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스무 살 생일이었던 그날, 연신 소주를 들이켜서 발그레하게 취기가 오른 얼굴로 엄마는 말했다. 점심시간이면 동료들과 함께 공장 마당에서 배트민턴을 쳤는데 그 사람과 자주 짝이 되었다고, 어느 날 셔틀콕이 이마에 세게 부딪혔을 때 그가 가장 먼저 달려와 괜찮냐고 물은 뒤 손바닥으로 이마를 쓸어주었다고, 그러니까 그게 다였다, 엄마가 그와 한 데이트는……. 나의 작고 어렸던 엄마는 그를 올려다보며 웃었고, 쑥스러워하면서도 그가 내민 손을 잡고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다시 라켓을 쥐었다. 셔틀콕을 허공에 던진 뒤 라켓으로 탕 칠 때 엄마의 몸짓은 암사슴처럼 날렵했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본 적 없지만 본 것 같은 그 장면을 이제 나는 영원히 잊지 못할 터였다. 커플은 곧 라켓을 챙겨 공터를 떠났지만 둥근 선을 그리며 반복해서 오가는 셔틀콕이, 신의 뜻도 아니고 죄의 결정체도 아닌, 그저 그 중간쯤의 어딘가에서 흔들리며 머무는 삶의 한 덩어리 은유가 내게는 계속 보였다.
-356~35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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