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어린 나는 윗사람들이 데려가는 곳에 말없이따라갔고, 앉으라는 데 앉았고, 먹으라는 걸 먹었다. 있는듯 없는 듯 앉아 있었다. 내가 도무지 삼킬 수 없는 것들은 일단 입속에 넣었다가 화장실에서 뱉어내거나 아무렇지 않은 척 받아둔 다음 몰래 골라 내 몫의 앞접시 한구석에 빼내곤 했다. 그리고 냅킨으로 슬쩍 덮어두었다. 그래,
그때의 나는 그런 시절을 통과하고 있었다. 골뱅이나 번데기 같은 것들을 못 먹는 게 부끄러웠다. 어떤 식으로든지 약해 보이기 싫었다.

자전거를 사랑하는 남녀라면 누구나 마덕동 일대에서가볍게 모여 장비에 대한 집착 없이, 기록에 대한 강박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라이딩 그 자체를 온전히 즐길 수 있는 그런 만남, 이른바 ‘샤방한 라이딩‘을 표방하는 그런크루를 만들고 싶었던 거였다.

‘아무 반응이 없으면 어쩌나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요‘를 남겼다. 더러는 댓글을달거나 다이렉트 메시지를 보내오는 사람도 있었다. 솔직히 계정을 만들 때까지만 해도 내게 어떤 선택권이 있을거라는 생각을 하진 못했다. 점차 반응이 오고, ‘이게 되네?‘ 하는 생각이 들자 그때부터 신이 나기 시작했다. 나는 내 포스팅에 호의를 보인 여러 사람들의 프로필과 피드를 꼼꼼히 살피고 그들이 자신의 네모반듯한 공간에 드러낸 정보와 행간에 숨겨둔 정보들을 파악해 우선 여자둘, 남자 둘을 추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이제 무르익은 가을의 한중간, 지상의 식물들은 그 둥근완성을 위하여 보이지 않게 땀흘릴 것이고, 이름 없는 무수한 풀과 나무도 머잖아 저마다의 크고 작은 그해의 열매들을 떨굴 것이고, 그리고 한 해의 시간 자체가 커다란 둥근열매로 익어 마악 떨어지려 하는 것 같다. (1985)

밤마다 그토록 울어대던 풀벌레 울음소리도 알지 못하는새 끊겨버리고, 아침 출근길에 느닷없이 낙엽들이 발목을휘감고, 바람소리가 차츰 드세지고,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무슨 깨달음처럼, 캘린더의 마지막 남은 한 장이 의식 속으로 날카롭게 파고든다. 가을에서 겨울로, 그리고 한 해의 끝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해마다 그러하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많은 죽음을 보고 겪게 되고, 그리고그때마다 타인의 죽음을 통해 자신의 삶을 점검하게 된다.
나 역시 앞으로 더 많은 죽음을 보면서 나 자신의 삶을 수시로 되돌아보게 되리라. 마침내 내가 나 자신의 죽음을 보게될 때까지. (1986)

또 한 해가 간다. 누군가에게는 즐거움의 해, 누군가에게는 고통이었을지도 모를 한 해가 마침내 끝나려 하고 있다.
모든 이가 저 넉넉한 자연의 품에 안겨 대지의 핏줄과 하나로 얽혀 살았던 옛날에는 자연의 시간, 자연의 리듬이라는 게 있었다. 봄에는 만물이 소생하여 싹을 틔우고, 여름에는 힘껏 수액을 빨아올려 스스로를 푸르게 살찌우고, 가을이 되면 저마다의 행복한 열매를 맺고, 이윽고 이울기 시작한다.

잊어버리기에 지쳐, 마침내 몸과 마음이 쓰러져 누울 때,
그때 고요히 떠오르는 질문들이 있다. ‘나의 삶이 이래도 될까?‘ 하는 질문들이. 그때야말로 그 한 해의 삶의 의미를,
삶의 결실을 거둘 때이다.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 대로, 그야말로 뿌린 대로 거둘 때이다.
한 해의 끝에서 녹초가 된 몸, 녹초가 된 정신과 더불어고요히 떠오를 그러한 질문에 합당한 만족스러운 대답을찾기 위하여, 우리는 언제나 또 한 해를 새로이 시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1986)

그들은 확실하게 돌아오기 위해, 그것도 미래의 풍요로움을 갖고 돌아오기 위해 사막의 나라로 떠났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사막의 신기루를 좇아 떠난 것이 아니라, 확실한꿈, 몇 년 뒤에는 자신의 손에 쥘 수 있는 실체가 되어 나타날 꿈을 좇아 떠난 것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이들의 모습이 어느 날 우리 모두의 시야에서 사라져버리는 바로 그때, 그들의 모습은 우리의 마음속에서 더욱 어여쁘게 살아오른다. 마치 벽 그자체처럼익숙해져버린 벽에 걸린 그림이 어느 날 갑자기 치워졌을때 그 사라진 부재의 자리가 벽 그 자체보다 더욱 또렷하게드러나듯, 그렇게 잠시 멀리 떠난 이들은 비어서 더욱 또렷한 모습을, 비어서 더욱 빛나는 자취를 이룰 것이다.
떠날 때와 마찬가지로 어느날 문득, 그들이 돌아와 그 부재의 자리를 다시 채울 때까지. (1986)

그런데 어느 날 나는, 내가 종래 읽었던 것과는 전혀 다른종류의 어떤 순수한 감동을 안겨주었고 또한 분명하게 말할수는 없지만 후일의 내게 모종의 영향을 주었음직한 한 책과 만나게 되었다. 그날 나는 다락에 올라가 무엇인가를 찾고 있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았던 곳에서 낡은 책 한권이나왔다. 표지가 떨어져나가, 제목도 작가도 알 수 없는 책이었다(나중에 성인이 되어 어느 분과 이야기를 하다 그 책이정비석의 『산유화』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물론, 나 자신이 그것을 직접 확인해보지는 않았기에 정말 그런지는 아직도 모르고 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은 현관은 도시를 향해 있고 베란다는 시골 자연을 향해 트여 있는 집이다. 전형적인 시골 풍경은 아니지만, 낮은 산이 둘러쳐져 있고 그 아래 논과 밭이다소곳하게 엎드려 있으며, 소나무 언덕이 있고, 그 풍경의한쪽 가장자리에 집들이 여유 있게 들어서 있다.

늘 푸른 소나무를 제외하고는 아직도 모든 나무들이 헐벗은 상태이고 논과 밭도 여전히 맨땅을 드러내 보이고 있지만, 때가 되면 언제나 내 마음을 아늑하게 가라앉혀주는 푸르른 것들이 내 시야 안에서 활짝 피어나리라. 그러면 나는조금은 행복해질 수도 있으리라. (1987)

13년의 세월에 그 검은색은 많이 지워져 있었지만 내가충분히 알아볼 수 있을 만큼은 집요하게 남아 있었다. 지금내 기억이 아주 정확하다고 맹세할 수는 없지만, 1212라는숫자, 그것은 그 청년의 죄수번호였다. 역시 『양철북』은 나로서는 못 읽을 책이라고 생각하며 후닥닥 일어나 책을 본래의 자리에 보이지 않게 처박아버렸다. (1988)

논리적인 정당성과 근거를 제시하는 수고 없이 자신의 주장만을 외치는 무반성적인 폭력적 비판 정신이란 근본적으로는, 그렇게 하도록까지 만든 외부적 압력 구조로부터 가해지는 폭력과 똑같이 강압적이고 일방적이며 권위주의적이고 중앙집권적인 성격을 갖고 있으며, 그것은 막말로 하자면 노상강도의 폭력과 다를 게 없다. 1980년대 전반은 그러한 잘못 겨냥된 논리적인 문화적 폭력들이 난무한 시기였다. 그것은 아마도 정치구조적 폭력이 보이지 않게 심화되어감을 반영하는 것일 수는 있겠으나, 그러나 잘못 겨냥된 폭력은 그것이 문화의 다른 갈래들에 해를 줄 수도 있다는 의미에서뿐만 아니라 그 논리성으로 인해 애초의 목적까지 이룰 수 없을지 모른다는 우려에서, 한번쯤은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1985)

시가 인간에게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시가 시를 읽는 사람들에게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시가 시를 쓰는, 시를 생산하는 사람들에게 무엇이 될 수있을까.
시가 시를 쓰는, 시를 생산하는 수많은 사람 중의 하나인내게 무엇이 될 수 있을까.

그 점에서 보자면 나는 낭만주의자가 아니다. 내가 낭만주의적 사실주의자, 혹은 사실주의적 낭만주의자가될 수 있었다면, 어쩌면 나는 시를 쓰지 않을 수도 있었을것이다. 행복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행복에 대한 믿음이있었다면, 그 믿음만으로도 나는 시를 물리칠 수 있었을는지도 모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가 아직도 이 회사에 다니고 있다는 사실이, 심지어는 벌써 오년째 팀장이라는 직책을 달고 있다는 사실이여전히 믿기지 않는다. 내가 팀장이 된다는 소식을 처음들은 것 역시 천의 얼굴에서였다.

조직 생활 17년차. 이제는 바로 알 수 있다. 좋은 주니어를 알아보는 안목이 내게는 있었다. 이런 애들은 결코쉽게 만나볼 수 없다. 아주 가끔 드물게 찾아온다. 몇년에한번 볼 수 있을까 말까 한 보석 같은 아이였다. 물론 김세원이 처음은 아니다. 나는 그동안 나를 스쳐 지나갔던반짝이는 아기 새들을 떠올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때때로 불안이 나의 목을 조른다. 그럴 때면 벽에 붙은마야콥스키의 사진이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죽는 수도 있어, 죽는 방법도 있어"라고 말한다. 나는 로르카를 힐끗 바라본다. "죽임을 당하는 방법도 있긴 있지"라고 그는 말하지만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그의 입술도 움직이지 않는다.
이윽고 나는 파베세를 생각한다. 산다는 이 일, 산다는 이수수께끼로 물불 안 가리고 괴로워했던 그를. 그러면 불안이 한번 더 거세게 나의 목을 조른다. 이러고 누워만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 당장 바람 부는 거리로 나가 정처 없이 쏘다녀야만 할 것 같은 느낌.

도덕은 자신의 가치체계의 정통성을 따라서 새로운 가치나 자신의 율에 어긋나는 가치에 대해서는 비정통성을 주장하고, 자신의 정당성을, 따라서 상대방의 부당성을 주장함으로써 자기 보존과 자기 수호의 속성을 굳히고, 그리하여상대적으로 도덕적이지 않은 모든 것에 강경하고 경직된 태도를 취한다. 기존의 도덕률은 마치 합법적 정통성 위에 세워진 전권을 부여받은 최고 권력구조와도 같아서, 그 권력에 위배되는 것을 반역으로 몰아붙인다.

그러나 한편으론, 도덕이란 게 물론 한 집단의 대다수가되도록 행복하게 되도록 탈없이 살아가기 위하여 하나의정신적 규범으로서 의지해야 할 바이긴 하지만 그 싹은 여전히 개인의식의 혹은 개인 양식의 계보 속에서 찾아내야하지 않을까? 결국 한 가치는 인간이 자신이 살아온 삶을정당하게 그리고 정직하게 재고 평가함으로써(평가하지 않는 한 가치는 태어날 수 없다) 생겨나는 것이며, 그것은 또한 자신이 살아온 것에 비추어 자신이 살아가야 할 바의 지표를 정하기 위하여 생겨나는 것이 아닐까? 가치는 선험적으로 혹은 만고불변으로 존재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우리의삶에 대한 평가 작업에 의해서 ‘태어나는‘ 것이다. 따라서가치는 우리의 평가 활동의 방향에 따라서 달라질 수도 있다. 그러므로 어떤 인간, 어떤 일에 기존 도덕률의 이름으로성급하게 유죄를 선고하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결국 무엇이 도덕적인가, 무엇이 비도덕적인가 하는 물음의 ‘무엇이는 삶이 정당하게 그리고 정직하게 요구하는 바에 따라 변할 수밖에 없다.

한 인간의 행동에 서로 모순된 판단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가치관의 차이일 것이다. 그리고 사람에 따라서는, 기존도덕률에 의해 유죄 선고된 새로운 가치관을 몸소 행복하게실현함으로써 그 가치관의 옳음을 보여주거나 혹은 기존 도덕률의 응징에 따라 스스로 철저하게 파멸함으로써 그 기존도덕률이 썩어 있음을 보여줄 수도 있으리라. (1982)

이윽고 대전의 불빛이 점점 더 가까이 점점 더 밝게 다가왔고, 마침내 우리는 대전역에 내렸고, 약간의 활기와 대화를 되찾았다. 하지만 곧장 외삼촌댁으로 가지 않고 그 추운날씨 속에서 우리는 짙은 안개에 휩싸여 아주 묽은 점액질처럼 흐리게 빛나는 시가지의 불빛을 헤치며 마치 두 마리의 눈먼 물고기처럼 오래도록 유유히 그러나 암담하게 헤엄쳐 돌아다녔다.

내 머릿속에서 어머니는 한없이 걸어가신다. 내게 등을돌린 채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서, 점점 작아지면서 멀어지는 그러나 결코 내 시야에서 아주 사라지지는 않는 그 뒷모습. 그리고 이 지구 한편을 고즈넉이 울리며 걷는 그 신발 끄는 소리. 그래서 가끔은 어머니가 지구 반대편으로 그렇게 끝없이 걸어가 마침내 지구를 한 바퀴 돌아 내게 등을돌렸던 바로 그 지점까지 되돌아와서 조용히 내 문을 두드리며 "얘야, 내가 돌아왔다" 하고 말씀하실 것 같은 환상에사로잡히기도 한다. 그럴 때의 내 어머니는 내게 뒷모습만보이며 한없이 걸어가는 게 아니라 내 앞에 가만히 되돌아와 선 채 정면으로 나를 향해 밝고 환하게 웃는 모습이다.

사람은, 가령 물에 빠져 죽을 때 같은 경우엔, 자신이 살아온 한평생을 한순간의 비전 속에 다 보게 된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던가 읽었던 적이 있다. 그런데 내가 체험한 바로는 사람은 가장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통해 자신의 지나간 삶을 아주 짧은 한순간에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지극히 선명한 영상으로 보게 되고, 그러고도 살아야 할 앞날에대한 어떤 본능적인 계획을 한순간의 청사진으로 보게 되는 것 같다. 물론 그 청사진은 오랜 혹은 짧은 시간 뒤에 또다시 변경될 수 있는 것이긴 하겠지만, 말하자면 가까운 사람의 죽음은 살아 있는 한 인간의 시각을 충격적으로 교정시켜줄 수도 있는 것이다. 나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두 달반이 되었고 그동안 그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해 밖에서는오히려 의식적으로 더 잘 웃고 더 잘 떠들면서도 혼자가 되기만 하면 멍청하니 슬픈 생각들의 진창에 푹 빠진 채 누워있기만 했고, 그러나 그 와중에도 모든 게 소리 없이 달라지기 시작했음을 이제 나는 느낀다.

어요그래, 또 한 해가 간다.
또한 해가 간다고 말하면서 누군가가 하품 섞어 눈물을다
또한 해가 간다고 말하면서 누군가가 숙면을 위한 한 잔의 술을 들고 잠자리에 눕는다.
그러나 누군가가 말하든 말하지 않는 또 한 해가 간다는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또 한 해가 간다. 1984년이 우리를떠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참으로 용감하다면 우리 편에서 먼저 1984년을 떠나야 할 것이다. 교수

그러나 떠난다는 것은 무엇인가?
떠난다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로, 자기 자신의 현실속으로 되돌아오기 위한 것이다. 끝과 시작처럼 떠난다는것과 되돌아온다는 것은 하나이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떠남으로써 자기 자신에게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그렇게 무수히 떠나고 무수히 되돌아오면서 많은 시간을,
그것도 대부분 괴로움과 불행의 시간을 바침으로써 우리가얻게 되는 것은 어쩌면, 행복이란 별도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불행이 없는 것이 행복이라는 조금은 쓴, 그러나 넉넉한인식뿐일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인간은 상처투성이의 삶을통해 상처 없는 삶을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하는 모순의 별아래 태어났는지도 모른다. 상처 없는 삶과 상처투성이의삶 꿈과 상처.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일상을 더욱 굳건하게받쳐주는 원리, 한 몸뚱이에 두 개의 얼굴이 달린 야누스의원리이다.

그리고 가장 짧은, 그러나 가장 아름다운 30세라는 시는 이렇다. (내가 이 시를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인용하는것은 ‘find‘라는 동사 때문이다. 물건처럼, 자신의 의지나행동을 표현하지 못한 채 상대방의 눈에 문득 뜨이기만을기다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듯한 이 동사를 구체적인 한 단어로 꼭 집어 옮겨놓기가 나로서는 힘들기 때문이다.)

그 배들이 그토록 아름다워 보였던 것은 ‘일상으로부터의떠남‘ ‘먼 곳으로의 여행‘을 늘 예비하고 있었기 때문인지도모른다. 그 부둣가에 서서, 가장 멀리로는 차츰 남빛을 때기 시작하는 하늘 꼭대기와 그 밑의 불그스름하게 물든 하늘 밑바닥과 바다, 그리고 수많은 배가 물살에 밀려 흔들리는 풍경을 바라보면서 이따금씩 말라르메의 바다의 미풍이라는 시를 속으로 읊조리기도 했다.

시골 마을에서 살던 어릴 적 나의 별명은 더펄개였다. 그시절 시골 아이들은 대개 위생 때문에 머리를 짧게 깎았지만나는 어깨 아래까지 머리를 기르고 다녔기 때문이다. 내가 살던 시골은 사람들의 성이 거의 같은 이른바 씨족사회로서 윗말, 아랫말, 건넛말로 이루어져 있었다. 내가 긴 머리칼을 출렁거리면서 친구를 찾아 혹은 심부름으로 윗말에서 아랫말로 아랫말에서 건넛말로 달려갈 때면 사람들은 머리칼이 더펄거리는 것을 보고 멀리서도 그게 나라는 것을알고 "저기 더펄개가 가는군" 하고 말했다.

태어나 성장하고 늙어가는 그 인생행로에서 사람은 자신의 고유한 이름 외에 새로운 호칭에 여러 번 부딪히게 된다.
자신의 고유한 이름이 아닌 새로운 호칭들은 어느 날 누군가에 의해 처음으로, 그야말로 느닷없이 날벼락처럼 가해진다. 그리고 그 순간 사람들은 자신의 위치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시 속에서나 현실 속에서나 나는 나 자신이 많이 받지 못했던 것에 앙심을 품고 있었던 사람이지만, 처음으로 선생님으로 불린(물론 그것은 단순한 사교적 호칭이었지만) 그순간 나는 나 자신이 그동안 나를 둘러싼 세계로부터 마땅히 받아야만 했었을 것들을 얼마만큼 받지 못했든 간에, 이제 무조건적으로 받는 시기는, 그리고 못 받았다고 앙앙 우는 시기는 끝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눈치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나 자신이 나를 둘러싼 세계에 무엇인가를 줄 만큼 성숙한 인간이 못 되었다는 사실에 내가 선생님으로 불렸다는 게 몹시도 거북스러웠다.

올겨울 나의 꿈은 드디어 가장 멀리 제주도까지 날아갔다. 유난히도 춥고 유난히도 몸이 아픈 이 겨울, 영하 20도를 향해 곤두박질치는 이 서울이라는 세상에서 볼 때, 아나운서의 말에 의하면 "10여 년 만의 강추위로 영하 4도(!)까ㅣ내려갔다"고 하는 제주도란 곳은 얼마나 따뜻한 나라냐!
내가 자꾸만 서울에서 멀리 떠나 사는 꿈을 꾸는 것은 혹시, 서울에서 잘살지 못하는 나의 무능력을 ‘전원으로 돌아가자‘라는 능동적 의지로 위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 하는,
슬며시 솟아오르는 의혹을 그러나 발뒤꿈치로 슬쩍 뭉개버린 채, 나는 여전히 눈물나게 따뜻한 나라 제주도의 꿈에 코를 처박고 있는 중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찬휘가 싱글싱글 웃으면서 가사를 옮겨 적었다. 정말 보통 녀석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와중에도 나는 그애를 한번이라도 더 보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었다. 사실 이찬휘의 실물을 처음 마주한 순간부터, 그애가종이에 무언가를 적거나 태블릿PC를 들여다보고 있거나다른 조원들과 이야기하고 있을 때, 그러니까 그애의 시선이 다른 곳을 향하고 있을 때마다 나는 그애의 얼굴을허겁지겁 눈에 담았고 면밀히 훑었다. 끊임없이 바쁘게힐끔거렸다.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마치 그애를 보고있는 동안은 무언가 좋은 것이 내 주머니로 와르르 쏟아져 들어온다는 듯이. 그래서 마지막까지 하나라도 더 필사적으로 주워 담으려는 듯이.

나는 뭐라도 대답해보려 입을 벙긋, 열었으나 할 말이없어 다시 닫은 채 이찬휘가 말한 그 소절을 머릿속으로다시 불러봤다. 침착하게 복기했다. 그리고 인정해야 했다. 내가 고음을 시작하는 부분과 연음 부분에서 아주 약간, 이찬휘가 흉내 낸 그런 방식으로 부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하지만 그게 잘못되었다고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여태껏 그런 건 창법이나 기교의 일종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왜 이제 와서? 내가 물었다.

뒤이어 손차양을 만들어 유리문에 딱 붙이고 안을 들여다봤다. 분명 문밖에 영업 중이라는 팻말이 걸려 있었사이의 유리 너머로 보이는 홀과 주방에고, 나무 격자모두 불이 환히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