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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년 묵은 고양이 요무 ㅣ 네버랜드 우리 걸작 그림책 63
남근영 지음, 최미란 그림 / 시공주니어 / 2019년 6월
평점 :
얼마전 인상적인 사진을 보았다.
브라질의 한 노숙자가 자신의 음식을 아껴 유기견들에게 나눠주곤 했는데
그 노숙자가 갑자기 쓰러져 응급실로 실려가자 그 유기견들이 우르르 병원으로 쫓아가
문 앞에서 걱정스러운 모습으로 안을 살피는 사진이라고 했다.
그 개들의 사진을 보는 순간 가슴속에 울컥 하는 무언가가 나를 자극했다.
그 전부터 궁금했는데, 개나 고양이 등의 반려동물들에게 얻는 위로라는게 과연 어떤 정도일까.
어른이 되어서도 그림책으로부터 많은 위로를 받았다는 남근영 작가의 글은
그 위로의 크기를 짐작케 한다.
<백 년 묵은 고양이 요무> 의 할머니는 늘 고양이 요무에게 퉁박을 놓지만
밥할때면 으레 쌀 한 줌을 더 넣는 '츤데레' 할머니이다.
어린 손녀 영지는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 할머니를 조르지만
"짐승에게 정 주는거 아니다" 라는 할머니 말씀에 뜻을 접는다.
할머니는 짐승에게 왜 정을 주지 말라고 하셨을까?
일하는 엄마 대신 영지를 봐주고 계시는 할머니는
영지가 엄마에게 돌아간 후 누구보다 외로워질 존재임에 분명한데,
누구보다 의지할 존재가 필요한 사람인데.
그건 아마도 할머니의 대사로 짐작하건데
나중에 혼자 남겨질 동물을 오히려 걱정하시는듯 하다.
할머니는 어느 누구보다도 혼자있는 외로움을 잘 아시는 분이 아닐까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몸살에 앓아누운 할머니 곁을 지키는 요무나
새끼를 낳은 요무를 위해 삼계탕을 끓여내 주시는 할머니를 보면
어느 누구보다도 둘은 서로를 의지하며 위하는 존재임에 분명하다.
그렇게 사람은 동물에게 정을 주고, 동물은 말없이 곁을 지켜준다.
때론 사람보다 더 든든하고 깊이 외로움을 달래주는 존재,
그래서 할머니는 요무를 백년묵은 요물이라고 하셨을거다.
쉽게 술술 읽히며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따뜻하고 기분 좋아지는 그런 책이다.
얼마전 인상적인 사진을 보았다.
브라질의 한 노숙자가 자신의 음식을 아껴 유기견들에게 나눠주곤 했는데
그 노숙자가 갑자기 쓰러져 응급실로 실려가자 그 유기견들이 우르르 병원으로 쫓아가
문 앞에서 걱정스러운 모습으로 안을 살피는 사진이라고 했다.
그 개들의 사진을 보는 순간 가슴속에 울컥 하는 무언가가 나를 자극했다.
그 전부터 궁금했는데, 개나 고양이 등의 반려동물들에게 얻는 위로라는게 과연 어떤 정도일까.
어른이 되어서도 그림책으로부터 많은 위로를 받았다는 남근영 작가의 글은
그 위로의 크기를 짐작케 한다.
<백 년 묵은 고양이 요무> 의 할머니는 늘 고양이 요무에게 퉁박을 놓지만
밥할때면 으레 쌀 한 줌을 더 넣는 '츤데레' 할머니이다.
어린 손녀 영지는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 할머니를 조르지만
"짐승에게 정 주는거 아니다" 라는 할머니 말씀에 뜻을 접는다.
할머니는 짐승에게 왜 정을 주지 말라고 하셨을까?
일하는 엄마 대신 영지를 봐주고 계시는 할머니는
영지가 엄마에게 돌아간 후 누구보다 외로워질 존재임에 분명한데,
누구보다 의지할 존재가 필요한 사람인데.
그건 아마도 할머니의 대사로 짐작하건데
나중에 혼자 남겨질 동물을 오히려 걱정하시는듯 하다.
할머니는 어느 누구보다도 혼자있는 외로움을 잘 아시는 분이 아닐까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몸살에 앓아누운 할머니 곁을 지키는 요무나
새끼를 낳은 요무를 위해 삼계탕을 끓여내 주시는 할머니를 보면
어느 누구보다도 둘은 서로를 의지하며 위하는 존재임에 분명하다.
그렇게 사람은 동물에게 정을 주고, 동물은 말없이 곁을 지켜준다.
때론 사람보다 더 든든하고 깊이 외로움을 달래주는 존재,
그래서 할머니는 요무를 백년묵은 요물이라고 하셨을거다.
쉽게 술술 읽히며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따뜻하고 기분 좋아지는 그
얼마전 인상적인 사진을 보았다.
브라질의 한 노숙자가 자신의 음식을 아껴 유기견들에게 나눠주곤 했는데
그 노숙자가 갑자기 쓰러져 응급실로 실려가자 그 유기견들이 우르르 병원으로 쫓아가
문 앞에서 걱정스러운 모습으로 안을 살피는 사진이라고 했다.
그 개들의 사진을 보는 순간 가슴속에 울컥 하는 무언가가 나를 자극했다.
그 전부터 궁금했는데, 개나 고양이 등의 반려동물들에게 얻는 위로라는게 과연 어떤 정도일까.
어른이 되어서도 그림책으로부터 많은 위로를 받았다는 남근영 작가의 글은
그 위로의 크기를 짐작케 한다.
<백 년 묵은 고양이 요무> 의 할머니는 늘 고양이 요무에게 퉁박을 놓지만
밥할때면 으레 쌀 한 줌을 더 넣는 '츤데레' 할머니이다.
어린 손녀 영지는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 할머니를 조르지만
"짐승에게 정 주는거 아니다" 라는 할머니 말씀에 뜻을 접는다.
할머니는 짐승에게 왜 정을 주지 말라고 하셨을까?
일하는 엄마 대신 영지를 봐주고 계시는 할머니는
영지가 엄마에게 돌아간 후 누구보다 외로워질 존재임에 분명한데,
누구보다 의지할 존재가 필요한 사람인데.
그건 아마도 할머니의 대사로 짐작하건데
나중에 혼자 남겨질 동물을 오히려 걱정하시는듯 하다.
할머니는 어느 누구보다도 혼자있는 외로움을 잘 아시는 분이 아닐까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몸살에 앓아누운 할머니 곁을 지키는 요무나
새끼를 낳은 요무를 위해 삼계탕을 끓여내 주시는 할머니를 보면
어느 누구보다도 둘은 서로를 의지하며 위하는 존재임에 분명하다.
그렇게 사람은 동물에게 정을 주고, 동물은 말없이 곁을 지켜준다.
때론 사람보다 더 든든하고 깊이 외로움을 달래주는 존재,
그래서 할머니는 요무를 백년묵은 요물이라고 하셨을거다.
얼마전 인상적인 사진을 보았다.
브라질의 한 노숙자가 자신의 음식을 아껴 유기견들에게 나눠주곤 했는데 그 노숙자가 갑자기 쓰러져 응급실로 실려가자 그 유기견들이 우르르 병원으로 쫓아가 문 앞에서 걱정스러운 모습으로 안을 살피는 사진이라고 했다.
그 개들의 사진을 보는 순간 가슴속에 울컥 하는 무언가가 나를 자극했다.
그 전부터 궁금했는데, 개나 고양이 등의 반려동물들에게 얻는 위로라는게 과연 어떤 정도일까.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는 나로써는 늘 궁금한 일이었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서도 그림책으로부터 많은 위로를 받았다는 남근영 작가의 글은 그 위로의 크기를 짐작케 한다.
<백 년 묵은 고양이 요무> 의 할머니는 늘 고양이 요무에게 퉁박을 놓지만 밥할때면 으레 쌀 한 줌을 더 넣는 '츤데레' 할머니이다.
어린 손녀 영지는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 할머니를 조르지만
"짐승에게 정 주는거 아니다" 라는 할머니 말씀에 뜻을 접는다.
할머니는 짐승에게 왜 정을 주지 말라고 하셨을까?
일하는 엄마 대신 영지를 봐주고 계시는 할머니는
영지가 엄마에게 돌아간 후 누구보다 외로워질 존재임에 분명한데,
누구보다 의지할 존재가 필요한 사람인데.
그건 아마도 할머니의 대사로 짐작하건데
나중에 혼자 남겨질 동물을 오히려 걱정하시는듯 하다.
할머니는 어느 누구보다도 혼자있는 외로움을 잘 아시는 분이 아닐까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몸살에 앓아누운 할머니 곁을 지키는 요무나
새끼를 낳은 요무를 위해 삼계탕을 끓여내 주시는 할머니를 보면
어느 누구보다도 둘은 서로를 의지하며 위하는 존재임에 분명하다.
그렇게 사람은 동물에게 정을 주고, 동물은 말없이 곁을 지켜준다.
때론 사람보다 더 든든하고 깊이 외로움을 달래주는 존재,
그래서 할머니는 요무를 백년묵은 요물이라고 하셨을거다.
쉽게 술술 읽히며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따뜻하고 기분이 좋아진다.
'슈퍼히어로의 똥닦는 법', '삼백이의 칠일장' 등으로 이미 잘 알고있는 최미란 작가님의 따뜻한 그림체도 퍽 잘 어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