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기어가지 않는다. 사회도 기어가지 않는다. 역사와 사회는 비약한다. 파열구에서 파열구로 이동한다. 다만 그 사이에 작은 진동을 일으킬 뿐이다. 그런데도 (역사학자를 포함하여) 우리 인간은 예견 가능하도록 한 발 한 발 전진하는 세계를 믿고 싶어한다.
이것을 깨달은 후 내게는 신조가 하나 생겼다. 우리는 ‘뒤돌아보는 쪽으로 발달된 거대한 기계’라는 것, 인간은 자기기만에 탁월한 존재라는 것이다. 나의 일그러진 인간상은 해가 갈수록 강화된다. - P57

레바논 분쟁을 겪으면서 나는 사건의 발생에서 보이는 무작위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한 견해를 정립하게 되었다. 그리고 훗날 이 분쟁을 돌이켜보면서 인간의 마음은 그야말로 탁월한 ‘설명 기계‘ 라는 생각을 강하게 굳히게 되었다. 인간의 마음은 거의 모든 일을 설명할 수 있고 갖가지 현상을 풀이해낼 수 있는 반면에 ‘예견 불가능성‘은 일절 용납하지 못한다. 설명할 수 없는 사건들이 발생하는데도 똑똑하다는 사람들은 이미 발생한 사실들을 놓고서 -자신들이 그것들을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들이 나설수록 설명은 더욱 그럴듯하게 들린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렇게 제기된 신념이며 설명들은 논리적로 조리 있어 보이며, 모순이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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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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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완벽한 존재다. 신에게서 나온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다. 그러나 인생이 아름다운 까닭은 불완전성이 지닌 잠재성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완결의 스토리보다는 아직 무엇을 채워 넣어야 할지 알 수 없는 열린 결말이 도리어 무한의 미학인 것이다. 신은 인간에게 그런 끝없는 이야기를 허락한다. 태초에 길 같은 것은 없었다. 내가 가는 곳이 곧 길이다. 그런데 우리의 모나드에는 우리가 직접 밟아가며 만들어낼 길이 이미 기억되어 있다. 평면의 종이 위에 아직 주름은 잡히지 않았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든 주름은 잡힐 것이고, 모나드 속에는 이미 그 주름들의 형상이 예정되어 있다. 즉 삶에 대한 당신의 사랑과 열정만큼이 당신에게 정해진 운명이다. -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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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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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은 일하지 않을 때에는 게을리 지내거나 빈둥거리고 싶어 하며, 더좋은 말을 쓴다면 ‘긴장을 풀고‘ 싶어 한다. 게으름을 피우려는 이러한 소망은 주로 생활의 규격화에 대한 반발이다.
현대인은 자기 자신의 것이 아닌 목적을 위해, 자기 나름의 것이 아닌 일의 리듬에 의해 그에게 지시된 방식으로 어쩔 수 없이 하루에 여덟 시간씩 자기의 에너지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반항하며, 그의 반항은 유아적자기 방종의 형태를 취한다. - P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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