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사회를 목표 지점으로 잡다 보니 근대 이전의 모든 사회는 기껏해야 ‘근대 사회의 미숙아‘들이 되고 만다. 근대의 잣대로 이전 역사를 덮어씌우는 것이다. 나는 언젠가 술자리에서 그가 화를 내며 내뱉었던 말을 기억한다. "우리는 걸핏하면 ‘전근대적‘ 이라는 말을 욕설처럼 사용합니다. 전근대적 노사 관행이라든지 하는 식으로 말이에요. 그런데 노사관계는 근대적이고, ‘전근대적‘이라고 말하는 그런 관행은 근대사회인 우리 사회의 병폐이지 전근대사회에서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자신의 치부를 과거 사회에 책임 지우는 우리 시대의 못된 습관이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그의 한탄에 공감이 간다. 그는 이 땅에서 가장 오래 지속된 왕조, 무려 오백 년을 지속한 조선의 체제가 가진 ‘힘‘이 무엇이었는지 우리가 잘 모른다고 말한다. 조선이 가진 ‘힘‘에 대한 그의 해석에는 유보할 대목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조선을 그것이 가진 ‘힘’으로부터 사유하려는 태도에 나는 완전히 공감한다. 나는 여전히 해석과 무관한 사실을 믿지 않지만, ‘사실을 해석에 동원‘하는 역사주의에 맞서 ‘해석에 저항하는 사실들‘을 드러내는 기록학사로서의 그의 태도를 지지한다(내 생각에는 그것이야말로 ‘해석에 맞서는 해석‘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49p, <힘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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