먼저 은퇴한 선배들의 조언을 듣기도 하고, 회사에서도 나름 프로그램을 준비해 주고는 있지만, 체계적이지 않아서 머릿속에 일목요연하게 그려지지가 않지요. 그런데 이 책은 저자가 무려 2만여 명의 퇴직자를 컨설팅 한 것을 가지고 쓰인 것이라고 하니 신뢰가 갑니다. 늦게나마 이 책을 만나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드네요.

 

은퇴를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에 관한 알짜배기 정보가 이 책에 모두 집약돼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 같습니다. 수많은 퇴직 예정자 또는 퇴직자의 생생한 사례에서 이끌어낸 조언들이기 때문에 뜬구름 잡지 않고 실제 도움이 되는 정보들로 가득합니다. 저자는 은퇴 후 여러 가능성들을 친절하게 소개해 줍니다. 처음 몇 장을 넘기다보면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이 왜 중요한지 알게 됩니다. 이를 테면 중소기업 임원으로 재취업한 뒤 엑셀을 다시 공부했다는 대기업 부장 출신 이화률씨의 이야기는 인상적입니다. 엑셀이야 젊었을 때 사용했겠지만 관리직에 있으면서 크게 사용할 일이 없었으니 당연히 낯설 수밖에 없겠지요.

 

직업을 탐색하거나 준비하는 데 기간이 오래 걸릴 때 징검다리로 단순 업무를 해보라는 조언도 귀담아들을 만합니다. 자신감을 회복하는 데는 더 없는 선택이라는 것이지요. 고용노동부의 장년취업인턴제,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중장기자문단과 해외봉사단, 정보통신산업진흥원의 퇴직 전문가 해외 파견사업 같이 정부의 지원에도 기대볼 만합니다. 정부에서 운영하는 창업 관련 사이트도 있는데, 실제로 저자가 소개하는 창업넷(http://www.changupnet.go.kr)에 방문해 보니 제가 찾고 있던 정보들이 많더라고요.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기 전 알아두어야 한다는 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도, 부끄럽지만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네요.

 

귀농생활이나 전원생활을 꿈꾸는 분들을 위한 애정 어린 조언도 아끼지 않습니다. 귀농을 위해 집부터 구입하지 말고, 일단 전세로 살면서 정보를 더 얻은 후에 집을 사도 늦지 않다는 충고는 귀농 귀촌을 생각하고 계신 분들이라면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하겠습니다. 집이나 토지를 구입할 때 물과 전기를 손쉽게 끌어올 수 있는 곳인지 고려해야 합니다. 전기를 끌어오는 곳이 200미터 이상이면 1미터당 가설비가 추가된다는 내용은 의외로 놓치기 쉬운 사항입니다. 이외에 현금흐름이나 자산관리 전략에 관한 설명도 꼼꼼히 챙겨둘 만합니다.

 

지금까지 소개한 내용이 실용편이라면, 다음에 이어지는 정서편에서는 삶의 질적 측면을 다루고 있습니다. 읽으면서 저자의 다정다감한 조언에 위로를 받았습니다. 다음 인용하는 대목은 제가 특히 새기는 부분입니다.

 

충분히 위로받을 만하고 보상받을 만한 삶을 살았다고 자신에게 말해 주어라. 누구나 그렇게 산다고 겸손해하지 말고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노력해 왔는지, 그 노력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자신이 얼마나 대단하고 귀한 사람인지를 인정해 주어라. 그리고 앞으로의 자기 삶을 응원해 주어라.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으로부터 가장 먼저 응원을 받아야 한다.(174)

 

생각해보니 정말 중요한 말입니다. 오랜 기간 조직생활을 한 사람들은 남들의 인정을 먹고 살아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겁니다. 그렇지만 구직시장에서 은퇴자들은 어쩔 수 없이 젊었을 때만큼의 대접을 받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바라볼지 늘 신경 쓰게 마련인데, 그런 시선을 이겨내는 게 정말로 중요합니다. 자꾸 내가 나 자신을 응원하고 격려해야 합니다. 책에서 저자는 정직하게 자신과 대면할 것을 권하며 사람을 아홉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자신을 돌아볼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마지막 장에 나오는 부부관계에 관한 조언을 읽으면서는 여러 번 뜨끔했습니다. 솔직히 은퇴를 준비하면서 아내와의 관계는 크게 생각해보지 않았거든요. 부부 문제에 관한 서적이야 많이 나와 있을 테지만, 이 책의 저자는 특별히 은퇴 후 부부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갈등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해소하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저자는 부부는 나이가 들수록 친구처럼 지내게 된다면서 함께 할 수 있는 여가활동을 만들라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아내와 정기적으로 함께 하는 여가생활이 거의 없다시피 한 것 같습니다. 반성하며 여러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퇴직 예정자들을 위한 책이지만, 젊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읽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은퇴는 시기야 어떻든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이니까요. 무엇보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지금 현재의 삶을 어떻게 보내는 것이 좋은지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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