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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연잎이 말했네 ㅣ 보림 창작 그림책
장영복 지음, 이혜리 그림 / 보림 / 2019년 10월
평점 :
장영복 작가와 이혜리 작가가 오랜만에 다시 만나 잔뜩 기대를 한 <가시연잎이 말했네> 를 만났다.
가시연. 그냥 연은 알겠는데 가시연이라니, 생소하기 짝이 없었는데 포털 사이트에서 가시연을 찾아 사진을 보며 식물적 특징을 읽다보니 장영복 작가님이 가시연의 어떤 매력에 '꽂혔는지' 조금 알것도 같았다.
개구리의 시선으로 가시연잎을 만나는 이 책은
잔뜩 가시를 품은 가시연잎이 새로운 친구들을 하나 하나 만나고 또 헤어지며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여정을 담고있다.
처음에는 온통 가시 투성이었던 가시연잎. 개구리는 '가시가 다치지 않게' 연잎에 내려앉아 가시연잎이라는 배를 타고, 가시연잎은 자신에게 다가온 개구리에게 연못보다 더 넓은 바다로 나가자고 한다.
당연히 둘은 많은 것을 만난다. 둘을 삼킬듯이 커다란 파도는 가시연잎이 따가워 다시 뱉어낸다. 가시연잎의 가시를 탐내는 복어에게 기꺼이 가시를 내어주는 가시연잎. 복어가 가시를 가져가니 가시연잎은 오히려 홀가분해 한다. 바다에서 또 다른 친구들을 넓은 마음으로 태워주는 가시연잎. 모두가 모여 함께 가시연잎을 타고 있으니 이제 그들은 파도도 삼키지 못 할만큼 튼튼한 존재들이 된다.
그들은 '우리'가 되어 해질녘까지 아름다운 시간을 보낸다.
이젠 더 이상 파도도 '우리'를 삼키지 못하고 구름은 평온히 흘러간다. 우리는 가시를 벗어내고 함께 흘러와 단단한 존재가 되어 해 지는 풍경을 바라보며 묻는다. “우리도 아름다울까”.
모든 힘든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눈에 드는 것이 모두 아름다웠을까? 아니면 모두가 함께 바라보아서 그 풍경이 아름다웠을까.
각자의 길로 떠나야 할 시간. 바다 손님은 바다의 품으로, 육지에서 온 개구리와 가시연잎은 노을 속으로.
가시연잎은 "함께여서 좋았다" 며 개구리와 작별을 한다.
나는 개구리일까 가시연잎일까, 아니면 바다 손님일까.
가시연잎은 닿기만 해도 상처가 날 만큼 독한 가시를 품었지만 개구리는 제 몸이 다칠 염려를 하지 않고 가시연잎에게 다가갔다. 오히려 가시연잎의 가시가 다치지 않을까 조심스레 다가갔다. 그런 개구리의 용기 덕분일까. 가시연잎은 혼자서는 꿈꾸지 못했을 넓은 세상으로 개구리와 함께 갈 수 있었다.
자신을 보호해줄 가시를 필요한 존재에게 선뜻 내어주며 물 흐르듯 흘러가는 가시연잎. 그렇게 내어주었기 때문에 또 다른 친구들을 만나고 '우리' 라는 존재가 되었겠지.
나는 내 삶으로 다가오는 존재에게 얼마나 손을 내밀었을까. 내 가시를 원한다면 기꺼이 내어 주었을까. 거친 파도가 기다려도 '우리' 라서 힘을 내어 바다로 나갈수 있었을까.
언뜻 가시연잎은 다가오는 존재를 기다리기만 한 소극적인 존재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찾아온 이들을 내치지 않고 넓은 품으로 태워주었다. 가시연잎이 복어에게 가시를 내어주지 않았다면, 돌고래와 가오리와 대왕문어를 태우지 않았다면, 아름다운 하늘을 볼 수 있었을까, 자신이 아름답다는 걸 알아차렸을까.
다시 연못으로 돌아와 작별한 개구리와 가시연잎은 다시 혼자가 되어도 잘 살았겠지. 우리가 아름다운 한 때의 기억을 곱씹으며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 내는 것처럼.
처음에는 이 책이 부모와 자식, 혹은 부부같은 '관계'에 대한 이야기로 읽혔는데 여러번 읽다보니 인간의 생의 한 줄기를 보는듯한 '시간'에 대한 이야기로 읽히기도 했다. 나이가 먹고 지혜가 쌓이며 내려놓는 법, 내어주는 법을 배워가고 그러면서 내 사람, '우리'를 공고히 해가는 그런 이야기 말이다. 어차피 인간은 혼자 와서 혼자 간다지만 삶은 가장 아름다운 순간들을 함께한 추억의 힘으로 계속 되기 때문이다.
장영복 작가님의 잔잔하지만 힘있는 시와 이혜리 작가님의 영화 같은 그림이 함께한 이 책은 이변이 없는 한 내 2019년의 책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