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심은 짧게 숨을 토해냈다. 그 끝에 가벼운 콧바람이새어 나왔지만 불쾌하지는 않았다. 아이들에겐 지겨울 정도로 꿋꿋한 구석이 있었다. 바로 그 점이 아이들이 사랑스럽기도 지긋지긋하기도 한 이유였다. 준용에게 아직 그꿋꿋함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반가웠다. 준용은마음이 돈으로 환산될 수 있다는 걸 몰랐다. 한때의 혜심도 그랬을 것이다.
나는 내 모든 게 표백되길 바랐다. 그리고 태양 아래서서 수영장 표면의 물이 반사해내는 빛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내 안의 모든 구질구질한 것들, 부상을 입고 저버린 빛바랜 수영선수의 꿈이나 답 없이 쌓인 대출금, 일주일에한번은 돌아가야 하는 곰팡이 슨 옥탑방, 떠올리고 싶지않은 미래조차 깨끗하고 뽀송뽀송하게, 하얗게 날아가버리곤 했다.
당시 오시코시는 오노 경찰서 소속이 아니었지만, 현 내에서는 큰 사건이었기에 기억에 남아 있었다. 변호인 측은 심신상실을 이유로 무죄를 주장했으니 검찰 측에선 유죄가 나온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그 피해자가 바로 가마타리 다이치의 아내였을 줄이야."그 사건의 충격은 가마타리 목사님의 신앙을 뒤흔들었습니다. 아내를 잃은 유족으로서의 감정과 기독교인으로서의신앙 사이에서 깊이 괴로워하게 된 거죠."사노의 작은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게 보였다."성경은 ‘너희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칩니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라고도 하죠. 가마타리 목사님은 교회의 목사로서뿐 아니라,아내를 살해당한 남편으로서도 탄식 속에서 시험에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눈은 새벽부터 다시 내린다는 예보였다. 그 주민은 밤사이조금이라도 눈을 치워두려고 한 시간쯤 밖에 있었는데, 그사이 후타쓰모리 가의 헛간 쪽에서 따각따각 나무를 쪼개는듯한 소리가 났다. 무슨 일인가 싶어 살짝 집 뒤를 들여다보니, 유야가 밭에서 쓰는 괭이를 들고 헛간을 부수고 있었다.겁이 난 주민은 아무 말도 못하고 자기 집으로 달아났다고한다.
결심을 굳히고 목소리를 내며 현관 미닫이를 열었다. 문은 도중에 두 번이나 걸리며 큰 소리를 냈다. 현관 바로 앞엔 부엌과 하나로 이어진 마루가 있었고, 열린 맹장지문 너머로 다다미방이 보였다. 그곳에 한 여자가 이불에 누워 있었다. 머리말의 라디오에서 음악이 잔잔히 흘러나오고 있었다. 조키치는 놀라서 "앗" 하고 소리를 냈다. 문을 닫고 달아나려 했지만 걸려서 닫히지 않았다. 조키치는 문짝을 붙잡은채 얼어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