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을 회피하기 위한 기술로 ‘정치적 올바름’을 이해한다면, 이것이 광장에 들어오는 것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알 수 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 뒤섞이는 광장에서 갈등은 결코 피할 수 없다. 그리고 우리에게 필요한 윤리나 민주주의는 그러한 갈등을 통해서만 생성된다. 물론 다른 사람들과 부대끼는 경험은 힘들고 두려운 것일 수 있다. 갈등을 회피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이 피해를 입을 가능성뿐 아니라 어떻게 보면 자신이 가해자가 될 각오도 해야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을 회피하고 있는 한, 세상은커녕 나 자신도변할 수 없다. ‘착한 방관자‘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정치적 올바름‘은 전혀 정치적이지 않다. 정치란 가치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이며, 그 과정 속에서 사람이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정치는 올바름이라는 규범적 사법적 개념과는 근본적으로다른 것이다. 정치적 올바름‘이란 그 의미에서 정치의규범화이며, 더 분명하게 말하면 정치의 죽음이다. 광장에서 우리는 새로운 정치를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지, 거기에 규범을 도입하는 것은 광장의 힘을 분열시켜 약하게 만들 뿐이다. 시인 오드리 로드(Audre Lorde)는 「주인집은 결코 주인의 도구로 해체할 수 없다」라는 글에서, 사회적 규범에서 벗어나 있는 여성들에게 생존이란 "우리의 차이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배우는 일이며, 그럼으로써 그것을 힘(strength)으로 바꾸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우리가 지닌 수많은 차이들을 우리의 힘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우선 그 차이들을 다루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배움이란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상호적인 변화를 통해 새로운 관계가 생성되는 과정을 말한다. 우리가 광장의 경험을 새로운 사회의 출발점으로 삼기 위해 필요한 것은, 갈등을 두려워하지 않고 기존의 ‘나‘를 깰 수 있는 이러한 배움을 시작할 용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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