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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크! 체크리스트 - 완벽한 사람은 마지막 2분이 다르다
아툴 가완디 지음, 박산호 옮김, 김재진 감수 / 21세기북스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대부분의 인간의 기억력의 한계보다 더 많은 정보를 동시에 빼놓지 않고 정확하게 다룰 것을 요구하는 현대 사회의 고급 업무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훌륭한 통찰과 문제의식과 (일견 공포스러운) 의료계 고발까지 담은 의학&보건학 책이다.
건설업계와 항공기 조종사 교육 등에 대해 공부해가며, 의료계가 공학계에 비해 얼마나 원시적으로 일해왔는지, 그리고 WHO와 세계 각지의 다양한 병원에서 체크리스트 사용이라는 단순한 해결책이 얼마나 어이없을 정도로 많은 성과를 불러왔는지 증명까지 해냈다.
물론 책의 앞, 뒤, 챕터 제목, 챕터별 글머리, 글말미 등에 정신사나운 초록색 체크 그림이 난무하고 `완벽한 사람은 마지막 2분이 다르다`는 식의 문구 때문에 이런 내용일 것이라고 예상하기는 힘들다.
아툴 가완디라는 이름 하나만으로는 책 판매가 어려울 거라 봤던 걸까? 책은 더 잘 팔렸을지 모르나, 나는 이 포장과 책 분류 때문에 이 책을 놓쳤을 사람들이 아쉽다. 자기계발서를 폄하하고자 하는 의도는 없지만, 나는 이 책이 전달하는 작가의 시각도 귀하고 쓴 솜씨도 워낙 훌륭해서, 이 표지와 디자인보다는 더 우아한 포장이 어울린다고 생각한다ㅠ 게다가 이 책의 체크리스트와 가이드라인은 단체 작업 용이고 매우 전문화/세분화된 작업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 어차피 혼자서 활용할 만한 것도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가완디라는 작가가 보건학을 공부하고 나서 처음 쓴 이 책에서 그의 보건학 전문가로서의 면모를 볼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업계 간 업무 과정 비교는 `박학다식함` 수준에서는 불가하고, 적어도 두 분야를 제대로 공부한 사람이어야 가능한 것이었을 거라 생각했다.
게다가 보건학이라고 하면 자동적으로 예방의학과 통계 아니면 국제보건 정도만 떠올렸는데, 외과 수술에 보건학이 할 역할이 있을 줄은 몰랐다. 보건학을 진로로 염두에 두고 나서는 당연하게 내과계열전공만 고려했던 나는 얼마나 시야가 좁고 어리석었나.
역시 전공은 가장 재미있고 최대한 잘할 수 있는 것으로 정하는 것이 옳은 것 같다. 학문의 영역에서는 이미 존재하는 조합만 가능한 조합이 아니라는 것도 다시 깨닫는다.
레지던트일 때 쓴 [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에서는 자신의 판단에 대한 불안감을 솔직하게 토로하고 의학이 결국은 인간의 판단에 기대기 때문에 불완전할 수밖에 없음을 고백했던 저자가, 외과 교수가 된 후 쓴 이 책에서는 자신은 이런 기초적인 실수를 하지 않을 것이므로 체크리스트가 자기 수술에는 별 도움이 안 될 것이라 확신했었다고 털어놓는 것이 참 재미있었다.
하지만 다른 많은 성공적인 의사들처럼 경험이 쌓이고 실력에 자신감이 생겼더라도, 이전부터 `의학을 행하는 사람의 불완전성`에 대해 오래 생각해왔기 때문에 체크리스트라는 보조기구를 착안할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생각한다. 자기 글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동료 의사들이(!) 읽을지 알면서도 이렇게 솔직하게 쓸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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