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다시 만날 거야. 난 믿어."
앨리가 은정의 뺨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언젠가 우리가 모두 죽는다면, 그래서 시신이 분해되어 입자가된다면, 그 입자의 형태로 지구의 산토리니 해변에서만나자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은정은 앨리의 손바닥에 뺨을 부비며 일광욕과 물장구와 투명한 유리그릇에 담긴 과일을 상상했고, 그제야 마음을 다잡을 수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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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혼탁한 수면 아래, 부유하는 조류들과 썩어가는 덤불 사이, 축축한 진흙 밑으로 실끈 같은 긴 팔을 뻗어 늪을 감각한다. 땅을 통해 전해지는 소리와진동, 공기 중에 퍼져나가는 냄새들이 우리의 감각 세계를 구성한다. 우리는 고여 있는 액체 아래에서, 수많은 생물체의 사체를 집어삼키며 죽음을 삶으로, 삶을 죽음으로 되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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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우리에게 먹히는 것과 자신의 죽음을 동일시했다. 우리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의 일부가 된다는 것은 또 다른 삶을 살게 된다는 의미다.
우리는 자유롭다. 우리는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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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그런 저녁의 풍경이란 할아버지와 지낸 내십대 시절을 요약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일지도 모른다. 할아버지는 특별히 나를 나쁘게 대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다정하지도 않았고, 딱히 이유가 외부에있지는 않은 것 같은 우울과 분노에 시달렸다. 이따금전우회 사람들과 주고받는 전화나 언론에서 베트남전 이야기가 나오면 흥분한다는 점에서 그건 아무래도 참전의 기억 때문인 것 같았다. 거의 오십여 년이나 된 일이지만 시간적으로 멀어도 체감적으로는 아주 가까워서 할아버지를 여전히 괴롭히는 듯했다. 내가 전쟁 장면이 나오는 할리우드 액션 영화를 보고 있으면 할아버지는 아아, 시끄럽다, 시끄러워, 하고 손사래를 치면서 끄거나 방에 들어가서 혼자 보라고 화를 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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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은편 옥상에서 남자와 개가 사라지고 나서 지호는서울에서의 자신을 떠올려보았다. 그때 자신은 개를 데리고 다니는 남자처럼 자신이 나눠 주는 일에만 의지하는 사람들과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자신이 저 개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지호는 사람이 필요했다. 막상 기대어 오면 떨쳐내고 싶어 하면서도, 지호를필요로 하고 의지하는 사람들이. 문득, 아주 오랜만에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호는 걸려 오는 수빈의 전화를받았다. 수빈은 지호가 있는 곳에 오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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