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 : 심장에 남는 사람 명의 1
EBS 명의 제작팀 엮음 / 달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자궁을 `들어낸다`라고 써야 할 부분을 `드러낸다`라고 쓰는 등의 극히 초보적인 맞춤법 오류가 심심찮게 보인다. `2조억 개`라는 없는 말이자 매우 틀린 수치-재생불량성 빈혈은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 수치가 모두 현저하게 내려가는 병이며, 평범한 사람의 총 백혈구 수는 약 200억에서 600억 개 정도이다-도 보인다.
암 협회의 로고에 게가 등장하는 이유도 잘못 설명했다. 암이 cancer라고 불리게 된 것은, 최초로 이름붙인 사람들이 유방암의 잘린 단면이 게의 모습과 닮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암이나 게의 속성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구글링은 고사하고 영문 위키피디아 `cancer`페이지 중 `history`항목만 읽어봐도 알 수 있는 지식이다.
자궁암 편에서는, 여성들이 자궁을 `여성의 근본`이라 여긴다는 뜬금없는 말도 나온다. 초등학교에서도 성호르몬을 내놓고 난자를 성숙시키며 여성의 특징이 발현되는 데 중요한 것은 난소라는 것을 배운다. 대체 어느 여자가 난소도 아니고 자궁을 여성의 `근본`이라 여기는지 묻고 싶다. <명의>의 작가님이 여자분이라는 점에서 더 의아하다. 또한 어떤 장기를 여성의 `근본`이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매우 기분이 나쁘다. 그러면 `남성의 근본`은 남근이라고 주장하실 것인가? 차라리 그 편이 낫겠다, think with his balls라는 농담은 실제로 자주 쓰이고 있는 말이지만, think with her womb나 think with her ovaries라는 말은 한번도 들어본 적 없으니 말이다.
신체에 대해 무지해서, 관리에 소홀해서, 혹은 단지 운이 나빠서 병에 걸리는 것은 남자나 여자나 똑같은데 `못난이 자궁은 자기 몸에 관심을 가지라고 경고하고 있었다`며 환자에게 책임을 부과하는 말을 쓴 이유는 뭔지도 묻고싶다. 간경화 환자의 딱딱해진 간이나, 백혈병 환자의 비정상적 모양의 백혈구들이 저런 말을 던진다는 식의 표현은 어느 편에도 없었고 오직 자궁암 편에만 이런 말이 있었다.
심지어 `성생활 등의 스스로 제어할 수 있는 위험인자는 피하는 것이 좋다`는 권고까지 있다. 황당하기 그지없다. 자궁경부암을 일으키는 HPV는 남성에서는 거의 증상을 드러내지 않지만, 여성에게 HPV를 옮기는 것은 대부분 남성이다. 따라서 여성 뿐 아니라 남성도 HPV 백신을 접종받자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으며 미국에서는 여성 청소년에게 HPV 백신이 의무접종 대상이다. 남녀 모두 제때 HPV백신을 맞고 콘돔을 쓰면 성관계로 인해 HPV에 감염될 확률은 한없이 작아진다. 이런 정보 대신 이렇게 쉽게`성관계를 피하라`는 말을 쓰다니...

취재 기획도 좋고, 병원에서 환자와 의사들을 취재하고 어려운 의학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을지도 알겠다. 하지만 책을 제대로 된 감수도 없이 오타와 오류와 편견을 잔뜩 담은 채로 내는 바람에, 나는 이 책에 아주 낮은 점수를 줄 수밖에 없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환자들과 의대 교수님들이 솔직하게 나눠준 이야기와 감정들에 공감해 여러번 눈물짓고 탄식했다. 그 이야기들은 참 귀한 이야기들이었다. 그래서 차마 별 하나를 주지 못하고 두개 주었다. 출판사가 의료계 종사자 몇명과 편집자와 함께 이 책을 개선해 개정판을 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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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1-04 1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BS 다큐프라임 제작팀이 만든 <짝짓기>라는 책도 사소한 오류 몇 개 있어요. 다큐는 잘 만들면서 책을 허술하게 만드는 것을 보면 대필 의혹이 살짝 들긴 합니다.

망고林 2016-01-04 22:26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친구 신청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 EBS 다큐멘터리 팀이 내놓은 다른 책에도 흡사한 문제가 있군요. 저도 다큐멘터리 <명의>를 몇 편 흥미롭게 본 뒤에 이 책을 읽어서 더 아쉬웠습니다. 좋은 책을 만들고자 했다면 이보다 훨씬 많은 것을 담을 수 있었을텐데 말입니다. 영상 만드는 내공이 책을 만드는 일에 통하지는 않았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