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에 있는 망자들은 실로 오랜 시간을 고통 받아왔기 때문에 이미 고통에는 익숙해져 있을 테니 오히려 질서 유지를 위해서 고통스러운 시늉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지. 이런 지옥에서고통 받는 시간의 길이를 정의해둔 걸 보면 정말이지 편집증적이라네. 예를 들어, 이런 열지옥에서는 인간 세계의 천육백 년을 하루로 친 단위로 만 육천 년이 그들의 하루지. 그 길이란 상상을 초월한다네! 더구나 이 지옥에서 망자는 그들의 가장 긴 단위인 만 육천 년 동안이나 계속 고통을 받아야 하니까 아무리 고통에 둔한 망자라 해도 어느덧 익숙해지겠지." - P134

"그 애가 그렇게나 많은 숫자를 계산할 수 있었니?"
"못 했지. 그렇기 때문에 넓은 종이를 전부 사용해서 작은 먼지 같은 점을 연필로 찍었어. 은하의 천체 사진을 명료한 점으로표현한 것 같은 화면이었지. 그것이 작품 18번 왈츠의 음의 총량이었어. 그 화면을 보고 내가 오랜 시간을 두고 계산한 거지. 그런데 그 계산 결과를 분실해버렸으니 아쉬운 거야. 나는 그 애가연필로 찍은 점들의 숫자가 분명 정확할 거라고 생각해."
그러더니 다카시가 뜻하지 않게 나를 위로했다.
"이렇게 보고 있으면 형수님 또한 독특해"
나는 다카시가 머리를 붉게 칠하고 목을 매고 죽은 친구에 대해 그 사람은 독특한 인간이었다고 했던 말이 생각났고, 그 말은방금 다카시가 한 말과 겹쳐지면서 내 마음속 깊은 곳을 흔들었다. S형 또한 독특한 인간이었다고 다카시가 말한다면 나는 더이상 그의 꿈의 기억에 대해서 그 어떤 아는척하는 수정도 시도할 생각이 없었다. 그 말은 모두 죽어버린 그들, 타인에게 전달불가능한 불안에 사로잡힌 이들의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어떤 것의 존재감을 진정으로 느낀 이의 말이었다. - 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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