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와 같이 해외에서 살다가 귀환법에 의해 이스라엘로이주한 유대인들과는 달리 단순히 취업 목적으로 이주해 오는 외국인들이 있다. 이스라엘은 갈수록 악화되는 노동력 부족을 예상하고1990년대에 들어와서는 타지역 외국인 이주 노동자들을 받아들이기시작했다.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저임금으로 부족한 노동력을 채울수 있고, 외국인 이주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취업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상호 간에 이익이다. 물론 이들은 취업 허가를 받고 이스라엘에 일정 기간 체류할 수 있을 뿐 영주권이나 국적을 취득하는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들은 동시에 율법의 가르침과는 다른 삶을 즐기기도한다. 필요하다면 샤밧에도 쉬지 않고 일한다. 유월절 세데르 만찬에는 누룩이 들어가지 않은 맛 없고 딱딱한 빵 대신에 크루아상 같은맛있는 빵을 미리 사두고 먹는다. ‘코셔‘ 인증을 받은 음식인지 여부를 따지지 않고 카슈(음식 계율)이 금지하는 새우나 오징어 등 해산물을 즐겨 먹는다. 주례가 없거나 비종교적 스타일의 결혼식을 올리는 경우도 많다. 이들에게 있어서 유대교는 종교라기보다는 이미 그들의 문화와 풍습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알 나크바‘와 함께 6월 5일이면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추모와 시위를 벌이는, ‘알 나크샤‘, 즉 나크사(좌절)의 날도 있다. 나크바의 날이 1948년 이스라엘의 건국에 따른 재앙의 날이라면 나크사의 날은1967년 제3차 중동전쟁 (6일 전쟁)으로 동예루살렘을 포함한 서안지구와 가자지구가 이스라엘의 점령하에 들어가면서 그곳에서 쫓겨난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좌절을 상징하고 추모하는 날이다.
부르주아 국가가 출발한 시기는 동시에 그다음의 혁명인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향한 이론형성과 모색이 시작된 시기였다. 마르크스는 독일에서 부르주아 혁명을 성공시키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해골똘히 생각했다. 그는 그 열쇠를 부르주아지가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 속에서 찾아냈다. 프롤레타리아, 즉 ‘제4계급‘이 지도하는 부르주아 혁명이라는 것이 후진국들 혁명의 목표가 됐다.
무사평온한 시기에 법치주의 체제만 갖추면 되는 국가라면 이런 헌법이 어떤 기능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조건은당시에는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현실의 정치는 규칙대로 절차를 밟아서 작동될 수 없었다. 고심해서 만든 정치제도는 오히려 비합법 수단인 쿠데타를 필연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쿠데타만이 현실에정치적 보장을 제공하는 유일한 수단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