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가 하면 정은과 현수는 내가 언젠가 막연히 나에게도 도래할 것이라고 기대했던 삶, 진짜 어른의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무엇보다 그들이 맺고 있는 관계에서 그랬다. 그들은 서로를 완전한 독립체로 대하면서도 끊을 수 없는 강한 유대를 맺고 있었고 그것은 신뢰를 기반으로 한 아주 단단하고 영속적인 결합으로 보였다. 그건 내가 구체적으로 그려보지는 못했지만 만약 그런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그렇게 되기를 바라 마지않았을 완벽한 형태의 관계 같았다. 그들은 나보다 겨우 두세 살 많을 뿐이었지만 나는 두 사람이 마치 나보다 한 세대는 위의 사람들인것 같다고 생각했다. 유행에 뒤처졌다거나 고리타분해서가 아니라 두 사람이 내가 그래왔고, 그러고 있는 것보다 이 세상을 훨씬 더 많이, 잘, 속속들이 활용하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247p, 정영수, <우리들>

"다시는 할 수 없는 말."
"다시는 말할 수 없는 사랑이란 말은 뭘까?"
나는 때로 사랑이라는 건 그 자체로 의미를 품고 있지 않은, 그저 질량이 있고 푹신거리는 단어일 뿐이라고 느끼곤 했다. 나와 연경이 서로에게 사랑한다고 말한 순간을 세어보면 얼마나 될까? 우리는 서로가 그 말을 그 자체로서 받아들이지 못할 때뿐만 아니라 심지어 그 말을 제대로 듣고 있지 않을 때조차 마치 우리 사이빈 공간을 메우려는 것처럼 그 말을 쏟아냈다. 구멍이 뚫린 튜브에 계속해서 호흡을 불어넣는 것처럼, 그러나 우리의 말들이 완전히 무의미했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라는 공간을 채우기 위해서 더이상 아무 뜻도 남지 않은 언어라도 멈추지 않고 채워넣는 것 외에 무엇을, 형체를 잃어가는 우리가 우리를 유지하기 위해 그 일 외에 더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261p, 정영수, <우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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