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서 기쁨을 되찾는다는 의미는 ‘저쪽’ 너머에 있는 아름다운 존재를 우리 곁으로 불러들여 시간과 우리 사이의 관계를 찬찬히 살피는 것이다. 아이오와주립대학 지질학 교수 신지아 체르바토가 상기시켰듯, 시계로 측정한 시간 개념은 중세가 되어서야생겼다. 이 개념은 수학적 단위를 현실처럼 느껴지도록 우리 삶을완전히 바꿔놓았다. 많은 이들이 신비로움을 곁에 두지 못하게 되었다.

미국삼나무 한 그루는 쓰러진 통나무에 붙어사는 아주 조그만 묘목에서 무려 5톤이 넘는 큰 나무로 1000년이 넘게 자라며 하늘로 뻗는다. 강들은 수천 년에 걸쳐 바다로 향하는 새로운 길을뚫는다. 산은 솟아오르고 동시에 무너지며 수백만 년 동안 아주 조금씩 자라나고 줄어든다.

우주로 눈을 돌리면, 광대한 시간이 그 입을 벌리고 있다. 사실 우리가 감탄하며 올려다보는 밤하늘 별빛은 그 별이 내는 빛이우리 눈에 닿기까지 얼마나 걸리느냐에 따라 몇십 년 혹은 몇 세기 전의 광경일 수도 있다. 자연에 오래 머물다 보면 무언가가 드러내는 근본적인 속도에 다시 익숙해진다.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을 잠시 옆으로 밀어두고 ‘물리적 시간Physical Time‘의 리듬에 적응하게 된다.

제임스 허턴은 지구의 모습을 끊임없는 탄생의 순환 고리로그리며, "시작된 흔적도, 끝이 날 전망도 보이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지금 우리는 그의 말이 매우 정확했다는 사실을 안다. 하지만 그가 살았던 과거에도, 그 이후에도 꽤 오랫동안 허턴의 생각은매우 충격적이었다.
누군가는 허턴의 이론이 터무니없다며 그를 이단자 혹은 무신론자로 몰았다. 반면 다른 사람에게 그의 주장은 큰 기쁨으로 다가왔다. 같은 시기를 살았던 수학자 존 플레이페어는 시간의 심연을 들여다볼 기회를 얻어 ‘아찔할 정도로 기뻤다고 말하기도 했다. 허턴의 엄청난 발견 덕분에 우리는 만물의 창조라는 광활함의가장자리에 서서 상상이라도 해볼 수 있게 되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비가 내리고 햇살이 다시 비치는 이끝없는 실타래를 다시 한번 열린 마음으로 돌아보게 될 것이다. 새들이 새벽빛에 몸을 담그며 나뭇가지에 앉아 노래하는 무수한 아침을, 바다를 밀어내고 끌어당기며 끝없이 부풀고 작아졌던 달의40억 년을 생각할 것이다.

융은 종교 의식 중 사람들이 이따금 신비로움에 깊게 빠지는경험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 신비로운 경험은대개 사람들의 정신 건강에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신비로움속으로 들어가는 시간이 무의식을 휘저어 놓는다고, 융은 말했다.
신비로움은 아주 강력한 치유의 힘을 가진다.

그러나 세상을 향한 배려와 다정함의 본성을 확실하게 깨울방법, 세상에 대해 더욱 강력하게 인식하면서 깊이 연결될 방법,
함께함의 심오한 즐거움을 느낄 방법을 찾는 것이 목표라면, 완전히 다른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리스인들은 자연의 원리에 관한 어떤 질문에도 이해할 만한 단 하나의 답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만약 답을 얻을 수 없는 무언가를 알고자 한다거나, 그 무언가가 단편적인 진실과 관계가 없으면, 질문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자연의 궁극적 진실에다가간다는 것은 ‘외부‘에 집중하고, 지성으로 사물을 범주화해 구성 요소를 나누는 것을 의미했다.

나이가 들수록 나에게 숲은 더 거대하고 풍요로운 존재였다.
숲에 대한 이해의 폭이 급격히 넓어져 전설이나 신화에 버금가는강렬한 감정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침엽수의 유전 정보가 지구상의 어떤 생명체보다 복잡하고 거대하다는 사실을 안다. 마을 광장에서 이따금 지나쳤을 거대한 가문비나무는 무려 수억 년 동안, 당신보다 약 일곱배나 거대한 유전 물질을 묵묵히 만들어왔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인트조지프강 근처 오크나무 숲에서는나무들을 해치는 벌레에 대한 정보가 공기 중을 떠다니는 호르몬에 실려 전달되고 있다. 이 호르몬은 나무의 줄기와 잎에서 만들어지는 화합물인데, 나무들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묘책이기도 하다. 잎을 갉아 먹는 애벌레 때문에 괴로워하는 어떤 나무들은근처의 말벌을 부르는 페로몬을 방출한다. 그러면 말벌들이 날아와 알을 낳고, 부화한 말벌은 나무를 침범하는 애벌레들을 먹어치워서 나무는 살아남을 수 있다.

반대로 나무 밑에서 자라는 균류는 거미줄같이 가는 관처럼생긴 덩굴손으로, 나무뿌리에 자신을 엮는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균은 광합성으로 생성된 당을 얻을 수 있다. 한편, 그 나무들은 균이 만든 거대한 그물 덕분에 자립적으로 얻을 수 없는 질소나 인과 같은 필수적인 양분에 접근할 수 있게 된다.

세인트조지프 강변에 있던 아주 특별할 정도로 거대하고 나이 든 오크나무는 그 둘레만 거의 4미터에 달해, ‘할머니’ 나무라는이름이 어울릴 역할을 맡고 있다. 몇몇 다른 종을 포함해 수많은나무를 보살피면서 어리고 연약한 생명에게 늘 양분을 나눠준다.
몸통에 있는 상처들로 보아 긴 시간이 남지는 않았을 테지만, 수명을 다할 때가 되면 이 할머니 나무는 그물을 이용해 남은 양분을모두 이웃들에게 보내줄 것이다.

주변의 벌들도 상처에 몰려와 수액에 있는 당분을 얻어 갔다.
그 과정에서 벌들은 버섯에서 나온 항바이러스 물질을 섭취하게되고, 그 벌들이 벌집에 돌아가 결과적으로 진드기 감염과 같은 피해 예방에 도움을 준다. 재앙이라고 할 만큼 전 세계적으로 급격하게 벌 개체 수가 줄어들고 있다. 꿀벌 진드기가 옮기는 두 가지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개체 수 감소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버섯 추출물이 매우 효과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시나이 호수바이러스 Lake Sinal Virus에 버섯 추출물을 투여하자 바이러스의 비중이무려 4만 5000배나 줄어들기도 했다.

이렇게 숲이 인간에게 주는 이익은 부정할 수 없을 만큼 귀중하다. 이를 두고 일리노이대학 생물학자 프랜시스 밍 쿼 박사는
"주변에 식물이 많지 않은 사람일수록 병과 죽음에 가까워질 위험이 커진다"라고 말했다.
수백 년이 지나서야 우리는 비로소 자연이 우리 손안에 있다는 환상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느리지만 확실하게, 여러모로 위안이 되는 진실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바로 세상이 우리를 보살펴준다는 진실이다.

그래서 초여름 어느 날, 나는 가방 하나를 메고 현관을 나와200킬로미터가 넘는 산행을 시작했다. 10일 후 그곳에 도착했다.
마지막 즈음에는 옐로스톤강의 상류를 따라 흐르며 사람의 손이닿지 않은 아름다운 계곡 소로페어를 걸었다. 어디에 눈을 둬도 늑대와 그리즐리 베어의 발자국과 툰드라의 웅장한 광경이 축제처럼 펼쳐지는 황홀한 여정이었다. 나는 그 고지대에 약 석달 동안머무르면서 주로 산림청의 작은 오두막에서 생활했다. 그리고 짝짓기 시기를 맞은 엘크들의 나팔 같은 울음소리가 계곡을 따라 흘러내리는 가을, 마침내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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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이 모든 이야기를 알 수 있었던 것은 좋은 책들과 훌륭한 선생님들 덕분이었다. 하지만 튤립과 제라늄의 색과 모양에 홀리고,
호박벌의 느릿한 움직임에 매혹되고, 애벌레가 꿈틀거리는 모습과 비 온 뒤 땅속에서 올라온 벌레가 그리는 구불구불한 선들에마음을 사로잡혔던 어릴 적 기억이 내게 더 큰 영향을 주었다.

우선, 침묵하라. 침묵하기는 아인슈타인이 연구의 숲에 들어갈 때 했던 첫 번째 행동이다. 그는 두어 번 숨을 내쉰 다음 주위의생명을 고요하게 응시하곤 했다. 물론 당신이 나와 비슷하다면, 아마 끊임없이 정신을 흩뜨리는 것들이 가득한 강에 빠져버린 듯한날이 많아, 아인슈타인처럼 차분한 명상을 하기는 힘들다고 생각할 것이다.

1970년대 후반, 로키산맥을 제멋대로 쏘다니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나는 이따금 멈춰 서서 눈을감고 바람 소리를 들었다. 그 시절 나는 거의 바람 소리 감정사나 다름없었다. 아이다호의 소투스산맥이나 티턴의 조각 같은 봉우리를다니는데 바람 소리가 숨소리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아침에는 협곡이 숨을 들이마시고 오후에는 높은 초원이 숨을 내쉬었다.

그저 하나의 감각을 깨우면서 나는 배경과 멀리 떨어진 다른소리들을 들을 수 있었다. 붉은날다람쥐가 갉아 떨어진 솔방울이가지 사이를 굴러 솔잎 더미에 내려앉을 때의 희미하고 뭉툭한 소리. 멀리 있던 나무들의 몸이 서로 쓸릴 때 가만히 들리는 삐걱거림과 나직한 탄식. 천천히 흐르며 스미는 여린 물줄기 소리. 머리위를 지나는 까마귀의 날갯짓 소리.
촉각도 마찬가지다. 피부에 닿는 개울가 옆의 물기 어린 시원한 공기. 눈꺼풀에 닿는 햇볕의 온기. 손끝에 느껴지는 늙은 참나무의 주름진 껍질. 사시나무와 자작나무의 보송하고 부드러운 몸통. 맨발에 감기는 이슬 덮인 풀잎의 청량함.

자연에는 수없이 많은 향도 존재한다. 폰데로사소나무가 내는 바닐라 향, 달맞이꽃과 고광나무의 은은한 단 향, 솔잎의 건조한 후추 냄새와 세이지의 톡 쏘는 향, 비를 흠뻑 맞은 초원이 내뿜는 취할 정도로 호화로운 향기들. 장미, 스위트 클로버, 민들레의향은 눈을 감고 음미할 때 가장 풍부하게 느껴진다. 일요일 아침커피 한 잔이나 오븐에서 막 꺼낸 시나몬 롤의 향을 맡을 때처럼.

하지만 보이는 것에만 의존하는 것은 신비로움을 마주하는데 방해물이 된다. 마치 머리에 굴레가 쓴 것처럼.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우리는 사고가 신체와 단절되어 있다고 생각해왔지만, 사실 우리의 사고는 신체에 의해 움직이기도 한다. 그렇다면 흥미로운 생각 하나를 떠올려보자. 자연에 머물면서최대한 자연과 동화되면, 강력한 심상들을 모을 수 있다. 그리고이 심상들은 앞으로 오랫동안 세상의 신비로움을 경험할 수 있는매우 신선하고 흥미로운 방법을 얻게 해줄 것이다.

숲에 가을이 온다. 우리 모두 그 느낌이 무엇인지 안다. 여름은 갔지만, 겨울은 아직 문지방에 서 있다. 세상이 긴숨을 내뱉는다. 조용한 만족감이 아주 약간의 우울함과 공존한다.
이 순간, 따뜻한 스웨터를 껴입고 터치 풋볼을 하거나 낙엽 더미에몸을 던지는 행복한 기억을 떠올릴 수도 있다.

범주화는 이토록 유용하지만, 확신할 수 없는 대상을 마주하면 유용함은 빠르게 허물어진다. 마치 신비로움이 녹아든 삶을 대할 때처럼. 범주형 사고방식으로 세상을 보면 모든 것이 분명한 것처럼 보인다. 이와 달리 신비로움의 세계는 결말이 정해져 있지 않다. 분명하지 않으며, 여러 가능성으로 가득해 확신하기 어렵다.

이분법적 사고방식은 삶을 무료하고 불안정하게 만든다. 하버드대학에서 화학과 물리를 가르치는 에릭 헬러 교수는 이렇게말한다. "자신이 세상을 해석하는 방식을 주의 깊게 선택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당신의 세상이기 때문이다."

TU
벌새는 좋지만, 찌르레기는 나쁘다. 얼룩다람쥐는 사랑스럽지만, 쥐는 만화 캐릭터가 아닌 이상 다람쥐의 징그러운 모조품일 뿐이다. 자연의 원리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는 모두 말도 안 된다는점을 알게 된다. 그러니 우리보다 훨씬 오래전 살았던 사람들이 선과 악, 귀여운 친구들과 징그러운 해충들로 구분하던 분열된 마음이 그저 정신을 드러내는 상징이라 한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자연을 거닐며, 나는 자연을 음과 양이라는 개념으로 바라보는 고대 중국의 사상에 푹 빠졌다. 이 사상의 상징은 검은색과 하얀색 두 개의 올챙이 모양 도형이 서로를 머리부터 꼬리까지 꽉감싸 안은 형상이다. 각각은 남성성과 여성성을 상징하는데, 이 한쌍이 삶의 순환을 상징하는 원 모양이다. 음과 양은 대립하지 않고, 상호 보완적이다. 서로 함께해 각각의 물리적 합보다 더 큰 결과를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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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한 살이 됐을 때쯤 나는 보라색 자전거를 타고 서쪽으로 열블록 정도 떨어져 있는 포타와토미 공원에 가곤 했다. 오크나무가줄지어 서 있고, 아무리 팔을 뻗어도 몸통둘레의 반이 채 되지 않을 정도로 커다란 단풍나무가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늙고 병든 사자, 목청껏 우는 공작 여섯 마리, 전시된 바퀴벌레들(정말이다), 콧김을 뿜어내는 당나귀가 있는 작은 동물원이 있었다.

그포타와토미 공원의 반딧불이와 벌들과 거대한 오크나무는 나를 알에서 깨어나게 해주었다. 세상의 밀물과 썰물로, 재잘거림과윙윙거리는 소리와 쉭쉭거리는 소리는 매일의 음악으로 나를 이끌었다. 호기심을 자극하며 내가 모든 것의 한 부분이라는 경이로운 감정을 느끼게 했다. 나의 침실 창문 밑 화단에 핀 국화는 여름을 느끼는 감각을 일깨웠다. 우리집 단풍나무위홍관조의 화려한깃털 색은 내게 가장 완벽한 빨강이었다. 옆집 칼과 이본 윌슨의집 도로 옆, 사과나무 위에 앉은 비둘기의 노래는 처음 듣자마자왠지 모를 익숙함과 안정감을 안겨주었다.

어떤 식으로 자연을 경험했든, 그 마법은 그냥 사라져버리거나 조용히 떠나가 버리지 않는다. 삶의 여러 단계를 밟아가는 동안우리는 자연에 관한 경험을 다른 것으로 대체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경험을 더하며 쌓아나갈 것이다. 당신이 도시에서 혹은시골에서 삶을 꾸리든 관계없이, 자연은 당신 곁에 있다. 정신적지주가 되어주고, 영감을 주고, 당신이 바라던 것보다 더 나은 존재가 되게 해줄 것이다.

마치 그가 내게 자주 말해주던 농부의 이야기와 비슷하다. 순종들이 출전하는 경주 대회에 밭을 가는 늙은 말을 매년 한 주도빠짐없이 출전시키던 농부가 있었다. 어느 날 농부의 친구는 왜 이기지도 못할 경주에 매번 출전료를 내느냐고 물으며 만류했다.
"자네 말이 맞네" 농부는 손으로 턱을 문지르며 이야기했다.
"내 말은 이기지 못하겠지. 하지만 친구들과 함께하는 건 분명 좋아할 거야."

무엇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집으로 돌아간다는 의미에 대해전하고 싶다. 단순히 당신이 자란 곳, 잘 깎인 잔디밭과 시멘트 욕조가 있는 교외의 복층 집이나 벽돌로 지은 아파트, 나무들이 길게늘어선 도시 중심의 하얀 집으로 돌아가는 것만이 아니다. 창고와녹색 트랙터, 보름달처럼 눈이 큰 소가 있는 낡은 농장으로 돌아가라는 것도 아니다. 소중한 우리의 집이란 지구의 경이로움과 맺는본능적인 동지애를 회복할 때 비로소 느낄 수 있는 소속감과 같다.

지나치게 바쁠 때(지금은 끔찍할 정도로 많은 날이 그렇지만), 우리는 그저 잠시 멈춰 서서 하늘을 볼 시간도 없이 쫓기듯 살아간다.
비 냄새를 맡을 시간도, 서로를 격려하며 겨울 보금자리로 향하는거위들을 감상할 잠깐의 시간도 없이. 하지만 생각해봐야 한다. 자연의 지혜와 멀어지는 것은 우리의 주의를 분산시키는 것이 많기때문만이 아닐 수 있다. 우리가 배워온 사고방식 때문이기도 하다.
역사를 통틀어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에 대한 우리의 신념은 문화적 관점, 사회적 관습, 과학적 발견이 결합된 채, 세대를 타고 전해지며 형성되었다. 그러나 자연의 본성과 더불어 세상과 우리 사이의 관계에 대해 우리는 엄청나게 많은 부분을 그저 ‘원래 그런 것‘
으로 받아들여 왔다.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음에도.

MIT의 시스템 과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 피터 센게는 자연과의 일체성을 잃는 것은 상호 의존을 인지하는 능력을 잃는 것과 같다고 짚어냈다. 우리 대부분이 잘 모르는 사실이다.
상호 의존을 받아들이면 무엇이 세상을 움직이게 하는가에관한 지식을 넘어, 무엇이 세상을 계속해서 움직이게 하는가에 대한 물음에 닿을 수 있다. 그리고 지금 과학이 우리에게 증명하듯,
그 답은 언제나 관계에 있다. 마치 균들이 숲의 토양에 양분을 주고, 그 질소를 양분 삼아 나무들이 싹을 틔우며 성장하고, 그 나무들이 우리가 들이마실 산소를 내뿜는 것처럼.

우리는 자연이다.
이 명백한 사실 위에 단단히 발을 딛고 자연은 ‘저기‘, 우리는
‘여기‘에 있다는 오랜 환상을 걷어내면, 우리를 가장 괴롭게 했던끈질긴 문제들을 해결할 새로운 빛을 볼 수 있다. 더불어 우리가필요한 모든 것이 내면 가장 깊은 곳에 이미 존재한다는 확신을얻을 것이다.

여느 위대한 과학자들이 그랬듯, 아인슈타인은 그 어떤 문제도 그것이 처음 드러난 차원의 관점으로만 보아서는 풀 수 없다는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직 완전히 정의되지 않은, 창의적인공간인 숲을 통해 자신을 한 차원 높은 곳으로 끌어올리고자 했다. 숲속 수수한 나무들이 뿜어내는 거대한 신비로움을 마주하며아인슈타인은 그가 ‘진정한 예술과 과학의 원천‘이라고 여겼던 존재들과 만날 수 있었다. 제자들에게 조언할 때도 지식을 얻는 것과신비로움을 가까이 두는 것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반드시 신비로움을 택해야 한다고 했다.

끈 이론의 독보적인 권위자이자 지구에서 가장 총명한 사람이라고 불리는 현대 물리학자 에드워드 위튼은 신비로움이 인간존재의 가장 근본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제인 구달 또한 진실과 과학만으로는 삶을 설명할 수 없다고 여겼다.
"세상에는 신비로움이 넘칩니다. 경외해야 할 것이 너무도 많습니다."
신비로움에 다시 곁을 내준다면, 우리는 그것이 자리 잡는 곳을 관찰하고 배우며 좀 더 지혜로워질 것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신비로움이 머무는 그곳에는 경이로움이 가득하다.

우리는 사실 오늘 길을 걸었지만, 땅을 밟지는 않았다. 신발에 있는 전자의 자성이 도로에 있는 전자를 밀어내므로, 조금 과장하면 우리는 사는 동안 한 번도 땅에 발을 딛지 않는 것이다. 그저공중에 떠 있는 상태처럼. 만약 우리가 지구에서 로켓을 타고 우주의 끝을 찾기 위한 여행을 시작한다면, 1000년 동안 한 시간에 약160킬로미터 속도로 날아간다 해도 우주의 끝에 단 1인치도 가까워질 수 없는 셈이다. 이런 오랜 이야기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자.

인식은 모든 것의 주고받음이라는 큰 틀에 자연이 속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확장된다. 주고받음이란 신비로운 밀물과 썰물이며, 철학자 닐 에번든이 ‘맞바꿈의 리듬Rhythm of Exchange‘이라 말했던 나타남과 사라짐이다. 하나가 말하면 다른 하나는 듣는다. 하나가 땅을 밟으면 다른 하나는 땅을 박차고 날아오른다. 한 부분이차오르면 다른 부분은 기운다. 하나가 죽으면 다른 하나가 태어난다.

그러므로 세상이란 흐르는 거대한 강과 같아 똑같은 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 없는 곳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관점으로 세상을 보기까지 왜 그렇게 힘든 시간을 거쳐야 했을까? 먼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제인 구달, 칼 세이건과 같은 사람들이 자신만의인식을 구축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로부터 영감을 얻으며매 순간 신비로움을 받아들일 때, 사회는 중요한 체계들을 벽장 안에 정리하는 데만 몰두해 있었다.

시간이 흐르며 분명 아이는 정원에 핀 꽃들 위에 앉은 나비를지켜보며 그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나비가 꽃의 꿀에 닿을 수 있는 입을 가진 유일한 곤충이라는 객관적 사실을.

카슨은 이렇게 말했다. "사실이 지식과 지혜를 품은 씨앗이라면, 감각을 통해 받아들이는 인상과 감정은 그 씨앗이 자라는 데꼭 필요한 기름진 토양과 같습니다."

그때의 나는 당신을 어머니의 작은 텃밭에 여섯줄짜리 완두콩 나무로 데려가 작은 삽으로 흙을 파낸 뒤, 작은 덩어리와 이리저리 얽힌 뿌리를 보여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또 과학 선생님이셨던 롱에네커 선생님의 가르침 덕에, 나는 당신에게 뿌리혹은 박테리아라는 또 다른 생명체의 산물이며, 그 박테리아 중 한 종류는흙에서 질소를 끌어내 저장할 수 있다는 것, 더 나아가 질소는 가장 훌륭한 비료라는 사실도 말해줄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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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것보다 자는 것이 중요하다고 심리상담사는말했다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더라면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가끔 심리상담사를 죽이는 꿈을 꾸다가 그가 내 얼굴을 달고 있는 장면에서 꼭 잠을 깬다 내 얼굴을 향하여 내가 칼을 들이밀고 있었으므로

차마 안부를 묻지 못할 거라 생각하니 사무칩니다
바닷속의 발들을 기다리는 해안의 발들이
퉁퉁 부어 있는 가을 저녁입니다

아림 속으로 돋아나는 살의 적막한 빛에 침묵하는철망을 바라보다가 그는 장화를 벗으며 물에 튼 손가락을 만졌다 그리고 그가 바닷바람에 모든 방향을보냈을 때 굴이 제껍데기에 아주 도착하는 시간이왔다

팔을 잃어버리고도 안을 수 있는 것이 있는지
혹은 인간의 팔이 해주는 포옹을 기억하는
지삽으로 흙을 파는 건지 땅에 상처를 주는 건지

토기는 발을 잃은 채 하늘의 서재에 꽂혀 있고 별들은 하늘의 서재에 가득 찬 책장을 넘겼다 밤의 벌들은 꿀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꽃의 잠을 모았다 그잠 속에서 나는 이렇게도 하릴없이 중얼거렸다.

별들이 많다고 쓰다가 이생에 다시 만날 사람들의숫자가 자꾸 줄어들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더러 만나보지도 못했던 유령들도 있어서 누군가 영혼의 물을 따라주자 나는 그걸 눈물이라고 부를 수도 있었네

그는 답했다. 노래하던 것들이 떠났어
그것들, 철새였거든 그 노래가 철새였거든
그러자 심장이 아팠어 한밤중에 쓰러졌고
하하하, 붉은 십자가를 가진 차 한대가 왔어

헤어졌다 헤어지기 전
내 속의 신생아가 물었다. 언제 다시 만나?
네 속의 노인이 답했다. 꽃다발을 든 네 입술이 어
떤 사랑에 정직해질 때면
내 속의 태아는 답했다. 잘 가

돌이킬 수 없는 짠 사랑의 보리굴비를 가울물에밥 말아 먹다가 한 사람 울었네 눈물 많은 이의 지문너무 자주 들여다본 편지는 사라지네 골목에는 아무일 없어 언제나 같은 노래만 흘러나왔네 모두들 오늘 하루를 사랑하며 잠이라는 짐승의 숲 속으로 들어갔네

너는 왔고 이 세기에 생존한 비닐영혼은 손금에서내리는 비를 피하려 우산을 편다 너 없이 희망이여몇백 년 동안 되풀이된 항의였던 희망이여 비닐영혼은 억울하다.
너 없이 희망과 함께

쉰 살이 되어가는 내 꿈의 낯선 입은 묻는다네,
지구여 네 바깥에는 태양 및 별들이
고아로 남겨져 있는가?

얼마나 오래
이 안을 걸어 다녀야
이 흰빛의 마라톤을 무심히 지켜보아야
나는 없어지고
시인은 탄생하는가

종소리는 공중에서 유리 조각으로 흩어지고
잠이 덜 깬 잘 아는 얼굴은 황망히 도시를 떠난다
가방을 끄는 소리도 시끄러웠지

잠의 가장 시끄러운 곳 속에서
떨어진 노래를 줍는다.
그 너머에는 네가 있다.
나보다 더 오래된 지구의 생물 하나인 너는
날개를 받고 있었지

얼굴에 먼지와 피를 뒤집어쓰고
총 쏘기를 멈추지 않던 노인이여
붉은 양귀비꽃이 뒤덮인 드넓은 들판이여
무너진 담벼락 사이로 터지던 지뢰여
종으로 팔려가서 영영 돌아오지 않던 소녀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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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므린 손금처럼 어스름한 가냘픈 길, 그 길이 부셔서 마침내 사월 때까지 보고 있어야겠다 이제 취한 물은 내 손금 안에서 속으로 울음을 오그린 자줏빛으로 흐르겠다 그것이 이 가을의 무늬겠다

저녁의 가장 두터운 속살을 주문하는 아코디언 소리가 들리는 골목 토마토를 싣고 가는 자전거는 넘어지고 붉은 노을의 살점이 뚝뚝 거리에서 이겨지는데 그 살점으로 만든 칵테일, 딱 한 잔 비우면서 휘파람이라는 명랑한 악기를 사랑하면 이국의 거리는작은 술잔처럼 둥글어지면서 아프다

박쥐는 가을의 잠에 들어와 꿈을 베꼈고
꿈은 빛을 베껴서 가을 장미의 말들을 가둬두었다
그 안에 서서 너를 자꾸 베끼던 사랑은 누구인가
그 안에 서서 나를 자꾸 베끼는 불가능은 누구인가

당신이 오는 계절,
딸기들은 당신의 품에 얼굴을 묻고
영영 오지 않을 꿈의 입구를 그리워하는 계절

SHP5B 9 S# P# 9*숨죽인 밤구름 바깥으로 상쾌한 달빛이 나들이를나온다 그 빛은 당신이 나에게 보내는 휘파람 같다그때면 춤추던 마을 아가씨들이 얼굴을 멈추고 레몬의 아린 살을 입안에서 굴리며 잠잘 방으로 들어온다

마음속을 걸어가던 달이었을까, 구름 속에 마음을
다 내주던 새의 한 철을 보내던 달이었을까. 대답하지 않는 달은 더 빛난다 즐겁다

익은 속살에 어린 단맛은 꿈을 꾼다 어제 나는 너의 마음에 다녀왔다 너는 울다가 벽에 기대면서 어두운 걸레로 바닥을 닦았다 너의 얼굴에는 여름이 무참하게 익고 있었다 이렇게 사라져갈 여름은 해독할수 없는 손금만큼 아렸다 쓰고도 아린 것들이 익어가면서 나오는 저 가루는 눈처럼 자두 속에서 내린다 자두 속에서 단 빙하기가 시작된다 한입 깨물었을 때 빙하기 한가운데에 꿈꾸는 여름이 잇속으로 들어왔다 이것은 말 이전에 시작된 여름이었다 여름의영혼이었다 설탕으로 이루어진 영혼이라는 거울, 혹은 이름이었다 너를 실핏줄의 메일에게로 보냈다 그리고 다시 자두나무를 바라보았다 여름 저녁은 상형문자처럼 컴컴해졌다 울었다. 나는 너의 무덤이 내가슴속에 돋아나는 걸 보며 어둑해졌다 그 뒤의 울음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자두뿐이었다

오렌지 나무는 아무 말 없이 녹빛 그늘의 눈을 우리에게 주었다 단단한 잎은 번쩍거렸다 나는 너에게둥글게, 임신 말기의 여름에 열리던 아주 둥근 열매처럼 단 한 번만 더 와달라고 말하려다 참았다

내 혀는 가을의 살빛을 모두어 들이면서 말하네,
꼭 그대를 만나려고 호두 속을 들여다본 건 아니었다고

모든 우울한 점성의 별들을 태아 상태로 머물게해요, 얼굴 없는 타락들로 가득 찬 계절이 오고 있어요, 라고

잎사귀 모양을 한 깃털을 떨구고 날아간 문득,
숱이 두터운 눈바람 속, 새이던 당신에게날개의 탄생을 붉게 알려준그 나무 열매의 이름이 알고 싶었다

넝마 같은 세월을 햇빛에 말리며
라디오 속 노래들이 기절한다면
난 무얼 할까
바짝 마른 빨래 없는 계절이 지나가는데
울었던 흔적을 지워줄 내일은 없는데
나는 무얼 할까

낚시꾼들은 가까운 바다로 나간다 우럭을 잡아서그 자리에서 회 친다 우리의 가장 다정한 조상 네안데르탈인들이 헬무트 씨의 고기를 구울 때, 그 표정으로 낚시꾼들은 우럭의 투명한 살을 저민다 인간의문명에서 시간의 차이를 드러내는 것은 양념이다 그때에는 빨간 초장 푸른 와사비는 없었다 시간을 달이며 고독해지던 간장도

아이는 소를 제 품에 안았다
둘은 진흙으로 만든 좌상이 되어간다
빛의 섬이 되어간다
파리 떼가 몰려온다
파리의 날개들이 빛의 섬 위에서
은철빛 폭풍으로 좌상을 파먹는다
하얗게 남은 인간과 짐승의 뼈가 널린 황무지
자연을 잡아먹는 것은 자연뿐이다.

틀에 갇혀버린 옆 마을의 나치 할아버지,
사각의두줄무늬 늙은 나비, 지던 페르시아 퀸 장미, 위대한가을의 국화, 휠체어에 앉아 있던 아이패드 5의 햇살욕설, 오던 구급차와 가던 장의차, 토해놓은 사랑과죽음으로도 돌이킬 수 없던 나날들, 고양이가 마시던 오후의 커피, 고요히 돌아와 창백한 별의 심장을안아주던 어둠조차 사각의 관 속에 든 정물화가 되어가던 시간을 함께 보내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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