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플 친구 한 분께서 유전자를 의인화하는 `이기적 유전자` 이론을 언급하신 것을 읽었습니다. 그런데 이기적 유전자 이론은 잘못된, 그리고 악용되기 아주 쉬운 패러다임이라 저는 예전부터 이기적 유전자 패러다임대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아직 많은 것을 안타까워해왔습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이 주제에 관해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그 친구분을 비하하고자 하는 의도는 전혀 없지만, 북플 친구가 된 지도 얼마 안 된 분이라 조심스럽네요... 이 글은 제가 예전부터 들어줄 사람만 있으면 해오던 얘기고, 글로 옮기려고 오래 품어온 생각이니 부디 마음 상하시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글 갑니다!

[이기적 유전자]를 통해 널리 퍼진, 유전자를 의인화해서 `유전자는 자신의 번식을 위해 행동한다`고 보는 시각은 진화를 설명하는 쉬운 방법이긴 합니다. 하지만 유전자가 번식을 위해 생물을 이용한다는 식의 시각은 아주 많은 이유로 잘못된 시각이고 오류를 만들어내기 쉬운 시각이라 과학계에서는 이에 대해 많은 비판을 가해왔습니다.

`이기적 유전자` 패러다임이 틀린 이유는, 진화에는 방향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더 나중에 진화한 생물이 더 고등한 생물인 것도 아니고, 진화가 꼭 각 개체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일어나는 것도 아닙니다. `진화`라는 말에는 `발전했다`라는 의미가 내포된 것처럼 느껴지지만, 어떤 기관의 퇴화나 기능의 상실이나 열등화도 진화이고, 심지어 아무 이유 없이 우연히 집단의 유전자 구성이 바뀌는 진화가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genetic drift라는 현상). 

유전자가 살아남기 위해 생물이라는 매개체를 이용하는게 아니라, 태어난 생물이 자기 삶을 살다가 번식을 많이 하면 그 개체의 유전자를 포함하는 생물이 더 많이 태어나는 것이고, 한 생물이 어쩌다 번식을 안 하고 죽거나 그냥 번식을 안하거나 못하게 되면 그 개체의 유전자는 전해지지 않는 것일 뿐입니다. 심지어 번식은 잘 했는데, 그 번식을 도운 돌연변이 유전자는 생식세포 형성시 필연적인 50:50 확률 때문에 우연찮게 전혀 전해지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진화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생물이 항상 조금씩 변화하는 유전체를 갖고 있기 때문에 항상 우연히 새로운 형질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이유에서든 한 생물이 살아남아 번식하면 그 개체의 유전자는 후대에 전해지게 됩니다.

그런데 `이기적 유전자` 패러다임에서처럼 유전자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생물을 조종한다고 생각하게 되면, 어떤 생물의 모든 특징과 행동들에 그것들을 정당화하는 이유를 붙이려고 하게 됩니다. 이는 생명체의 삶과 진화해온 역사를 이해하는데 큰 방해가 되고, 자신의 편견이나 가설에 맞추어 해당 특징들을 끼워맞추는 오류를 범하기 쉽게 됩니다. 유색인종들은 진화가 덜 된 것이라는 주장, 혹은 여성은 진화적으로 남성에 비해 열등한 지능을 갖게 되었다는 주장 등이 이런 식으로 선후관계를 착각한 탓에 나온 오류들의 한 예죠.

그래서 저는 몇 년 전부터 [이기적 유전자]를 모든 사람에게 강력하게 비추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기적 유전자 이론은 선후관계를 착각한 것이기에 일단 틀렸고, 아주 오해를 불러일으키거나 악용되기 쉬운 접근법이기 때문에 더 멀리해야할 것이라고 봅니다. 특히나 고도의 지능을 가지고 문화를 가진 인간이라는 생물의 모든 것을 `유전자를 남기기 위해 이렇게 진화했다`라는 틀에서 설명하려고 들면 설명하는 사람의 사고방식에 맞춰진, 이해하긴 쉽지만 옳을 확률이 아주 낮은 설명이 나오게 됩니다.

프로이트가 여성의 오르가즘을 미성숙한 것(클리토리스를 통한 오르가즘)과 성숙하고 온전한 것(질을 통한 오르가즘)으로 나눈 것, 러브조이가 인류는 태초부터 성에 따라 철저히 분업을 해왔다고 주장한 것 등이 좋은 예가 될 것입니다. 둘다 이런 (가상의) 특징들이 인류에게 진화적 이점이 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 설명 자체는 논리적이었지만 뒷받침할 근거가 불명확했고, 나중에 이들의 주장을 반박하는 데이터가 나오자 큰 비난을 받았죠. 후자에 대한 지적은 요즘 핫한 [인류의 기원]에도 잘 나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심리학적인 현상을 진화로 설명하려는 거의 대부분의 시도는 현명하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인격과 행동패턴은 사회화를 통해 정말 엄청나게 달라지기 때문에, 우리가 생각하고 생활하는 방식은 우리의 유전자가 설계하고 있는 것과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우리 뇌 속에 날 때부터 들어있는 신경 회로는 분명히 진화를 거쳤고 또 우리의 본능을 구성하는 중요한 부분이지만, 저는 그 intrinsic한 신경회로를 넘어서는 심리학적이나 사회학적인 현상을 진화로 설명하려는 시도를 하기엔 아직 인간의 뇌의 생물학적인 구조가 사고를 어떻게 만들어내는지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게 너무 없다고 봅니다.

물론 저의 이런 시각도 제 오리지널은 아닙니다ㅋㅋ `진화심리학`이라는 학문 자체에 아주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는 생물학자, 사회학자, 심리학자 등의 학자들이 많이 계십니다. [이기적 유전자]를 쓴 리처드 도킨스도 그의 이론에 대한 진화생물학자들의 수없이 많은 비판과 반례에도 그의 주장을 수정하지 않아서 욕을 많이 먹었고, `역시 저 사람은 과학자가 아니라 작가일 뿐이다`라고 보는 학자들이 많죠. 이런 비판을 담은 좋은 책을 만나면 꼭 추천글도 쓰고 싶네요.

정리하자면 `이기적 유전자` 이론은 낡고 오류-prone한 편협한 패러다임이고, `이기적 유전자`를 이용한 설명이나`진화심리학적으로 이러하다`라는 식의 설명과 그런 설명들을 도입하는 저자의 책은 (나중에 엄청나게 틀린 것으로 판명날 수 있으니) 특별히 더 비판적으로 읽으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원래 모든 과학적 지식은 나중에 틀린 것으로 판명날 수 있으니 비판적으로 읽어야하긴 하지만요ㅎㅎㅎ



p.s. 저는 도킨스가 마치 자신이 과학을 대변해 교회를 상대로 일종의 성전을 치르고 있는 것마냥 기독교에 지나친 공격을 퍼부어서, 교회가 과학에 대해 공포감과 (그에 수반되는) 적개심을 갖게 했다고 생각해서 더 안 좋게 봅니다. 이런 공격 때문에 교회 내에서 과학 전체를 악으로 규정하는 대립구도가 악화되어 버렸고, 과학이 기독교의 존속을 위협한다고 느낀 기독교 커뮤니티에서 공격적인 원리주의/문자주의 운동이 일어나는 데 도킨스의 맹공이 어느 정도 기여했다고 생각합니다. 비유하자면 서방세계의 개입으로 이루어진 강제적인 세속화에 대한 반발로 이슬람권에서 원리주의 분파들이 생겨난 것과 비슷한 현상이라고 봅니다.

저는 기독교인이 아니지만, 현 교황님과 같이 변화에 발 맞추며 공존을 모색하는 태도가 도킨스처럼 상대에게 공격적인 태도보다 훨씬 더 존경받을만한 태도인 것 같습니다. 제가 도킨스라는 작가의 다른 면에도 이렇게 회의적이기 때문에 이기적 유전자 이론을 특별히 더 안 좋게 보는 걸 수도 있을 듯해 민감한 내용이지만 사족을 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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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nSoo 2016-02-01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로만 들었지 어떻게 접근해얄지 몰랐는데, 고마와요.

2016-02-14 19: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망고林 2016-02-21 17:27   좋아요 1 | URL
며칠만에 들어와서 이제야 답글 드리네요^^;; 제 글을 진지하게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생물과 사회의 진화는 정말 매력적인 주제지만.. 말씀대로 의인화 없이 명쾌하게 설명하기엔 아직 너무 복잡하고 어려운 주제인 것 같습니다.
익명으로 만난 저의 의견도 포용하시는 고양이라디오님 덕분에, 저도 좀더 겸손해져야겠다는 깨달음을 얻고 갑니다. 북플에서 고양이라디오님의 포스팅 항상 즐겁게 읽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글 부탁드립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