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바세비치는 베토벤의 후기 피아노 소나타는 안에서밖으로 발산하고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밖에서안으로 탐색하고 발굴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려 한 것이다.따라서 이런 곡을 연주하는 경험은 베토벤의 초기나 중기피아노 소나타를 포함한 다른 곡들을 연주할 때와 매우 다르다고도 했다.
당신이라는 존재는 당신이 창조한 이 세계를 떠날 수없다. 이 세계는 바로 당신을 둘러싸고 당신과 관계를 맺은모든 ‘사물‘의 총합이다. 이것이 당신이고, 이것이 삶이다.이것이야말로 산다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세계를창조하는 것이 사람으로서 가진 가장 큰 힘이고 가장 큰 즐거움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이 점을 알지 못한다. 우리는 흔히 이미 존재하는 어떤 근본적인 것이 우리 몸속에 숨겨져 있고 그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착각하곤 한다.
조각상 앞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이 주체가 되어 보고감상한다고 생각한다. 조각상을 볼 때 우리는 이 조각상의객관적인 사실을 받아들인다. 이 조각상은 머리가 없고, 팔다리가 없다. 그러나 이 조각상은 유구한 역사가 있다. 남아 있는 몸으로 미루어 보아 이 조각상은 분명히 기술이 정교한 숙련공의 손에서 탄생했을 것이다. 그런 다음 우리는생각하고 비평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조각상에 만약 머리와 사지가 전부 남아 있었다면 분명히 더욱 아름다웠을 거라고.
또 다른 어떤 사람들은 불가사의한 속도로 얼굴을 바꾼다. 계속해서 얼굴을 바꾸면서 계속해서 망가뜨린다. 처음에 그들은 자기에게 얼굴이 잔뜩 있어 무한히 공급할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마흔 살도 채 되기 전에 마지막 얼굴을 써 버렸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렇다, 여기엔 약간의슬픔이 어려 있고, 비극성을 띤다.
오영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나는 내심 오영이 항변해주길 바랐다. 무슨 말이라도 당당히 해주었으면 했다. 하지만 오영은 고개를 숙인 채 휴대폰만 볼 뿐이었다. 총대 옆에 앉은 학생도, 프리랜서 둘도 마찬가지였다. 스크린 속에서 상을 받은 누군가가 이야기하는 소리가 웅얼웅얼 들려왔다. 불편한 고요가 흐르는 와중에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아무도 부정하지 않는 걸까. 왜 모두가 제일 아닌 양 좌시하는 걸까. 사랑하면.... 사랑하면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