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은 연세대학교에 특강을 하러 갔다가 비슷한이야기를 꺼낸 걱이 있다. 나를 초청한, 동유럽 문학을 전공했다는 학자가 같은 이유로 "디스토피아 소설은 쓰기 쉽지만 유토피아 소설은 쓰기 어렵다"고 했다. 과연 그렇다. 사회 체계를 이루는 구성 요소 중하나가 망가지는 바람에 암울한 세계로 변하는 모습을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전기를 갑자기 수 없거나, 식량이 부족해지거나, 혹은 음악이 완전히 금지된다거나, 뭐든 하나만 철저히 파괴하면 된다. 암울한사회상을 보여 줄 방법을 구상하는 일은 간단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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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이렇게 여행을 다닐 때면 혼자 오래 걷기 때문에 자신에 대한 생각이 많아진다.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나, 다른 중요한 일이 있는데 놓치고 있지는 않나, 마음을 바꾸어 먹고 몇 년 후에는 다른 걸 해 보면어떨까, 나는 왜 매번 다이어트에 실패할까. 낯선 고장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이 열심히 살아가는곳을 걸으며 잡다한 생각을 이어가다 보면, 사실 답이명쾌하게 나올 때는 거의 없지만 마음은 좀 가라앉는느낌이 든다. 그러다 뭔가를 마주하면 그게 더 멋져보인다. 어쩌다 오게 되었는지 알 수도 없는 동네에서어둑해질 무렵까지 걸었는데 그때 들판에 서 있는 부서진 돌짐승 조각상 뒤로 노을지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한참을 보고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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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아시나요? 태풍이 불면 온 사위가깜깜할 것 같지만 태풍 가운데 들어가면 바람이 잠잠하고 무엇보다 맑은 하늘을 볼 수 있습니다. 나는 태풍이 많은 오키나와에 와서야 그걸 알았습니다. 눈물도 그런 것 같아요. 눈물이 흐르면 처음엔 앞이 흐리지만 나중에 오히려 시야가 맑아지죠. 평생 나는 어떤 곳에 비켜서서 울음을 삼키기만 했다.
는 걸 알았습니다. 그렇게 또렷하고 깨끗한 시야에 그제야 울음을 간신히 참고 있는 영소의 얼굴이 들어왔습니다. 그 얼굴과 나란히, 혜자와 미자가, 그리고 영자가 그곳에 있었습니다. 나는 아마도 무슨 말인가를 더 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즈음엔 나도 부디 평안에 이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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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 서로의 인생을 교차했을 거라고요. 교차하면, 언젠가는 마주치게 되는 거니까 혜숙이와 영성이도 어느 한 지점에서는 같아졌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렇게 나온 성당에서 영성이는 아이들에게 시나 소설을 읽어주었어요. 어느 날엔가
"이 여자 시인은 공장에 다니면서 시를 썼대"하며 읽어준 시는 나처럼 문학은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도 참 좋았어요. 그런데, "이 시대의 아벨은 누구예요?" 한 아이가 신부님께 그 시에 나온 이름에 대해 물었어요. 미선은 다음 날 영성에게 선의가 항상 선의로 남을 수 있는 건 아니라고 말했어요. 잠시입술을 말던 미선은 이런 말도 덧붙였습니다. 좋은 환경에 있는 사람이 갖는 정의가 약한 사람들에게는 가끔 독이 될 수도 있다고요. 약한 사람들은 보호받기가 더 어렵기 때문이라고요. 영성이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미선의 얼굴에 드리운 그늘을 본 것 같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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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북해로 가는 기차 안에서 결국 그의 이야기를 하지않았다. 내가 구태여 보태지 않아도 세상에는 아름다움에 관한 이야기가 끝이 없었으므로, 한 친구는 이제 막 자기가 아는 아름다움에 관해 말하기 시작했다. 원시의 생활을 여전히유지하고 있는 한 모계 부족의 이야기였다. 그곳의 여자들은중요한 꿈을 꾼 날 생강 우린 물로 목욕을 하고 꽃 대신 열매로 몸을 치장한다. 남자들은 아름다워지기 위해 여자들에게서 열매를 얻어 그 위에 산호 가루를 뿌려 먹는다. 그러면 그들은 고깃배 위에서 잠들어도 길을 잃지 않고 집으로 돌아온다. 우리는 물론 그 이야기가 아름답다고 모두 동의했다. 달리는 기차의 창밖에는 바다 위로 펄펄 눈이 내리고 있었다.
하늘과 바다가 온통 하얗고 아름다웠으며 도대체 저기에 아름다움 이외에 무엇이 존재하는지 알 수 없었다. 누군가 다시 입을 열고 아름다움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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