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비저블 - 자기 홍보의 시대, 과시적 성공 문화를 거스르는 조용한 영웅들
데이비드 즈와이그 지음, 박슬라 옮김 / 민음인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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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신입사원 채용에 ‘자기PR 전형’이라는 것까지 생겼다고 합니다. 면접관 앞에서 자신의 재능을 홍보해야 하는 전형이라는데요. 이런 전형에서 자신을 알리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무능한 사람이라는 인식을 주게 되겠지요. 굳이 채용이 아니더라도 페이스북이든 트위터든 유튜브든 어떻게 해서든 자기 자신을 홍보하지 않으면 안 되는 분위기가 사회적으로 가득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 반기를 들고 나온 저자가 있습니다. 영화배우를 연상시킬 정도로 잘생긴 저자 데이비드 즈와이그입니다. 이 <인비저블>이란 책은 외부의 인정이 아니라 일 자체에서 나오는 보람을 통해 만족을 얻는 사람들, 즉 인비저블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저자 자신도 ‘사실 검증 전문가’라는 인비저블의 업무를 경험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저자가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고 박수 받기 원하는 인간의 기본적 욕구를 폄훼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슈퍼스타로서의 삶도 있을 수 있고, 그 삶을 지향할 수는 있지만, 남이 주목하지 않아도 자신의 일에 보람을 느끼며 탁월한 삶이 있다는 걸 저자는 말하려 합니다. 저자는 인비저블의 조건으로 세 가지를 꼽는데요. 1. 타인의 인정에 연연하지 않는 태도, 2. 꼼꼼함과 치밀함, 3. 무거운 책임감입니다. 외적 보상이 섬세하고 정교한 작업의 수행 능력을 저하시킨다거나 집중력의 범위를 제한해 창의적 사고에 필요한 폭넓은 시각을 좁힌다는 연구 결과도 저자가 소개해 주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실제 인비저블들의 이야기를 읽는 것이 더 마음에 와 닿지요. 그리고 작가는 이 세 조건에 부합하는 인물들이 어떻게 일을 하며 살아가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인비저블로서의 세 가지 조건은 도대체 어느 수준을 말하는 걸까요. 1. 완벽하게 구축해 낸 길 찾기 시스템을 소비자가 인지하지 못해도, 완벽하게 해 냈다는 사실 그 자체에서 뿌듯함을 느낄 줄 아는 길 찾기 시스템 디자이너의 초연함. 2. 무시무시한 양의 향료를 0.001그램 단위까지 따져가며 원하는 향이 나오기까지 조합하는 조향사의 치밀성. 3. 모든 경우의 수(심지어 테리러즘까지도) 고려해야만 하는 초고층 빌딩의 수석 구조 공학자의 책임감. 대략 이 정도입니다.

 

이 외에도 저자는 충분히 많은 인물들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사실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실제 어떻게 일하는지 풍성하게 맛볼 수 있다는 점이 이 책이 주는 쏠쏠한 맛이기도 하고요. 제가 언제 길 찾기 시스템 디자이너, 조향사, 구조 공학자, 촬영감독, UN 동시통역사, 기지국 수리공, 대역배우 등으로 일하는 분들을 만나보겠습니까. 저자 덕분에 저는 책에 소개된 인비저블들이 하는 업무의 세밀한 내부까지 들여다 볼 수 있었고, 저자가 인터뷰를 매우 심도 있게 했다는 느낌이 확실히 받았습니다. 특히 폴 토머스 앤더슨의 모든 영화에 촬영감독으로 참여한 로버트 엘스윗은 자신의 경험을 말하면서 벤 에플렉(배우가 아닌 감독으로서)하고 일하는 게 힘들었다는 이야기까지 털어놓을 정도입니다.


제 호기심을 특히 자극했던 것은 UN 동시통역사에 관한 대목이었습니다. 제 자신이 외국어를 잘 하지 못하기 때문에 동시통역사가 하는 일이 어떻게 이뤄지는지가 더욱 궁금했습니다. 저자가 소개하는 UN의 동시통역사 윌킨스 아리는 입이 딱 벌어질 만큼 언어에 능통한 사람입니다. 초등학교 시절 프랑스어, 영어, 이탈리아어에 능통해 있었고, 그 후 스페인어를 익혔으며, 성인이 된 후 포르투갈어를 따로 공부해 포르투갈에서 동시통역사 경력을 쌓았다고 하네요. 그러다 UN에 들어가게 됐는데, UN의 동시통역 업무는 고도의 긴장 상태에서 엄청난 양의 전문정보를 다뤄야 하기에 그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습니다. 그렇지만 동시통역사 윌킨스 아리는 그런 긴장 상태를 즐길 줄 아는 사람입니다. 윌킨스 아리는 통역 도중 일종의 황홀경 상태에 빠진다고 고백합니다. 이는 기술에 ‘숙달’하면 몰입을 이룰 수 있다는 저 유명한 미하이 칙센트미하이가 말한 ‘몰입’ 개념과도 상통하지요. 그러니까 몰입을 위해선 ‘꽤 잘하는’ 아마추어 정도로는 부족한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꽤 잘하는’ 수준에 만족하고 있다며 저자는 아쉬움을 표합니다. “만일 우리가 그들만큼 역량을 밀어붙일 수 있다면, 단순히 ‘꽤 잘하는 수준’을 넘어 그 이상을 추구한다면, 어쩌면 ‘탁월함’의 경지에 이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저자는 도전합니다.

 

저자는 인비저블에 관해 심리학자 진 트웬지가 한 말을 들려줍니다. “... 자아도취자들을 예로 들어볼까요. 그들은 젊었을 때에는 대부분 행복하고 타인의 관심을 얻으면서 만족감을 느낍니다. 그렇지만 나이가 들면 눈에 띄게 불행해지죠. 자신이 받아 마땅한 관심과 인정을 더 이상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구구절절 공감되는 말입니다. 업무에서 성취를 내고, 박수 받고, 승진을 하는 데서 얻는 만족감은 당연히 짜릿합니다. 그렇지만 그 시간이 지나고 홀로 남았을 때 밀려오는 공허감을 저는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니 저자가 소개하는 인비저블들의 삶이 그냥 괜찮아 보이는 게 아니라 인비저블들처럼 사는 게 진짜로 사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요.


지금까지 이야기 한 것, 그러니까 인정에 연연하지 않는 태도, 꼼꼼함과 치밀함, 무거운 책임감이라는 세 가지 특성을 저자는 단 한 가지 기질로 요약합니다. 바로 “왕성한 호기심”입니다. 저자가 만난 인비저블은 자신의 영역에서 최고 수준의 전문성을 익혔음에도 늘 새로운 것을 배우려고 한다고 합니다. 일 자체가 인비저블의 보상이기 때문에 남이 칭찬하건 말건 상관하지 않지요. 이 대목을 읽으면서 여러 생각이 스쳤습니다. 내게는 “왕성한 호기심”이 있는가, 하고 자문했을 때, 저는 머뭇거렸습니다. 그 동안 제 업무는 왕성한 호기심이 요구되는 업무는 아니라고 생각하며 살았기 때문이지요. 사무직으로 일하는 회사원들의 업무라는 게 대개 그렇듯이 말이지요. 그래서 저는 제 업무에서 어떻게 “왕성한 호기심”을 발현해야 할지 더 고민해보려고 합니다. 저자가 소개한 인비저블들에게 저는 완전히 매료됐고, 저도 이제부터라도 인비저블로 살아가고 싶다는 열망을 강하게 느꼈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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