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루시 바턴 루시 바턴 시리즈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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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며 이런 생각을 하게 될 때가 있다.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고. 어쩌면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을 거라고. 하지만 햇살이 내리쬐는 보도를 걷거나 바람에 휘는 나무 우듬지를 볼 때, 또는 이스트 강 위로 나지막이 걸린 11월의 하늘을 바라볼 때, 내 마음이 갑자기 어둠에 대한 앎으로 가득차는 순간들이 - 예기치 않게 - 찾아오기도 한다. 그 앎이 너무 깊어 나도 모르게 소리가 터져나올 것 같고, 그러면 나는 가장 가까운 옷가게로 들어가 낯선 사람과 새로 들어온 스웨터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도 이렇듯 반쯤은 알게 반쯤은 모르게, 사실일 리 없는 기억의 방문을 받으면서 세상을 이런 식으로 어찌어찌 통과해 나갈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공포라는 감정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다는 듯 자신만만하게 보도를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내가 다른 사람들이 어떤 마음인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삶은 아주 많은 부분이 추측으로 이루어진 듯하다.
-21~22p


하지만 나는 진정, 냉혹함은 나 자신을 붙잡고 놓지 않는 것에서,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것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이게 나야, 나는 내가 견딜 수 없는 곳 -일리노이 주 앰개시-에는 가지 않을 거고, 내가 원하지 않는 결혼생활은 하지 않을 거고, 나 자신을 움켜잡고 인생을 헤치며 앞으로, 눈먼 박쥐처럼 그렇게 계속 나아갈 거야!, 라고. 이것이 그 냉혹함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24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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