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이 모든 이야기를 알 수 있었던 것은 좋은 책들과 훌륭한 선생님들 덕분이었다. 하지만 튤립과 제라늄의 색과 모양에 홀리고,
호박벌의 느릿한 움직임에 매혹되고, 애벌레가 꿈틀거리는 모습과 비 온 뒤 땅속에서 올라온 벌레가 그리는 구불구불한 선들에마음을 사로잡혔던 어릴 적 기억이 내게 더 큰 영향을 주었다.

우선, 침묵하라. 침묵하기는 아인슈타인이 연구의 숲에 들어갈 때 했던 첫 번째 행동이다. 그는 두어 번 숨을 내쉰 다음 주위의생명을 고요하게 응시하곤 했다. 물론 당신이 나와 비슷하다면, 아마 끊임없이 정신을 흩뜨리는 것들이 가득한 강에 빠져버린 듯한날이 많아, 아인슈타인처럼 차분한 명상을 하기는 힘들다고 생각할 것이다.

1970년대 후반, 로키산맥을 제멋대로 쏘다니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나는 이따금 멈춰 서서 눈을감고 바람 소리를 들었다. 그 시절 나는 거의 바람 소리 감정사나 다름없었다. 아이다호의 소투스산맥이나 티턴의 조각 같은 봉우리를다니는데 바람 소리가 숨소리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아침에는 협곡이 숨을 들이마시고 오후에는 높은 초원이 숨을 내쉬었다.

그저 하나의 감각을 깨우면서 나는 배경과 멀리 떨어진 다른소리들을 들을 수 있었다. 붉은날다람쥐가 갉아 떨어진 솔방울이가지 사이를 굴러 솔잎 더미에 내려앉을 때의 희미하고 뭉툭한 소리. 멀리 있던 나무들의 몸이 서로 쓸릴 때 가만히 들리는 삐걱거림과 나직한 탄식. 천천히 흐르며 스미는 여린 물줄기 소리. 머리위를 지나는 까마귀의 날갯짓 소리.
촉각도 마찬가지다. 피부에 닿는 개울가 옆의 물기 어린 시원한 공기. 눈꺼풀에 닿는 햇볕의 온기. 손끝에 느껴지는 늙은 참나무의 주름진 껍질. 사시나무와 자작나무의 보송하고 부드러운 몸통. 맨발에 감기는 이슬 덮인 풀잎의 청량함.

자연에는 수없이 많은 향도 존재한다. 폰데로사소나무가 내는 바닐라 향, 달맞이꽃과 고광나무의 은은한 단 향, 솔잎의 건조한 후추 냄새와 세이지의 톡 쏘는 향, 비를 흠뻑 맞은 초원이 내뿜는 취할 정도로 호화로운 향기들. 장미, 스위트 클로버, 민들레의향은 눈을 감고 음미할 때 가장 풍부하게 느껴진다. 일요일 아침커피 한 잔이나 오븐에서 막 꺼낸 시나몬 롤의 향을 맡을 때처럼.

하지만 보이는 것에만 의존하는 것은 신비로움을 마주하는데 방해물이 된다. 마치 머리에 굴레가 쓴 것처럼.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우리는 사고가 신체와 단절되어 있다고 생각해왔지만, 사실 우리의 사고는 신체에 의해 움직이기도 한다. 그렇다면 흥미로운 생각 하나를 떠올려보자. 자연에 머물면서최대한 자연과 동화되면, 강력한 심상들을 모을 수 있다. 그리고이 심상들은 앞으로 오랫동안 세상의 신비로움을 경험할 수 있는매우 신선하고 흥미로운 방법을 얻게 해줄 것이다.

숲에 가을이 온다. 우리 모두 그 느낌이 무엇인지 안다. 여름은 갔지만, 겨울은 아직 문지방에 서 있다. 세상이 긴숨을 내뱉는다. 조용한 만족감이 아주 약간의 우울함과 공존한다.
이 순간, 따뜻한 스웨터를 껴입고 터치 풋볼을 하거나 낙엽 더미에몸을 던지는 행복한 기억을 떠올릴 수도 있다.

범주화는 이토록 유용하지만, 확신할 수 없는 대상을 마주하면 유용함은 빠르게 허물어진다. 마치 신비로움이 녹아든 삶을 대할 때처럼. 범주형 사고방식으로 세상을 보면 모든 것이 분명한 것처럼 보인다. 이와 달리 신비로움의 세계는 결말이 정해져 있지 않다. 분명하지 않으며, 여러 가능성으로 가득해 확신하기 어렵다.

이분법적 사고방식은 삶을 무료하고 불안정하게 만든다. 하버드대학에서 화학과 물리를 가르치는 에릭 헬러 교수는 이렇게말한다. "자신이 세상을 해석하는 방식을 주의 깊게 선택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당신의 세상이기 때문이다."

TU
벌새는 좋지만, 찌르레기는 나쁘다. 얼룩다람쥐는 사랑스럽지만, 쥐는 만화 캐릭터가 아닌 이상 다람쥐의 징그러운 모조품일 뿐이다. 자연의 원리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는 모두 말도 안 된다는점을 알게 된다. 그러니 우리보다 훨씬 오래전 살았던 사람들이 선과 악, 귀여운 친구들과 징그러운 해충들로 구분하던 분열된 마음이 그저 정신을 드러내는 상징이라 한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자연을 거닐며, 나는 자연을 음과 양이라는 개념으로 바라보는 고대 중국의 사상에 푹 빠졌다. 이 사상의 상징은 검은색과 하얀색 두 개의 올챙이 모양 도형이 서로를 머리부터 꼬리까지 꽉감싸 안은 형상이다. 각각은 남성성과 여성성을 상징하는데, 이 한쌍이 삶의 순환을 상징하는 원 모양이다. 음과 양은 대립하지 않고, 상호 보완적이다. 서로 함께해 각각의 물리적 합보다 더 큰 결과를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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