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그때부터 대처로의 출분을 꿈꿨다. 마침 오빠의 소학교졸업을 기화로 그 꿈은 구체화됐다. 엄마는 아버지의 삼년상도 받들기 전에 오빠를 데리고 서울로 떠났다. 맏며느리로서 시부모 공양하고 봉제사라는 신성한 의무를 포기하는 대신 엄마는 아무런 재산상의 권리도 주장하지 못했다. 숟가락 하나도 집안 것은 안 건드리고 오로지 당신의 단 하나의 재간인 바느질 솜씨만 믿고 어린 아들의 손목을 부여잡고 표표히 박적골을 떠났다. 그때는 내가 떠날때 같은 고부간의 사전 불화조차 없었다.

엄마는 표를 사러 가고 나는 할머니와 긴 의자에 앉았다. 농바위고개에서 볼기 맞고 나서 나하고 할머니 사이는 쭉 서먹했다. 할머니는 보따리 귀퉁이에 손을 넣으시더니 조찰떡을 꺼내서 먹으라고하셨다. 나는 헛헛해서 매점 유리창 속에 고운 종이에 싼 먹을 것을바라보며 군침을 삼켰지만 그것을 받아먹긴 싫었다. 나는 속에 팥을 넣고 큰 고구마처럼 아무렇게나 뭉친 조찰떡과 할머니의 갈퀴같이 모진 손이 함께 싫고 창피해서 세차게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창밖에 전송객들도 따라 움직였지만할머니는 그냥 서 계셨기 때문에 곧 보이지 않게 됐다. 나는 휴우 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고 나서 엉덩이를 들까불러서 의자의 신기한탄력을 시험해보기도 하고 한 손으로 등받이를 만져보고 쓸어보기도 했다.

어둑해질 무렵 경성역에 내렸다. 경성역은 아닌 게 아니라 컸다.
컸기 때문에 도리어 전모를 파악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생전 처음보는 인파에 휩쓸리면서 엄마를 놓칠까 봐 조마조마하는 게 고작이었다. 엄마는 할머니가 여다 준 짐까지 합해서 세 개나 되는 보따리를 이고 들고 구름다리를 오르내리느라 내 손을 잡아줄 수 없었다.
치마꼬리에 매달리는 것도 싫어했다.

나는 험악하게 생긴 지게꾼의 얼굴에 경멸이 스치는 걸 놓치지 않았다. 도시의 집단 속에서 엄마는 작고 초라해 보였다. 동백기름을발라 늘 곱게 빗어 쪽 찌던 머리가 힘겨운 짐을 이었다 내렸다 하는새에 헝클어지고 곤두선 것도 보기 싫었다. 나는 이유가 분명치 않은 슬픔이 복받치는 걸 느꼈지만 울음을 터뜨리진 않았다.

말끝마다 꼬박꼬박 상상꼭대기라네, 되지 못한 늙은이 같으니라구. 엄마는 포개놓은 세 개의 짐에 머리끝까지 가려서 겅정겅정 뛰다시피 하는 두 다리만 뵈는 지게꾼을 향해 조그만 소리로 그렇게중얼거렸다. 그러나 흥정이 그렇게 끝난 건 나한테는 매우 다행한일이었다. 나는 마음놓고 엄마의 손을 잡을 수가 있었다. 우리는 지게꾼을 따라 겅정겅정 뛰다시피 했지만 지게꾼은 줄창 저만큼 앞서가고 있었다.

엄마가 무서운 얼굴을 했다. 그리고 길가에다 화덕을 놓고 동그란 빵을 구워내는 곳에다 동전을 한 푼 내밀었다. 시골집에 있는 다식판 구멍보다 훨씬 큰 구멍에다 묽은 밀가루 반죽을 붓고 팥속을넣어 익힌 따끈한 빵을 두 개 받아 들었다. 팥의 감미는 혀가 녹을것 같았다. 그건 내가 알고 있는 엿이나 꿀의 감미보다 희미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훨씬 고혹적이었다. 나는 두 개의 국화빵에 현혹되어 전차 타고 싶은 걸 까마득히 잊어버렸다. 아껴가며 먹었지만 순식간에 먹었고, 그 후에도 오랫동안 시골의 감미하곤 이질적인 새로운 감미에 대한 감질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더욱 어처구니없는 것은 그 상자갑을 쏟아놓은 것처럼 담 쌓인 집들 중의 하나나마 우리 집이 아니라는 거였다. 현저동에서도 상상꼭대기에 있는 초가집의 문간방에 엄마는 세들어 살고 있었다. 집이 없는 사람이 남의 집에 세들어 사는 생활방식에 대해서 그 전에나는 듣도 보지도 못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하늘 같은 시부모님한테도 다소곳한 채로 또박또박 할 말을 다하던 엄마가 안집 식구라면 코흘리개까지도 두려워하고 굽신대는 것이었다.

나는 차츰 엄마 앞에서 안집 애한테 엄마가 기겁을 할 짓을 해서엄마로부터 동전을 얻어내는 방법을 알게 됐다. 서울 온 날 전차를타는 대신 얻어 먹은 국화빵의 달콤한 팥소 맛을 나는 결코 잊지 못했다. 그것은 엿이나 꿀의 단맛처럼 끈기 같은 게 가미된 강렬한 단맛이 아니라 부드럽고 순수하면서도 혀를 녹일 듯한 감미 그 자체였고 단 한 번에 나를 사로잡은 대처의 추파요, 대처의 사탕발림이었다. 1전짜리 동전은 당장에 그 달콤한 것과 바뀌었다. 국화빵이아니더라도 알사탕이나 박하사탕, 캐러멜 등 구멍가게에서 살 수있는 모든 것에도 나를 못 견디게 현혹시킨 도시의 감미가 들어 있었다.

그러나 나는 지금의 악필과도 결코 무관한 것이 아닌 속필로 제아무리 많은 글씨공부도 후딱 끝냈다. 글씨공부 중에서도 일본 가나공부는 단조롭고도 무의미했다. 오빠는 자기 공부가 바빠서인지 그부호의 음만을 가르쳐주었다. 그 부호를 연결해서 만들 수 있는 새로운 말에 대해선 한마디도 안 가르쳐주었기 때문에 재미를 붙일수가 없었다.

나는 석필보다는 단간방의 연금 상태에서 벗어난 게 신기하고 즐거웠다. 살 것 같았다. 우리가 세든 초가집은 높은 축대 위에 있었다. 대문 밖도 평탄한 골목길이 아니고 인왕산으로 통하는 오르막길에서 가지를 뻗은 좁은 막다른 길이어서 사람이 드나들 수 있는길 밖은 곧 낭떠러지였다. 그러나 전망은 좋았다. 멀리 파란상자갑같이 생긴 전차가 왕래하는 한길이 보였고, 그 너머론 높고 붉은 담장을 둘러친 어마어마하게 큰 집이 보였다. 그 큰 집엔 임금님이라도 사시는지 파수꾼이 밤이나 낮이나 지켜 서 있었고 전차의 이마빡에 뻗친 더듬이가 공중에 걸린 줄과 맞닿으면서 간간이 일어나는푸른 섬광은 어둑어둑해질 무렵이 가장 아름다웠다. 나는 그것을볼 때마다 내 속에서도 뭔가와 부딪쳐 스파크를 일으키려는 아슬아슬한 힘 같기도 하고 열기 같기도 한 걸 느끼고 전율했다. 그건 골수에 사무치는 심심함이었다.

기어코 서울에도 말뚝을 박았구나. 비록 문밖이긴 하지만..………."
비록 여섯 칸짜리 집이지만 없는 게 없었다. 안방, 마루, 건넌방,
부엌, 아랫방, 대문간 이렇게 여섯 개의 방이 공평하게 한 간씩이었다. 마당도 있었다. 마당이 네모나지 않고 삼각형인 게 흠이었다.
엄마는 이런 마당을 ‘우리 괴불마당‘ 이란 애칭으로 불렀다. 새집은셋집처럼 대문 밖이 낭떠러지가 아니고 보통 골목인 대신 직삼각형마당의 가장 변이 긴 쪽이 남의 집 뒤쪽으로 난 담인데 그 밑이 어마어마하게 높은 축대였다.

엄마가 이웃을 상종해도 괜찮을 이웃과 상것, 바닥 상것의 세 가지로 나누는 기준은 들쑥날쑥해서 일정치 않았다. 성씨나 사는 형편, 말의 직업하고 관계가 있는 것도 같고 없는 것도 같았다. 기분내키는 대로였고 또 매우 변덕스러웠다.

시골 우리 면에서도 면서기가 그걸 가지고 집집마다 돌면서 쌀을감춰뒀음 직한 데를 함부로 찌르다 어떤 볏짚더미 속에서 피와 살이 묻어나왔다는 참혹한 소문도 엄마는 가져왔다. 징용을 피해 다니던 남자가 그 속에 숨어 있다가 그런 변을 당했다는 거였다.
일본이 망해가면서 인심이 흉흉하고 내일을 모르게 불안할 무렵나는 중학생이 돼 있었다. 나는 이미 문둥이가 어린이 간을 내먹는다는 소문은 믿지 않았지만 순사의 창이 엄마의 배를 찌르는 악몽에 비하면 그게 도리어 낭만적이었다.

결국 엄마가 악착같이 최초의 말뚝을 박고 서울 살림의 기틀을 마련하던 곳을 뜨지 않으면 안 되었는데 그건 엄마의 당초의 소망대로 문안의 좋은 집을 사서 가는 이사가 아니었다. 패색 짙은 일본의마지막 성화인 소개령에 못 이겨 솔선해서 시골로 피난을 떠났다.
피난살이 반년 만에 해방이 되었는데 먼저 상경한 오빠는 북새통에 돈을 좀 벌었는지 문안의 평지에다 집을 장만해서 엄마의 소원을 풀어드렸다. 그 후 살림은 순조롭게 늘어나 좀 더 나은 집으로 이사도 여러 번 다녔다.

어머니가 아무리 그때에다 대면 지금 큰 부자됐지? 하시지만 그때하고 비교하는 마음을 버리시지 않는 한 우린 그 최초의 말뚝에매인 셈이었다. 놓여났다면 구태여 대볼리가 없었다. 어느 만큼 달라졌나 대본다는 건 한끝을 말뚝에 걸고 새끼줄을 풀다가 문득 그길이를 재보는 격이었다.

그날 오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친구들하고 영천에서 헤어져서 그 동네의 예전 길을 더듬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길이 많이 변했지만 우리가 살 때 화산학교라고 부르던 붉은 벽돌집이 예전 그대로의 모습으로 남아 있어서 눈대중 삼기에 편했다. 틀림없었다.
괴불마당 집이 있던 근처에 연립주택이 병풍처럼 들어서서 인왕산을 쳐다보지도 못하게 가리고 있었다. 나는 가슴속을 소슬바람이부는 것 같은 감상에 젖으며 그 근처를 헛되이 배회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덧없는 꿈에서 자신의 영혼을 부활시키라. 영원한 지혜로 자신을 부활시키라. 그 방법은 무엇인가? 긴장 풀기, 자제력, 올바른 식생활, 올바른 각오 그리고 두려움 없는 마음 자세가 그것이다. 패배를 인정하지 말라.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 다른 패배를 불러온다.
당신에게는 무한한 힘이 있다. 그 힘을 길러야 한다. 몸과 온갖 시련의 족쇄로부터 영혼을 부활시키는 방편이 명상이다. 무한하신 분의 발치에서 명상하라. 하느님으로 자신을 흠뻑 적시는 법을 배우라. 당신이 겪는 시련이 제법 크겠지만, 당신의 가장 큰 적은 자신이다. 당신은 불멸不滅이고 당신의 시련들은 필멸必滅이다.
시련들은 바뀔 수밖에 없지만 당신은 바뀔 수 없다. 당신이 그 영원한 힘을 풀어놓을 수 있고, 그것으로 자신의 시련을 흩어버릴 수있다.

일반적인 기도의 형식 대부분이 별 효과가 없는 까닭은 우리가하느님을 진정으로 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분은 우리 깊은 곳에있는 이기적 욕망들을 아신다. 그래서 스스로를 나타내시지 않는것이다. 감각과 생각의 마귀들이 우리 몸과 마음의 신전에서춤추는 한, 침묵의 베일 뒤에 숨어계신 하느님을 알아보기 어렵다.

또한 이것도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그 기쁨을 한번 맛보면다른 모든 욕망들이 초라하게 여겨질 것이다. 의식이 끝없이 확장되고 온갖 어려움들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온 세계가동원되어도 그 지복을 포기하도록 꾀어내지는 못할 것이다.
당신은 그 지복 안에서 인생의 모든 것을 즐길 것이다.

명상이 깊어지면 기쁘고 평화로운 상태가 되지만, 그러다가도 어느새 호흡이 거칠어지고 온갖 욕망과 어지러운 생각들이 일어난다. 수행자는 마땅히 이에 낙심하지 말고 더 깊은 명상으로 호흡과 감각을 고요하게 만드는 법을 배워야 한다.
비록 사람이 자기 육신을 극복할 수 없더라도 명상은 계속해야 한다. 그때 비로소 감각의 덜한 즐거움과 영혼의 더한 즐거움을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척추를 바로 세우고 앉아야 한다. 척추를 구부리고 어딘가에기대는 것은 당신의 몸이 포기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말하는 것과같다. 무슨 중요한 일을 하는 것처럼 그렇게 앉아야 한다.
구부정한 척추는 자기 깨달음의 적이다. 머리가 구부정한척추에 얹혀있으면 몸의 전류가 살과 뼈로 흐르는 데 바빠서 하느님께 온전히 집중할 수 없다. 몸을 단련하라. 그러면 마음이 자신의 의식을 몸에서 무한하신 이에게로 자유로이 옮겨줄 것이다.

끊임없이 명상하면서 ‘하느님의 의식‘이라는 북극성에 마음의 초점을 맞추라. 나침반이 되라. 어디에 두어도 그 자리에서 작은 바늘이 북극성을 가리킬 것이다. 당신의 의식 또한 그래야 한다. 언제 어디서나 하느님과 함께 있으라. 무한하신 이와 더불어모든 것을 즐기라. 그 의식 안에서 항상 행복할 것이다.

결코 내일을 생각하지 말라. 오늘을 잘 살피라. 내일도 잘 살피게 될 것이다. 명상을 내일까지 미루지 말라. 좋아지기를 내일까지 미루지 말라. 지금 좋아지라. 지금 고요해지라. 이것이 인생의 전환점이 될 것이다.

정서적 균형을 기르라. 불안을 극복하려면 어떤 일을 하든 괜히 흥분하여 설치거나 쓸데없는 의심으로 마음을 무겁게 하지 않겠다는 결심부터 단단히 하라. 그러고는 당장 해야 하는 일에만 생각을 집중하라. 방금 마친 일은 잊어버리고 곧장 다음 일로 넘어가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자신의 길을 가야 한다. 시련의 폭풍이 닥쳐도 ‘지복福‘이라는 항구를 향해 ‘집중’이라는 배를 저어갈 수 있고, 그래야 한다.
보통사람은 자기가 처한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집중하는 사람은 자기 인생의 꼴을 스스로 빚는다. 날마다 그날의 계획을 세우고, 하루가 저물면 그 계획이 이루어졌는지, 그래서 하느님과 자기인생목표에 더 가까워졌는지를 점검한다.
자신이 겪는 어려움의 탓을 남에게 돌려서는 안 된다. 아침마다, 친구와 적에게 똑같이 친절하겠다고, 어제보다 더 깊이 명상하겠다고, 좋은 책을 읽거나 좋은 음악을 듣겠다고 결심하라. 자신이지금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아닌지를 살펴보라. 고인 물이 되지말라. 스스로를 일깨워 계속 앞으로 나아가라.

의지력을 키우려면, 할 수 없겠다 싶은 일을 하기로 작심하고한 번에 한 가지씩 일을 완수하는 데 있는 힘을 다 하라. 잘 선택했다는 확신을 품고 실패에 좌절하지 말라. 이번 생生에서 자신을 완벽하게 성취하는 데 의지력을 활용하라. 자신의 마음에 점점 더 의존해야 한다. 그 마음이 자기 몸과 환경을 만드는 동력이기 때문이다.

직관적 감수성感受性을 키우는 데 집중해야 한다. 모든 앎의 바탕이 자기 안에 있다. 깨어난 뇌를 통하면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내가 행복해지려고 남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을 인생의 으뜸목표로 삼으라. 무언가를 아무런 사심 없이 한다고 생각하지 말라.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 나 좋자고 이 일을 하는 것이라는, 남을 행복하게 해주는 데서 내 인생의 즐거움을 찾는 것이라는 생각을 놓지 말라.

무한하신 이 (the Infinite)의 음성은 강하고 힘 있어서, 그것이당신 몸을 관장하면 온갖 잘못된 진동이 멈춘다. 그 ‘영원한힘‘이 당신의 목소리를 통해서, 당신의 침묵을 통해서, 당신의 행동을 통해서, 당신의 이성理性을 통해서 말하는 것이 느껴지면, 그때 당신은 무덤 너머로까지 계속될 무엇인가를 알게 된다.

잠들기 전, 가슴 깊은 곳에 하느님의 사랑을 모시라. 크리슈나, 그리스도, 평화, 지복의 제단에 휴식하시는 그분을 꿈에서 뵙게 될 것이다. 잠자리에 들 때는 하느님께서 평화와 기쁨의 품으로당신을 안아주신다. 그러니 잠 속으로 빠져들기 전에 그분을 평화로이 안아드리는 자신을 상상하라.

‘기쁨‘이라는 영적 보물을 붙잡으라. 다른 사람들 마음에도 기쁨을 불어넣고 길러주라. ‘근심’이나 ‘이기심‘이라는 강도에게 기쁨을 내어주지 말라. 죽음이 문을 두드리더라도, 당신의 잠재의식이 ‘모두 잃었다‘고 말하더라도 기쁨을 놓지 말라.

당신은 그동안 잠들어 나쁜 꿈을 꾸었다. 이제 하느님 안에서 깨어나라. 깨어나서 모든 곳에 실재하는 기쁨과 덕德을 온몸으로 느끼라.

이 책은 반세기도 전에 나온 것이지만, 벌써(?) 사람의 머리보다 가슴을 말하고 있다. 머리보다 가슴이 먼저고 더 정직하다는 건 우리 모두경험으로 알고 있다. 감히 예견하거니와 앞으로는 머리 잘 돌아가는사람이 아니라 가슴을 움직이는 사람이 사회의 지도자가 될 것이다. 사회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옛 어른들처럼 가슴으로 사는 세상을 만들 필요가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다희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팔에 가만히 자기 손을 올려놓았다. 그런 다희를 보며, 그녀는 왜 자신이 팔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때의 일들을 떠올리곤 하는지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다희와 주고받던 이야기들 속에서만 제 모습을 드러내던 마음이있었으니까. 아무리 누추한 마음이라 하더라도 서로를 마주볼 때면 더는 누추한 채로만 남지 않았으니까. 그때, 둘의 이야기들은서로를 비췄다. 다희에게도 그 시간이 조금이나마 빛이 되어주었기를 그녀는 잠잠히 바랐다.

나도 네 살 무렵에 헤어진 엄마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어. 언니가 해주는 말을 통해 엄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우리가 엄마와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추측할 뿐이었지. 어린 시절 언니는 엄마와다시 만날 날을 희망하고 있었어. 그 기대가 꺾이고 꺾여 더는 꺾일 게 남지 않게 되자 언니는 엄마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이라는 듯이 말하곤 했어. 엄마에 대해서라면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면서. 그건 내가 처음으로 알아차린 다른 사람의 거짓말이었지. 언니의 그런 거짓말을 들을 때면 마음이 아팠지만 한편으로는 엄마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는 언니가, 나보다 삼 년을 더 엄마와 보낸 언니가 솔직히 부럽기도 했던 것 같아.

언니는 언제부터 그를 만났을까. 그는 늘 우리집 골목 앞큰길에서 언니를 내려줬어. 검은색 세단이었지. 평범한 차였지만 번호판에 적힌 숫자가 단순해서 알아보는 게 어렵지 않았어. 어느 날인도를 걷는데 누군가 차에서 내리는 거야. 고개를 돌리니까 조수석 문을 열고 나오는 언니와 함께 운전석에 앉아 언니를 올려다보는 남자의 얼굴이 보였어. 내가 처음 그를 본 순간이었지.
나와 마주친 언니는 안절부절못했어. 묻지도 않았는데 하굣길에 우연히 만난 교련 선생님이 데려다준 거라고 말하더라. 집으로가는 내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땅만 보면서 걸었어.

나는 주머니에서 핫팩 두 개를 꺼내 언니에게 건넸어. 그리고곧바로 집으로 뛰어갔지. 조금이라도 더 함께 있다가는 결국 언니에게 상처를 줄 것 같아서. 그날 이후에도 언니는 내게 그 말을 자주 했어. 너희 형부는 좋은 사람이야, 본성은 착한 사람이야, 나한테 잘해줘. 그럴 때면 나는 폭발할 것 같은 마음을 억누른 채로 고개를 끄덕였지만 차마 언니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볼 수는 없었어.

"니 동생 왜 저렇게 살쪘는데?"
나는 못 들은 척 룸을 빠져나왔어. 스무 살의 나는 사람들의 본격적인 악의에 대해 잘 몰랐지. 언니의 시어머니는 뒤에서 계속나에 대해 말을 하는 것 같았는데, 빠르게 걸어나온 덕에 다행히그 뒤의 말은 듣지 못했어.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언니가 나를따라오지 않을까 기대했던 것 같아. 마음이 상한 건 아닌지 걱정된다. 그런 말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하지만 홀을 나와서 뒤돌아봤을 때 언니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시어머니와이야기하고 있더라. 마치 내가 보이지 않는 것처럼.

그는 대답하지 않고 자리를 떠났어. 나는 어른이었고 더는 보호자가 필요한 나이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어. 내 편이 되어줄 사람도 없었지. 그도 그 사실을알고 내게 손을 댄 거겠지. 아빠에게 말한다고 해도 아빠는 나보고 참으라고 할 게 분명했어. 언니에게 말한다면 언니는 그가 나를 때린 이유를 물을 테고, 결국은 그가 나를 때릴 수밖에 없었다고 정당화하리라는 것도 알았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더이상언니를 믿지 않는 나를 발견했어.

사람들은 그와 그녀가 전혀 다른 성격을 지녔다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그도 그녀도 알고 있었다. 그들은 같은 천성을 공유하고있다는 것을. 그 또한 자신의 슬픔을 너무 쉽게 알아보았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가 언제나 자신에게 져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 자신이 아무리 잔인하게 대해도 참고 견뎌줄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그를 그토록 애틋하게 여겼으면서도 동시에 그렇게 대했다. 이제와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이제는 어떤 식으로도 지난 일을 만회할 수 없으니까.

몇 년 후 마침내 그녀가 첫 단막극으로 입봉했을 때, 그는 ‘작가이민주‘라고 쓰인 드라마 오프닝 장면을 캡처해서 한지 가게에 표구해 걸어뒀다. 좁은 빈 벽에 있던 시계를 떼고 그 자리에 액자를걸어둔 거였다. 왜 그런 걸 걸어뒀냐고, 당장 치우라고 타박하면서도 그녀는 그의 마음에 눈물이 났다. 그는 어떤 것도 자랑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싫어했고, 과시와도 거리가멀었다. 그런 그가 남들에게 그녀를 자랑하고 있었다. 내 동생이이토록 멋진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어 어쩔 줄 몰라했다. 그녀가무슨 대단한 작가라도 된 것처럼, 특별한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그녀가 여덟 살이었던 그때, 그는 스물셋이었다. 갓 제대해서복학했다가 어머니의 투병으로 다시 휴학했다. 그와 이모가 돌아가며 어머니를 간병했다는 걸 그녀는 나이가 들어서 그에게 들었다. 아버지가 누군가와 전화하는 소리, 가끔 집에 들어오는 그가깊은 잠을 자는 모습 ・・・・・・ 막연함은 차츰 분명함으로 변해갔다.
하루하루 집안에 쌓이는 비통함의 공기는 그녀가 숨을 들이마시고 내쉴 때마다 그녀의 몸속을 드나들며 그녀를 일깨웠다.

시원한 바람이 소리와 그녀에게 불어왔다. 연한 나뭇잎이 바람에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나뭇가지가 흔들릴 때마다 봄볕이 눈을 따갑게 했다. 그녀도 소리를 따라 무릎을 세우고 앉아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없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바라지않아도 그 흔적은 사라지지 않을 거야. 그녀는 속으로 말했다. 푸른 무청이 가득한 텃밭을 그리면서 그곳으로 찾아올 햇볕과 비와바람과 작은 벌레들을 기다리면서.

이모는 어린 나를 이곳저곳에 데리고 다녔다. 그중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는 순간이 있다. 엄마와 이모의 사촌언니 환갑잔칫날이었다. 노래방 기계가 설치된 넓은 연회장에서 한복음입은 사회자가 노래를 부르고 손님들이 다 같이 춤을 줬다. 손님들은 술에 취해 소리지르듯이 말했다. 시끄러운 음악소리, 번스러운 분위기.… 나는 이모가 그런 상황을 가장 싫어한다는 걸알았다.

이모는 왜 그렇게 싫은 게 많아? 왜 다 못마땅하게 여기는 거야? 왜 그렇게 불평을 해? 좋은 면을 보는 게 그렇게 어려워? 이모가 감정적으로 인색한 사람이란 거 알아? 때로는 마음속으로,
때로는 이모 앞에서 소리 내어 그렇게 말했으면서도 때때로 나는내 안에서 내가 그토록 견디기 힘들어했던 이모의 모습을 본다.

어린 시절 나를 둘러싼 세계는 늘 모호했다. 어른들은 내게 뭔가를 감추고 있었고 나는 내가 알아서는 안 되는 일이 무엇인지궁금했다. 나는 어른들의 대화에서 분명히 이중적인 의미를 지닌말이나 감춰진 감정의 진동을 느끼면서도 그것의 정확한 의미를알 수가 없었다.

요즈음 나는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종종 놀라곤 한다. 사십 년 동안 자주 사용한 얼굴 근육은 나를 이모와 비슷한 종류의사람으로 보이게 한다. 얼굴이 말해주는 그대로, 나는 완고한 어른이 되었다.

나는 그렇게 답하고 자리를 떴다. 나처럼 살고 싶지 않다고? 멋대로 나를 판단했다고 분노하면서도 나는 그애의 말에 마음을 다쳤다. 그 말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엄마는 내가 의젓하게 내 길을 찾아가서 기쁘다고 했다. 내가반항 한번 하지 않고 유순하게 사춘기를 넘겼다면서 다시없을 효녀라고 했다. 그런 인정을 받으면 기쁠 거라고 상상했던 적도 있었지만 정작 그 말을 들었을 때는 그저 공허하기만 했다.

이모와 만나지 않고 지냈던 그 시절에 나는 자주 이모를 떠올렸다. 처음으로 비행기를 조종한 날, 높은 고도의 비행에 성공한 날,
근무지 부대로 이사를 간 날, 깊은 잠에서 문득 깨어나는 순간들마다 나는 이모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봤다. ‘이모, 이 정도면 만족해?" 세수한 뒤 수건으로 얼굴의 물기를 닦고 거울을 보면 그곳에이모와 닮은 내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모는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내가 꼭 그 자리에 존재하지않는 것처럼,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묵은 상처들이 고개를 들었다. 그런 순간의 감정을 나는 잊고 있었다. 좋은 것만 기억하려고하면서, 내가 이모와 비슷한 환경에 놓였다면 이모보다 더 나은인간이 되지 못했을 거라고 이모를 이해하려고 하면서. 그것이 이모에 대한 나의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모는 가장 기본적인 수준의 공감조차도 하지 않으려 했다. 최소한의 노력조차 하지않았다. 나는 다시 냉정한 이모 앞에 선 일곱 살짜리 아이가 된 것같았다. 분노인지 슬픔인지 알 수 없는 뜨거운 감정이 목을 타고올라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어려운 시련이나 걱정근심에 사로잡혔거든 잠을 자보라. 잠들었다가 깨어나면 걱정하는 마음이 조금 누그러져 있을 것이다.
스스로에게 일러주라. 지금 당장 내가 죽어도 지구는 제 궤도를 돌고 회사는 여전히 돌아간다고. 그러니 걱정할 게 무엇인가? 매사를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죽음이 와서 비웃으며 물질적인 삶과 그 임무들이 덧없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줄 것이다.

걱정과 근심을 놓아버리라. 아침과 밤에 절대 고요 속으로 들어가라. 특히 걱정거리가 생겼을 때, 일 분만이라도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있어보라. 그렇게 몇 분 더 있으라. 그러고 나서 과거에 경험한 행복했던 순간들을 상상해보라. 머릿속에서 근심걱정이 모두 사라질 때까지 계속 행복했던 경험을 떠올려보라.

하루에 세 번 근심걱정을 털어버리라. 아침 7시, 자신에게 들려주라. "7시에서 8시까지 간밤의 근심걱정을 모두 털어버리자.
아무리 어려운 일이 닥쳐도 걱정은 사절이다. 지금 나는 근심 단식중이다."
오후 1시, 다시 말하라. "나는 괜찮다. 걱정하지 않겠다."

밤마다 잠자리에 들기 전, 스스로에게 말해주라. "나는 균형잡힌 보좌에 앉아있는 ‘평화의 왕자(Prince of Peace)‘다."

인생에서 참으로 필요한 것이 정신력이고 영적인 건강임을 모든 사람이 기억해야 한다. 목표는 최대한의 평화, 전천후로 발휘할수 있는 정신력, 그리고 사는 데 필요한 만큼의 물질적 안정이다.

함께 어울릴 사람들을 주의 깊게 선택하라. 자신보다 침착하고 강하고 슬기롭고 심지 깊은 사람들과 사귀라. 범죄자를 더 큰범죄자 무리에 가두어두면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가 교도소를 떠날 때 교도관이 물을 것이다. "언제 다시 올래?" 신경질적인사람이 신경질적인 사람들 무리에 속해있으면 더 나아질 수가 없다. 언제나 평온한 사람들을 선택하라.

주의가 산만하고 집중력이 부족한 사람은 간단한 버릇 하나들이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하지만 집중력 있고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는 사람은 조금만 노력해도 좋은 버릇을 들일 수 있다.
그러니, 자신의 발전을 가로막는 정신적·육체적·영적 버릇이 있거든 당장 떨쳐버리라. 그것을 그냥 놔두지 말라.

기억은 아무렇게나 하는 것이 아니다. 훈련되어야 한다. 자신을 위로 끌어올릴 고상한 경험들을 떠올리는 데만 써야 한다. 많은경험에서 추려낸 좋은 것들만 기억보관소에 저장되어야 한다. 끈적거리는 더러운 생각들이 기억보관소에 들어있으면 예기치 않은순간에 같은 생각들이 말과 행동으로 튀어나올 것이다. 속에 선한것들만 있으면 선한 것들만 밖으로 나오게 되어 있다. 자기 마음의문을 조심히 지키라.

마음이 튼튼해지면 몸의 고통도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무슨일이 일어나더라도 마음은 절대 자유로워야 한다.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에 진실과 더불어 깨친 영혼의 힘이 담겨 있어야 한다. 확신과 믿음과 직관에서 나오는 모든 말은 강하게진동하는 폭탄 같아서 온갖 곤경의 바윗돌을 깨부수고 바라던화를 가져다준다. 비록 참말이라도 불쾌한 말은 입에 담지 말라.

강한 의지로 끈기 있게 외는 주문의 힘은 잠재의식에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 기적 같은 정신의 힘이 저장되어 있는 초超의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언제나 지금 당장 필요한 것에만 마음을 쓰고, 자신의 모든 능력을 동원하고, 유익한 정보들로 자신을 가득 채우면 인생을 더욱값진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아무쪼록 하느님이 주신 능력, 자기 존재 가장 깊은 데서 나오는 무한능력을 남김없이 모두 써야 한다.

희망을 버리는 것은 본인의 신성한 정체를 짐승의 탈 뒤에 감추는 것과 같다. 그러지 말라. 그러지 말고 위없이 높고 더없이 선한 것을 희망하라. 하느님의 자녀인 당신에게 그보다 좋은 것은 없기 때문이다. 희망을 지키라. 언제고 자기 안에서 잊었던 하느님의형상을 다시 기억해내리라는 것을 직관하는 데서 희망이 생겨난다.

기억하라. 모든 행복과 번영으로 가는, 건강과 재물과 평화와지혜를 얻는 가장 확실한 길은 명상을 통해 응답받을 때까지 쉬지않고 자신의 메시지를 고요한 마음의 송신기로 하느님께 전송하는 것이다.

침묵하는 기술(art)을 익히라. 근심걱정, 질병, 죽음의 호랑이가 당신을 쫓아 달려오고 있다. 당신이 안전하게 피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는 침묵 속에 있다.
더 많이 침묵할수록 더 많이 행복할 것이다. 깊이 명상하는 사람은 놀라운 침묵을 느끼는데, 그것은 사람들에 에워싸여 있으면서도 유지되는 침묵이다. 명상에서 배운 것을 말과 행동으로 실습하면서 아무도 자신의 고요를 흐트러뜨리지 못하게 하라. 자신의평화를 꼭 부여잡고 있으라.

항아리의 출렁이는 물 위에 비친 달은 일그러져 보이지만 달자체는 결코 일그러지지 않는다. 일그러진 달의 모습은 출렁이는물결의 작품이다. 항아리의 물을 고요하게 하라. 일그러지지 않은온전한 달을 보게 될 것이다.

온갖 복잡한 생각들의 신전神殿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지기 전에는 하느님이 당신에게 오시지 않을 것이다. 당신 마음에서 세속적인 생각들이 전부 지워졌음을 확인하기까지 하느님은 스스로를당신에게 넘겨주시지 않는다. 그분은 쉴 새 없는 돌풍 앞에서 버티지 못하는 촛불과 같다. 쉴 새 없는 온갖 생각에서 자유로워졌을때 비로소 그분이 당신에게서 타오르실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사방으로 막히고 제한된 골방에서 나오라. 생기 넘치는 생각들의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라. 낙담, 불만, 절망의 독기어린생각들을 토해내라. 질병, 노화老化, 죽음 따위 인간의 한계를 자신의 마음에 암시하지 말라. 그 대신 자신에게 끊임없이 일러주라.
"나는 무한無限(the Infinite)이다. 잠시 몸을 입은 무한이 나다."
자기 신뢰의 오솔길을 오래 걸으라. 판단, 성찰, 창의를 연습하라. 자신과 다른 사람들 안에서 이루어지는 창조적 사유거침없이 즐기라.

스스로 알기만 한다면, 그대들 모두가 신神(god)이다. 당신은마땅히 자기 안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자기 의식의 물결 밑에 하느님의 바다가 있다. 당신의 신성한 태생권리 (Divine Birth)를 주장하라. 깨어나라. 그러면 하느님의 영광을 보게 되리라.

실패가 거듭되더라도 낙심하지 말라. 그것들을 당신의 육체적 정신적 성숙에 독이 되게 하지 말고 자극제로 삼으라. 실패했을 때야말로 성공의 씨를 뿌리기에 가장 좋은 계절이다. 실패의 원인을 제거하고 이루고자 하는 일에 더욱 박차를 가하라. 상황이 당신을 몽둥이로 치더라도 고개 숙이지 말라.

자신에게 어떤 바람직하지 않은 버릇이 있더라도 낙심하지말라. 선한 의지력과 올바른 명상을 버릇으로 삼아 그것들을 정복할 수 있다. 지금이 그때다. 그릇된 행동의 마수에서 해방되어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빚어줄 생각과 행동을 새로운 버릇으로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비극을 낳는 물질적 차원에 머무르는 경향이 반복된다면 일단 자신을 유혹하는 환경에서 멀리 떨어지라. 그리고 안 좋은 생각들이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법을 배우라. 선하고 바른 환경에 둘러싸여 자신에게 이롭고 건강한 생각들로 내면을 채우라.

완전한 자유와 지속적인 성공으로 가는 유일한 길은 제대로명상하는 것이다. 당신은 의식적으로 하느님과 연결되어야 한다.
그분을 발견하게 되면, 자기 자신과 다른 모든 한계들을 정복하고통제하게 될 것이다.

끈질긴 노력만이 과거 카르마의 악한 종자들을 불태워버릴수 있다. 선한 카르마로 이루어지는 평형平衡이 이삭처럼 익어서고개를 숙이려 할 때 그 사이를 참지 못하고 희망을 포기하는, 그래서 받을 수 있는 보상을 놓치는 사람들이 많다.

누구도 버릇의 노예로 태어나지 않는다. 끊임없이 반복되는행동으로 스스로 버릇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처음 마시는 술잔이사람을 술주정뱅이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잘못된 행동을 생각 없이 되풀이하다 보면 그 행동은 어느새 버릇이 되어 인생을 지배하게 된다. 반복의 강한 힘이 이성의 나약한 힘을 눌러버리는 것이다.

잠재의식에서 나오는 마음은 앵무새 같아서 우리가 하는 말을 그대로 반복한다. 그 마음에 피곤, 불만, 안 좋은 생각들을 들려주지 말고 기쁨, 풍성, 평화를 들려주라. 그러면 그것들이 삶에서표출될 것이다.
일하되 기꺼이, 그리고 끈질기게 하라. 자기 안에서 쉼 없이흐르는 영원한 에너지를 느끼라. 싫증이나 피곤한 내색은 절대 금물이다. ‘고단하다‘는 말을 아예 입에 담지 말라.

자신이 완전히 부서지고 일그러져 남은 힘이 없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당신에겐 필요한 힘이 다 있다. 다만그것을 쓰지 않을 뿐이다. 생각의 힘보다 큰 힘은 없다. 자신을 세속에 묶어놓는 작은 버릇들로부터 되살아나라. 영원한 하느님의웃음, 아무도 당신에게서 앗아갈 수 없는 백만 불짜리 웃음을 되살리라.

당신의 실존은 그분의 꿈이다. 단지 당신은 스스로 나약하다는 생각으로 자신에게 최면을 걸고 있다. 자신의 나약함에 대한 책임을 주님이 지시게 하면 스스로 움켜잡고 있는 거짓 망상을 부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면 자기 안에 있는 완전한 하느님의형상을 인식하기 쉬워질 것이다.
당신이 노력하는 한限, 하느님은 결코! 당신을 넘어지게 놔두지 않으신다.

툭하면 화를 내거나 자기연민(self-pity)에 빠지는 일이 없어야한다. 그것은 우리의 신경과민을 조장할 뿐이다. 무언가를 불평할수도 있고, 그 사실을 남이 모를 수도 있다. 스스로 내면을 살펴서신경과민의 원인들을 제거하는 것이 최선이다.

아무도, 자기 자신까지도, 원망하지 말라. 비난과 책망은 이미저지른 일을 지워주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외부사정에 스스로를 의탁하게 만든다.

열등감은 우월감 못지않게 나쁘다. 본디 당신은 하느님의 자식이다. 그러니 당신이 누구보다 못하다거나 낫다는 생각은 터무니없는 거짓이다. 열등감도 우월감도 영혼의 진화를 더디게 할 뿐이다.

겁내지 않음으로 두려움을 없애라. 설령 고통의 바다에서 출렁이고 있거나, 죽음이 방문을 두드린다고 해도 당신은 영원히 안전한 하느님의 성벽 안에서 무사하다는 사실을 믿으라 하느님의보호하시는 빛이 ‘최후의 심판‘이라는 위협적인 구름을 흩어버리고, 시련의 파도를 잠잠하게 하고, 견고한 성 안에 있든 사방으로고난의 총탄이 날아드는 일상의 전장戰場에 있든 어디서나 당신을안전하게 지켜줄 것이다.

정신이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잠재의식에도 두려워하는 버릇이 생긴다. 그러면 일상에서 기분 나쁜 일이 생길 때마다 잠재의식의 두려워하는 버릇이 두려워하는 대상을 끌어오고, 그에 맞서 싸우려는 의식적인 마음을 마비시킬 것이다.

마음을 용기에 집중하고 내면에 있는 절대 평화로 눈길을 돌려 두려움의 뿌리를 뽑으라. 질병이나 실패 따위 겁내지 않는 건강하고 든든한 사람들과 사귀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