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시가 가까워지자 나는 내릴 준비를 하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기차는 속력을 줄이지 않았다. 이건 W시에서 서지 않는 기차였던 것이다. 당연히 설 줄 알고 탄 나 자신에 대한 화가 울컥 치밀면서 등줄기로 후욱 하고 뜨거운 것이 내리꽂힌다 싶었는데, 눈앞으로수도원이 지나가고 있었다.
언덕 위에서 기찻길을 조용히 내려다보고 선 수도원 드문드문 밝혀진 창들이 멀리서 빛나고 있었다. 마치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낙원을올려다보는 것처럼 내 가슴속 깊이 동경(憧憬)의 등불이 환하게 밝혀지는 것 같았고 신기하게도 그 짧은 순간, 내가 늘 우두커니 서서 기차가 지나가는 것을 내려다보던 언덕이 선명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내가 없는 그 언덕은 텅 비어 있었다. 가슴 한쪽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쓰려왔다. 나는 수도원 밖으로 쫒겨난 자가 가질 비애를 이미 느끼고 있었다. 언제나 기차 밖에서 기차를 내려다보며 알 수 없는 그리움에 젖던 내가 막상 기차 안에서 수도원을 올려다보자 그리움의 대상이 순간 전도되어버린 것이었다. - P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