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여자라면 칼을 들고 산으로 빨려 들어가 춤을 출것이다.

그러다 작살을 쥐고 한 사내의 과거를 헤집을 것이다.
외롭다고 말한 뒤에 외로움의 전부와 결속할 것이다.

내가 여자로 태어난다면 고아로 태어나 이불 밑에다 북어를 숨겨둘 것이다.
숨겨 두고 가시에 찔리고 찔리며 살다
그 가시에 체할 것이다

생애 동안 한 사람에게 나눠 받은 것들을
지울 것이며
생략할 것이다

- <정착> 중

사람이 온다.

바람이 커튼을 밀어서 커튼이 집 안쪽을 차지할 때나 비를 맞은 버드나무가 늘어져
길 한가운데로 쏠리듯 들어와 있을 때
사람이 있다고 느끼면서 잠시 놀라는 건
거기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낯선 곳에서 잠을 자다가
갑자기 들리는 흐르는 물소리
등짝을 훑고 지나가는 지진의 진동

밤길에서 마주치는 눈이 멀 것 같은 빛은 또 어떤가
마치 그 빛이 사람한테서 뿜어나오는 광채 같다면
때마침 사람이 왔기 때문이다.

잠시 자리를 비운 탁자 위에 이파리 하나가 떨어져 있 거나
멀쩡한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져서 하늘을 올려다볼때도
누가 왔나 하고 느끼는 건
누군가가 왔기 때문이다

팔목에 실을 묶는 사람들은
팔목에 중요한 운명의 길목이
지나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겠다

인생이라는 잎들을 매단 큰 나무 한 그루를
오래 바라보는 이 저녁
내 손에 굵은 실을 매어줄 사람 하나
저 나무 뒤에서 오고 있다

실이 끊어질 듯 손목이 끊어질 듯
단단히 실을 묶어줄 사람 위해
이 저녁을 퍼다가 밥을 차려야 한다

우리는 저마다
자기 힘으로는 닫지 못하는 문이 하나씩 있는데
마침내 그 문을 닫아줄 사람이 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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