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현상판에 아무런 이미지도 남지 않을 때 그 이유가 언제나 너무 짧은 노출 시간 때문인 것은 아니다. 흔히 관습의 장막이 오랜 세월 동안 감광판에 필요한 빛을 가로막고 있는 경우들이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치 마그네슘 분말에 불을 붙이기라도 한 듯 어디선가 빛이 생기면서 순간촬영의 이미지로 감광판에 공간이 찍힌다. 이렇게 생기는 비범한 이미지의 중심에는 언제나 우리 자신이 있다. 갑작스럽게 빛에 노출되는 순간들은 곧 우리가 자신의 울타리를 벗어나는 순간들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기억에서 아무리해도 파괴시킬 수 없는 이미지들이 떠오른다면 그것은 쇼크 속에서 우리의 심층적 자아가 겪은 이러한 희생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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