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케 후기 시집 문예 세계 시 선집
라이너 마리아 릴케 지음, 송영택 옮김 / 문예출판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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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이한 일입니다. 릴케의 시를 거의 접하지 못했는데도 저는 릴케의 시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으니 말입니다. 왜일까요. 혹시 [말테의 수기]를 시로 착각한 걸까요. 곰곰 생각해보니 윤동주 시에 단서가 있더군요. 저 유명한 <별 헤는 밤> 말입니다. 바로 그 시에 있는 “...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봅니다.”이란 구절 때문이었습니다. 윤동주 시인을 좋아한다면서도, 그가 사랑했던 릴케의 시집을, 이제야 저는 집어들게 되었습니다.

 

[릴케 후기 시집]에는 릴케의 시들이 창작 시기 순으로 묶여 있습니다. 덕분에 릴케의 시세계가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를 짐작하게 되더군요. <공물>이란 시에 “지금도 이름 없이 물처럼 반짝이고 있는 모든 것을 / 너의 이름으로 제단에 부르고 싶다.” 같은 열정적인 어조가 묻어난다면, 이 후에 쓰여진 <노래>라는 시에는 “한 번도 너를 잡아두지 않았기에 / 나는 언제까지나 너를 소유하고 있다.”처럼 좀더 성숙한 시선이 깃들어 있습니다. 사랑에 관한 릴케의 성숙한 시선은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라는 시에도 잘 나타나 있는데요. 몇 행을 옮겨보겠습니다.

 

   네가 떠난 서럽고도 싸늘해진 자리에서
   나는 너를 찾지 않는다. 네가 거기 없다는 것까지도
   너에 의해 따뜻해지고, 더 진실되고,
   결핍 이상의 것이 되어 있다.
   동경은 너무나 자주 엉성해진다. 나는 왜 나를 내던져야 하는가,
   창가의 좌석을 비추는 달빛처럼
   어쩌면 너의 영향이 가볍게 나에게 미치고 있는데.

 

당장 자기 곁에 사랑해마지 않는 연인이 없다고 해도, “찾지 않”으며 달빛이 창가를 비추듯 연인의 영향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는 걸까요. 저는 이번에 릴케 시집을 읽으며 루 살로메라는 여자에 관해 처음 알게 되었는데요. 굉장한 여자더군요. 릴케는 루 살로메를 사랑했는데, 릴케가 원래 이름 ‘르네’를 루 살로메 때문에 ‘라이너’로 바꾸었을 정도라고 합니다. 이름만이 아니라 글씨체까지도 말이죠. 루 살로메는 니체에게도 사랑을 받았고, 프로이트와도 깊은 우정을 나누었다고 하니, 지성사에서 ‘뮤즈’라는 명칭이 어울리는 사람을 꼽으라면 반드시 맨 윗줄에 놓여야 할 듯합니다.

 

확실히 릴케의 시는 후기로 갈수록 깊이가 느껴집니다. 이 시집을 읽기 전 릴케의 시는 낭만적 분위기가 가득하리라고 막연하게 예상했지만, 인생에 대한 통찰도 그 못지않게 듬뿍 담겨있더군요. “시간을 낭비한다는 말은 참 이상한 말이다. / 시간을 붙들어두는 것, 그것이 문제이거늘.”(<시간을 낭비한다는 말은>)라는 시라든지, “더 작고, 가장 날씬한 나는 / 다른 수유를 위하여, 떨어지는 눈물을 위하여 속을 비운다.”(<눈물 항아리>) 같은 시가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인생의 비애나 애수는 그다지 묻어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보다는 시 한편 한편에 생기가 깃들어 있다고 말하는 편이 옳을 듯합니다. 한없이 머물고 싶은 생기라고나 할까요. 그 가운데서도 제가 영원히 머물고 싶은 생기가 깃들어 있는 시를 소개하며 글을 마치려 합니다. 정말이지 최근 몇 년간 만났던 시들 가운데 제게 가장 깊은 울림을 안겨준 시입니다.

 

 
       <세계는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 안에>


   세계는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 안에 있었다.
   그러나 갑자기 쏟아져 나와
   세계는 지금 밖에 있다. 세계는 붙잡을 수가 없다.

 

   나는 왜 들이마시지 않았던가, 그것을 들어 올렸을 때.
   사랑하는 사람의 넘치는 얼굴에서 세계를,
   냄새를 풍기며 입 가까이에 있던 세계를.

 

   아, 나는 들이마셨다. 끝없이 들이마셨다.
   그러나 나에게도 세계가 너무 많아서
   들이마시면서도 나 자신이 넘쳤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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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타이쿤 환상의 숲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임근희 옮김 / 이모션북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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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소설 쓰기에 대한 노하우를 담은 책 <잘 쓰려고 하지 마라>를 읽다가 저는 분개했습니다. 제인 스마일리라는 퓰리처상 수상 작가가 롤모델이 될 만한 작가들을 언급하면서 피츠제럴드를 두고 한 표현 때문이었지요. 스마일리의 표현이 이랬습니다. “피츠제럴드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라. 그는 책 네 권을 출판하고 알코올중독으로 죽었으며 그의 첫 번째 책이 유일하게 훌륭한 책이었다. ‘그리’ 되는 걸 누가 바랄까?”(이 대목에서 피츠제럴드에 관한 사실관계가 조금 불명확합니다. 여기서 ‘네 권’은 장편을, ‘첫 번째 책’은 <위대한 개츠비>를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이 작가가 제 옆에 있었다면, “<밤은 부드러워>도 충분히 훌륭한 책인데, 왜!”하고 따졌을 겁니다. 그리고 알코올중독 운운하는 건 너무한 거 아니냐고, 소설로 자신의 삶을 극복했다면 그걸로 된 거 아니냐고 덧붙였을 테지요.


저는 피츠제럴드의 팬입니다. 어느 정도냐면, 온라인상에서 제 닉네임으로 <위대한 개츠비>의 화자 ‘캐러웨이’의 이름을 따와 지었을 정도입니다. 그러니 피츠제럴드가 무얼 쓰든지 제게는 환호해 줄 준비가 되어 있는 셈이지요. 그럼에도 이번에 <라스트 타이쿤>을 읽으면서 부디 이 작품이 피츠제럴드의 반대자들을 반박할 만한 강력한 논거가 돼 주길 간절히 바랐던 건, 방금 전 언급한 사정 때문이었습니다. 세상에는 아직도 피츠제럴드를 얕잡아 보는 분들이 의외로 많이 있으니까요.


우선 <라스트 타이쿤>의 주인공 먼로 스타는 할리우드의 프로듀서입니다. 단순한 프로듀서라기보다는 막강한 권력을 지닌 제작자라고 생각하면 좋을 듯싶습니다. 그는 이를 테면 사람들이 “왕은 왕비를 하나 만들 수 있을 뿐이지만 스타는 많은 여왕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능력 있는 프로듀서입니다. 먼로 스타는 영화의 완성도를 위해서라면 촬영현장에서 감독을 교체하는 걸 마다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먼로 스타는 능력만 있는 게 아니라, 영화 산업에 대한 책임감도 지니고 있어서, 꼭 돈이 되지 않는 영화 프로젝트에도 그는 투자하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스타는 영화가 산업을 넘어 예술에 이르기를 바라는 사람입니다. 아내와 사별한 그는 일에 미쳐 살아갑니다.


그러던 먼로 스타에게 한 여인이 나타납니다. 죽은 아내와 꼭 닮은 캐슬린이라는 여자가. 소설은 먼로 스타와 캐슬린, 그리고 먼로 스타를 사랑하는 세실리아의 삼각관계로 흘러갑니다. 세실리아는 먼로 스타의 라이벌이기도 한 프로듀서 브래디의 딸입니다. 브래디는 먼로 스타와는 정반대편에 있는 속물적인 인간이고요.


피츠제럴드의 소설을 읽어보신 분들이라면 짐작하시겠지만, <라스트 타이쿤>의 이야기가 특별한 건 아닙니다. 사실 제가 아끼는 <위대한 개츠비>와 <밤은 부드러워>의 이야기도 그랬지요. 피츠제럴드 소설의 이야기가 통속성을 가득 품고 있음에도 제가 그의 소설을 좋아하는 건, 그의 소설이 통속성이 인간 본연의 것인지를 제대로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라스트 타이쿤>에는 그런 것들이 잘 들어 있느냐?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안타깝게도 이 소설이 미완성이기 때문입니다. 피츠제럴드의 장편은 결말을 읽은 뒤 다시 헤아려야 고개를 끄덕이게 될 수 있을 정도로 잘 만들어진 건축물을 연상시키는데, 이 소설은 짓다 만 건물이니 알 수가 없는 겁니다. <위대한 개츠비>의 이야기가 통속적으로 흐르는 것 같으면서도, 결국에 가서는 그런 통속성들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완벽에 가까운 소설을 이루었던 것을 떠올리면 아쉬운 일입니다.

 

그렇다고 실망하기엔 이릅니다. 피츠제럴드의 장기인 섬세한 묘사는 이번에는 할리우드를 겨냥하는데, 우리가 할리우드에서 궁금해 할 법한 것들을, 특히 영화 제작에 관한 사항들을 제대로 묘사해 주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피츠제럴드의 아름다운 문장도 역시 빛을 잃지 않습니다. 이를 테면 먼로 스타가 케슬린을 만나는 장면을 묘사한 다음 문장.


“돌아온 것인가, 그 을씨년스러운 조용한 방에서, 숨을 죽이고 달리는 영구차에서, 떨어져 뒤덮여 있는 꽃다발의 꽃잎 속에서, 피안의 어둠 속에서─지금, 여기에 따뜻하고 찬란하도록 싱싱하게 냇물이 곁을 흘러가고, 거대한 스포트라이트가 내려와 반짝거리고 그리고 스타의 귀에 들린 목소리는 죽은 아내와는 전혀 다른 사람의 목소리였다.”


아름다운 문장들만 있는 건 아닙니다. 이 책은 사실 책 말미에 실린 피츠제럴드의 창작노트만으로도 읽을 가치가 있습니다. 이런 일급 작가의 창작노트가 책에 묶여 출간되는 일은 드무니까요. 피츠제럴드가 작성한 개요를 보면 그가 각 챕터에 단어 수를 얼마만큼 분배할지까지 염두에 두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피츠제럴드는 이 노트에서 독자의 반응을 세밀하게 예상해 보기도 하고, 문장에 캐릭터와 주제를 어떻게 실어야 할지에 대한 고민도 펼쳐 놓기도 했습니다.


“이 장은 단순한 성격의 분석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그(주인공 먼로 스타)에 관해서 무엇을 얘기하든 수백 단어마다에 무엇인가 함축성 있는 일화 등을 삽입하여 이야기를 새롭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창작노트를 읽으면서 저는 피츠제럴드가 그야말로 칼을 빼들었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피츠제럴드는 <라스트 타이쿤>을 <위대한 개츠비> 이상의 걸작으로 써낼 야심을 품었지요. 이제 막 미완성작인 <라스트 타이쿤>을 다 읽었을 뿐인 저는 이 작품이 <위대한 개츠비>를 뛰어넘는 걸작이 될 수 있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라스트 타이쿤>이 <위대한 개츠비>보다 더 피츠제럴드라는 작가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 되었으리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피츠제럴드는 그야말로 이 소설에 자기의 모든 것(그가 이전에 쓴 작품들까지도)을 담아내려고 했으니까요. 저는 단지 소설 맨 뒤에 실린 피츠제럴드 연보 속 한 구절을 야속한 심정으로 읽고 또 읽을 뿐입니다. 1940년 12월 21일 심장발작으로 사망(만 44세). 아, 그는 너무 빨리 가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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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규 - 상행 (한글판 + 영문판) - 합본 답게 한국문학 영역총서 10
김광규 지음, 안토니 수사.김영무 옮김 / 답게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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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껴가며 읽는 중. 김광규 시인의 시도, 번역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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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 그레이슨, 윌 그레이슨
존 그린.데이비드 리바이선 지음, 김미나 옮김 / 자음과모음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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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에 가장 어울리는 형용사는 ‘유쾌한’일 것입니다. 등장인물들이 처한 상황이 결코 유쾌하다고는 결코 보아줄 수 없는데도, 이 소설은 시종일관 유쾌하게 흘러가지요. 일단 이 소설의 챕터를 번갈아 맡은 두 작가의 문체가 그렇습니다. 두 아저씨 작가가 어쩌면 1인칭 시점으로 십대의 언어를 잘 구사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십대의 표정을 저 멀리서 들여다보는 게 아니라 직접 그들의 분신이 되어 그들의 생각과 언어를 재현해 보려는 두 작가의 시도는 꽤 성공한 듯 보입니다. 가끔 어떤 소설에서는 상황과 문체가 따로 노는데, 이 소설은 그런 불일치의 흔적이 없으니까요. 십대들에 관한 소설은 많지만 저 같은 성인도 즐겁게 웃으며 즐길 수 있는 소설은 드물었던 것 같습니다.


소설의 표면적 주인공은 두 윌 그레이슨이지만, 저는 타이니의 이야기에 더 끌렸습니다. 타이니는 엄청난 덩치를 자랑하는 게이 캐릭터이지요. 그는 아주 어린 시절 자신의 성정체성을 깨닫고, 무려 열여덟 명의 게이들과 데이트를 하지만 아직 진정한 사랑을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자기 친구 윌 그레이슨과는 또 다른 윌 그레이슨을 만나고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그 마저도 얼마 지나지 않아 파국을 맞게 됩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이 세상에 진정한 사랑은 없는 것 같아 보입니다.


타이니는 시무룩해져서 별다른 기대도 없이 그간 준비해왔던 뮤지컬을 진행합니다. 그가 진행하는 뮤지컬은 타이니가 살아왔던 내력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뮤지컬이 끝나갈 무렵 무대 위의 모든 사람들이 타이니에게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관객들도 여기에 참여하고요. 이 퍼포먼스에 거창한 이유 같은 것 없습니다. 계속 차이기만 하는 게이일지라도 우리와 함께 있다는 사실이 소중하고, 고맙고 고맙다는 이야기일 테지요.


이 책에 나오는 십대들은 시종일관 머뭇대고 주춤거립니다. 그 모습이 사랑스럽습니다. 그리고 서로서로 따뜻하게 보듬어주고 격려하는 캐릭터들이 서로 얽혀 만들어내는 풍경도 정답고 애틋합니다. 내가 십대 시절을 돌아보며 진저리를 치면서도 이따금 그리워하는 것은 그 정답고 애틋함을 어른들의 세계에서는 발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소설의 십대들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원래 그러면서 크는 거라고, 실은 나처럼 나이 많은 사람도 머뭇대고 주춤거리고 있다고. 그런 머뭇대고 주춤거리는 시간이 없다면 세상살이가 얼마나 지루하겠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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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세하는 사람은 인사 평가를 신경 쓰지 않는다 - 인사 컨설턴트가 알려주는 승진과 출세의 비밀
히라야스 요시히로 지음, 김정환 옮김 / 나라원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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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말?" 하고 저자에게 되묻고 싶게 만드는 제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출세하는 사람이 인사 평가를 신경 쓰지 않는다니. 제가 회사에서 경험한 초고속 승진형 인간들 가운데 인사 평가를 신경 쓰지 않았던 사람이 있었는지 곰곰 생각해 봤습니다.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쨌든 회사에서 승진하려면 윗사람에게 잘 보이는 게 중요한 것 아닐까, 라는 의문은 남습니다.

 

이 책에서 저자가 주로 조언하고자 하는 것은 관리직, 더 나아가 경영진으로의 출세입니다. 과장 승진에서 인사 평가를 신경 쓰느냐의 여부가 크게 결정적이라고 저자가 여기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오랜 기간 인사 컨설턴트로 일해온 저자 히라야스 요시히로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많은 경영진들은 인사 평가를 그리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이었다고 합니다.

 

책 중간마다 삽입된 ‘스토리텔링’ 속 가상 이야기 가운데 한 대목을 말씀드리는 게 저자가 전하려는 핵심을 전하는 데 도움이 될 듯합니다. 이 이야기에서 곤도는 늘 인사 평가에 신경 쓰느라 윗사람들에게 잘 보이려 애쓰는 인물이지요. 다른 회사로 옮겨 인사과장이 된 시미즈가 승진에서 누락된 곤도에게 해주는 충고입니다. “위에서 볼 때 넌 참 우수한 말이야. 하지만 말이라는 건 길들여서 타고 다니는 존재일 뿐이지. 말하고 함께 걷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어. 그러니까 출세하고 싶으면 네가 말이 아니라 기수임을 증명해야해.” 그러니까 경영진이 승진 대상자로 눈여겨보는 사람은 말이 아니라 기수라는 뜻입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경영진으로 출세하기 위해 해야 할 것들에 관해 말해줍니다. 그 가운데 유대를 소중히 여기라는 조언이 제게 특히 유익했습니다.. 여기서 유대가 언뜻 인간관계를 넓히라는 말로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자가 말하는 유대는 ‘가치를 낳는 유대’입니다. 조직 내 구성원들이, 그리고 고객들이 자신이 유일무이한 존재임을 인식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일깨우라는 것입니다. 저자가 ‘출세하는 사람은 인사 평가를 신경 쓰지 않는다’는 제목을 붙인 이유가 여기에도 드러나 있습니다. 인사 평가에 신경 쓰는 순간부터 동료들이 경쟁자로 보이기 시작하니, 인사 평가에 신경 쓰는 사람들은 이런 유대를 제대로 형성해나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강한 유대의 수준을 높이고 약한 유대를 늘”리라고 권합니다. 내키지 않더라도 5세, 10세 연상의 상사들이 모이는 곳에 함께 하라는 것, 이런 게 강한 유대입니다. 저자는 “당신의 가치는 당신이 보유한 인적 자본에 따라 결정”되며, “그 인적 자본은 당신이 보유한 강한 유대를 통해 더욱 증대된다”고 말합니다. 또 회사 안에서 동료들 대부분이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을 정도, 회사 밖에서는 자신의 이름은 물론 회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알고 있을 정도의 유대가 바로 약한 유대입니다. ‘인적 자본’ 같은 단어가 사용된 지도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사실 저는 이런 단어를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며 그 동안 내가 회사생활에서 취향과 성향이 맞는 사람들하고만 어울리려고 하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게 되네요. 저자는 이런 인적 자본이 회사를 그만 두고 제2의 인생을 살게 됐을 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사실 ‘승진’은 직장인들에게 가장 부담되는 것 가운데 하나일 것입니다. 제가 다니는 회사의 경우 함께 입사한 동기 가운데 20~25% 정도만 과장으로 승진합니다. 4명 중 한명 또는 5명 중 한명 꼴입니다. 부장이 될 수 있는 확률은 그보다 훨씬 적지요. 경영진이 될 확률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다른 회사도 다소 차이는 있겠지만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이 책의 저자 히리야스 요시히로는 이 점을 명확하게 인식하게 해줍니다. 자신이 회사에서 승진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를 직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할 것 같으면 새로운 인생을 좀더 이른 나이에 계획해야 한다고 저자는 지적합니다. 저는 저자의 주장에 적극 동의하며, 그래서 이 책이 이제 막 직장생활을 시작하는 분들이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삶에서 때로는 어설픈 위안보다 정확한 충고가 필요한 법이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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