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축제의 언덕
박희섭 지음 / 다차원북스 / 2015년 2월
평점 :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5/0310/pimg_7663591101166038.jpg)
1970년대는 제게 그다지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제게 70년대가 혹독한 가난과 정치적 억압의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읽은 <축제의 언덕>이 바로 이 70년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인데요. 이 소설에도 가난으로 인해 힘겹게 살아가야 했던 이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소설 화자는 ‘문수’라는 이름의 소년입니다. 서울에서 살다가 아버지가 바람을 피워서 작은 도시로 쫓기듯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문수네 가족이 도착한 동네는 이전에 살던 곳과는 견주기 민망할 정도로 열악한 곳이었습니다. 그것을 잘 보여주는 대목을 옮기면 이렇습니다.
“... 더 고약한 점은 수백 명은 됨직한 동네 주민 수에 비해 변소 수가 너무 적다는 데 있었다. 그래서 아침 출근시간이면 집안에 변소가 없어서 공중변소에 볼일을 보러 나온 남녀노소가 길게 장사진을 치고 자신의 차례를 묵묵히 기다려야 했다. 여기에 다급한 설사를 만나기라도 할라치면 사흘 굶은 시어머니처럼 잔뜩 우거지상을 한 채 배를 움켜진 엉거주춤한 자세로 자신의 차례가 오기를 최고의 인내심을 발휘하며 기다려야 하는 실정이었다.”
삼형제 가운데 둘째 문수는 집안 형편 때문에 중학교 입학을 미루고 집안일을 돕게 됩니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는 문수의 눈에 비친 작은 동네의 풍경을 그리고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이 소설을 읽으며 저는 김원일 작가의 <마당 깊은 집>을 떠올렸습니다. <마당 깊은 집>의 주인공도 문수와 같은 나이에 학교에 갈 형편이 못 돼 집안일을 도우면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많은 것들을 보고 듣게 되는 이야기이니까요.
제가 이 소설에서 찾은 가장 큰 재미라면 역시 주인공 문수에게 찾아온 사춘기를 지켜보는 일입니다. 여성에 대해 눈을 떠가는 문수의 모습이 특히 흥미롭게 그려집니다. 옆집 부뜰이 엄마가 낮에 냉수욕하는 것을 잠망경까지 이용해 훔쳐보기도 합니다. 자기 집에 세든 선이 누나에게 애틋한 감정을 느끼기도 하고요. 길에서 보게 된 여학생에게 연애편지를 썼다가 그 여학생의 어머니가 집까지 찾아와 따지는 바람에 좌절하기도 합니다.
소년 문수의 성장기를 작가는 크게 힘주지 않으면서 정겨운 풍경으로 묘사해냅니다. 가령 친구 병태가 문수에게 이제 막 여자친구를 만들었다며 자부심 가득 찬 말로 자랑하는 장면에서 전 킥킥대며 웃었습니다. 문수는 병태의 자랑스런 말에 기대를 가득품고 병수 여자친구를 기다리는데요. 드디어 나타난 병수 여자친구에 대한 묘사가 이렇습니다. “그녀는 큰 얼굴에 비해 눈이 작았다. 웃을 때 입술 사이로 작은 덧니가 보였는데, 그걸 감추려고 손으로 입을 가리는 모습이 약간 매력적으로 보이는 정도였다. 윤곽이 없을 만큼 밋밋한 몸매 역시 그다지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소년은 병태의 미적 감각이 의심스러웠다. 무얼 보고 남정임보다 낫다고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런 소소한 묘사들이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즐거움을 줍니다.
저는 이 소설을 가난에 허덕이던 상황에서 당시 딱히 배운 것도 없어 가진 것이라고는 몸뚱이밖에 없던 우리네 어른들의 분투기로도 읽었습니다. 백수로 하릴없이 집에서 빈둥거리던 문수 아버지는 목수일을 잠깐 배우다가 사정이 여의치 않아 그만 두고, 냉차 판매를 해보기도 하고, 고춧가루 장사를 하다가 사기를 당해 감옥신세를 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국회의원 선거운동을 하다가 극장 일을 맡게 됩니다. 이렇게 이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은 비루한 시대 안에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해보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그리고 그런 인물들을 보고 있노라면,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짓게 됩니다.
돌이키기도 싫었던 70년대를 이렇게 미소 지으며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은 작가의 공일 것입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맞아, 그때 어려워도 재밌는 일도 많았지.’라는 생각이 고개를 들면서 옛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더군요. 어느 시대나 어려운 건 마찬가지지만 특히나 눈물겨웠던 시대를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삶에 대한 낙관이라는 것도 확인하게 됩니다. 아마도 작가가 이 소설에 <축제의 언덕>이라는 제목을 붙인 것도 그런 뜻에서 일 것이라 믿고 싶습니다. 물론 이런 낙관은 미래에 대한 무조건적 방관이 아니라, 지금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버티고 서 있으려는 안간힘에서 비롯하는 것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