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그런 저녁의 풍경이란 할아버지와 지낸 내십대 시절을 요약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일지도 모른다. 할아버지는 특별히 나를 나쁘게 대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다정하지도 않았고, 딱히 이유가 외부에있지는 않은 것 같은 우울과 분노에 시달렸다. 이따금전우회 사람들과 주고받는 전화나 언론에서 베트남전 이야기가 나오면 흥분한다는 점에서 그건 아무래도 참전의 기억 때문인 것 같았다. 거의 오십여 년이나 된 일이지만 시간적으로 멀어도 체감적으로는 아주 가까워서 할아버지를 여전히 괴롭히는 듯했다. 내가 전쟁 장면이 나오는 할리우드 액션 영화를 보고 있으면 할아버지는 아아, 시끄럽다, 시끄러워, 하고 손사래를 치면서 끄거나 방에 들어가서 혼자 보라고 화를 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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