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길 마지막 슈퍼라는 이름답게 슈퍼는 소월길 언덕 끄트머리에 있었다. 성에 낀 유리문을 밀자 문에 달아놓은 녹슨 종이 울렸다. 빛바랜 담요를 덮고 앉은 주인이 우리를 보고 화면이 불룩한 티브이에서 나오는 소리를 줄였다. 우리가 삼각 비닐팩에 담긴 커피우유를 찾는다고 하자 주인은 펩시콜라 스티커가 붙은 냉장고를 가리켰다. 과자와 초콜릿, 빵이 올려진 낮은 나무 가판대를 지나 나는 녹슨종이 달린 냉장고 문을 열었다. 그리고 커피우유를 꺼내든 순간, 나는 어떻게 내가 다른 사람의 꿈에 갈 수 있는지 깨달았다. 꿈을 꾸는 엄마의 마음과 그 꿈으로 간 내 마음, 그리고 우리 두 사람을 이어주는 챔바의 마음이 삼각뿔의 세 직선처럼 하나의 꼭짓점에서 만나고 있었다. 세 방향으로 뻗은 마음의 면들이 커피우유의 모습을 하고 내 손 위에 올려져 있었다. 그리고 나를 이곳까지 오게 한 마음, 나보다 어둡고 나보다 빛나는 슬픔이 삼각뿔 커피우유의 밑면처럼 우리를 떠받치고 있었다. - 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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