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자들이 미래의 비전을 보는 것처럼 역사학자들은 과거의 비전을 볼 것이기 때문에, 선지자들의 예언을 의심할 수 없는 것처럼 역사학자들이 제시하는 역사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거나 심지어 보태서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제 나는 킹스 칼리지를 지나가다가 거대한 채플의 그림자를 보면서 소심했던 과거의 나를 떠올리고 그 모습이 우습기까지 하다고 생각했다. 〈누가 역사를 쓰는가?〉 나는 〈바로 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와 아버지를 가르고 있는 것은 시간과 거리만이 아니다. 그것은 변화된 자아다. 나는 아버지가 기른 그 아이가 아니지만, 아버지는 그 아이를 기른 아버지다.
그 순간까지 그 열여섯 살 소녀는 늘 거기 있었다. 내가 겉으로 아무리 변한 듯했어도 ─ 내 학업 성적이 아무리 우수하고 내 겉모습이 아무리 많이 변했어도 ─ 나는 여전히 그 소녀였다. 좋게 봐준다 해도 나는 두 사람이었고, 내 정신과 마음은 둘로 갈라져 있었다. 그 소녀가 늘 내 안에 있으면서, 아버지 집 문턱을 넘을 때마다 모습을 드러냈다.
그날 밤 나는 그 소녀를 불렀지만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를 떠난 것이다. 그 소녀는 거울 속에 머물렀다. 그 이후에 내가 내린 결정들은 그 소녀는 내리지 않을 결정들이었다. 그것들은 변화한 사람, 새로운 자아가 내린 결정들이었다.
이 자아는 여러 이름으로 불릴 수 있을 것이다. 변신, 탈바꿈, 허위, 배신.
나는 그것을 교육이라 부른다.
-알라딘 eBook <배움의 발견> (타라 웨스트오버 지음, 김희정 옮김) 중에서
타라의 독특한 가정사와 사랑하는 가족과의 갈등속에 번뇌를 겪는 모습, 또 배움으로 자아를 찾아가는 모습은 읽는 내내 실화라는 바탕과 함께 충격과 놀람의 연발이었다.
제목이 배움의 발견이라 공교육을 받지못한 사람이 최고 등급의 박사학위까지 가게된 지적갈증의 해소쯤의 이야기로 여기고 시작된 독서였는데 완전 빗나갔다.
사랑하는 가족의 울타리속 안정감에서 벗어나는 것은 그녀에게 두려움이자 버림받음과 동시에 자신의 근본을 부정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정상과 이상, 옳고 그르다는 기준의 경계에 자신과 가족을 세우고, 받아들이고, 견뎌야 했다. 그렇게 타라는 성장하며 자신의 두 발로 세상에 섰다.
교육을 통해 세상을 배우고 가족를 배우고 자신을 배워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