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리다는 엄청난 영향력을 지닌 자신의 책 《우정의 정치학》에서 두 사람이 강조한 동질성 개념, 즉 ‘다른 자아‘로서의 우정이라는 개념이 철학적 관점에서 얼마나 문제가되는지 규명했다. 데리다는 우정에 대한 대부분의 고전적담론이 다른 사람, 즉 동일한 성향을 가진 - 그리고 동성의-두 사람 사이의 합일에만 초점을 맞췄다고 했다. ‘동질성‘ ‘동성애‘ ‘동등한 가문 출신, 태생부터 동일한 공동체에의해 형성된 친화력‘에만 초점을 맞추었다는 뜻이다."

서양 정신사Geistesgeschichte는 상류층 이성애자 백인 남성들 간의 우정이 아닌 것은 전부 무시하고 폄하하고 조롱했다. 모든 증거에 반하는 폭력적 주장이 아닐 수 없다. 그건 아마도 이런 우정이 가부장적 지배 구조에 위협이 될 거라는 인식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또한 동질성에 근거하지 않고 삶의 다양성을 찬미하는 우정관이 어떤 폭발력을가졌는지 본능적으로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위트레흐트대학에서 진행된 비슷한 연구에서도 친구를 선택할 때 ‘제2의 자아‘라는 개념이 실제로 어떤 역할을수행하기는 하지만 생각했던 것과는 판이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학생들은 우정을 맺기 위해 서로 닮을 필요가 전혀없었다. 오히려 그들은 전혀 닮은 점이 없는데도 자신들이비슷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나르시시스트의 재인식과 비춰보기 욕망에 굴복한 것이다. 그들은 자신과 생각이 같은 사람을 만났다고 생각하고 그 사람한테서 자기자신의 모습을 인식하고 재발견한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만난 친구들을 돌이켜 보면, 친구의 숫자만큼이나 다들 개성이 제각각이다. 아름다운 사람도 있고, 제약이 많은 사람도 있고, 사랑스러운 사람도 있고, 냉정한 사람도 있다. 흥분을 잘하는 사람도 있고, 재미없는 사람도 있다. 눈이 번쩍 뜨이게 만드는 사람도 있고 짜증 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중 어느 누구도동일함의 이상에 부합하지 않고 누구와도 늘 화기애애하지는 않다. 우정이라는 단어의 의미론이나 시대에 뒤처진 우정의 이상은 현실 속 실제 우정에서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간단히 말해, 우정에는 그 어떤 규칙도 없고, 함축적이든명시적이든 어떤 규약도 없으며, 계약 같은 것도 존재하지않는다. 우정 문제에 관해서는 제재권을 가진 법도 없고 외부의 강제도 있을 수 없다. 단지 나와 상대방, 그리고 우리사이에 생겨나는 우정이 있을 뿐이다. 실재하는 것들만 그럴 수 있는 것처럼 우정은 완벽하게, 그리고 완벽하지 않게 우리의 삶에 얽혀 있다.

몇 주 동안 집에서 혼자 끙끙 앓으면서 계속 독서와 글쓰기로 소일하는 동안 나는 거의 살아 있는 게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내 인생에 소중한 사람들과의 대화는 중단되지 않았다. 거리감과 친밀함을 동시에 느끼게 해준 그들과의 대화로 세상에 대한 그들의 시각을 엿볼 수 있었다. 나는 친밀함을 요구할 수 있었고 내 삶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놀랍게도 나는 외로움을 느끼지않았다. 근본적으로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

비록 혼자 사는 삶에 외로움이 빠질 수 없다 해도 그런삶이 반드시 외로운 것은 아니다. 나는 혼자 있는 삶이 두렵지 않다. 종종 외로움에 시달리기는 하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외로움을 결핍이 아니라 즐길 거리로 생각한다. 게다가 나는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하고, 내 집은 정확히 내 미적취향에 맞춰져 있다. 나는 계절에 따라 변하는 일상적 리듬을 따라가는 것을 좋아하고 그런 내 취향에 대해 어느 누구한테도 변명할 필요가 없는 것도 좋다. 물론 나는 내 삶에서 무언가를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눈다. 하지만 혼자 있는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프롬 라이히만에 의하면, 이런 회피 전략은 정신치료과정에서도 멈추지 않는다. 외로움은 상대방 곁에 있을 때소위 ‘전염의 공포’라는 특별한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심리치료사들도 여기서 벗어날 수 없다. 그것 때문에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이 아주 미약한 외로움에 시달릴 때조차 자신의 외로움을 이야기할 기회를 거의 얻지 못한다. 외로움이 사람들과 충분히 대화할 수 없는 공포스러운 비밀이 되는 것이다.

일을 하지 않을 때 나는 충격적인 뉴스들을 검색했다.
특히 예전에 살아본 적이 있거나 한때 체류했던 국가의 뉴스들을 찾아봤다. 무능한 정치로 인해 많은 국가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독일에서는 위기 정책이 과거보다 이성적으로 작동하는 듯했다. 뉴욕과 런던에 있는 친구들이 걱정됐지만 간간이 주고받는 이메일과 통화는 아무런 힘이없었다. 한때 내게 몹시 중요했던 뉴욕과 런던의 삶이 돌이킬 수 없는 전환기를 통과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기본적으로 클라인은 외로움을 느낄 때 종종 수반되는참을 수 없는 감각상실 현상에 대해 심리분석적 측면에서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우리는 모두 이 세상에 혼자 던져졌다. 일반적으로 우리의 정신은 이 불가피한 실존적 외로움을 통찰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다. 우리는 대체로 자신이정말로 이해받고 있고 자신 또한 다른 사람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는 판타지 속에서 살고 있다. 클라인은 이런 판타지가 붕괴되면서, 즉 우리는 이 세상에서 혼자가 아니라는 허구가 무너지면서 외로움의 고통이 생겨났다고 했다.
또한 그 고통은 우리가 믿고 있던 판타지가 실은 허구에 다름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하면서 생겨난 것이다.

나는 때로는 비교적 잘 대처했고, 때로는 잘 대처하지못했다. 어쩌면 그건 내가 느낀 외로움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질병에 걸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내 소중한 사람들의 건강에 대한 염려, 그리고 인간에 대한 경멸감으로 예방수칙을 철저히 무시하고 팬데믹을 가속화시키는 사람들에대한 분노 때문이었다. 아무튼 예외적 상황이 너무 오래 지속되고 있었다. 나는 끝없는 임시방편 조처들에 지쳐 비틀거리고, 숨을 죽인 채 하루하루를 겨우 버티며 살아가고 있었다.

이런 상황은 특히 혼자 남겨졌을 때 힘들다. 언젠가는제 삶에서 늘 중요한 역할을 할 거라고 믿었던 친구한테서두 번째, 세 번째 줄로 밀려나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우선순위가 뒤로 밀리는 것을 기분 나빠할 필요는 없다. 입장을 바꿔 내가 그 상황이라도 비슷하게 했을 테니까. 세월이흐름에 따라 변하는 게 모든 우정의 속성이니까.

여러 가지 면에서 혼자 사는 사람의 인생 전체는 폴린보스가 말한 ‘모호한 손실‘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다. 그들은 이제는 없는, 또는 아직은 없는 파트너 때문에 슬퍼한다. 그들은 확신과 슬픔, 강박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면서 응급처치 차원에서 둘이 함께하는 삶이라는 이념으로부터 결별을 시도한다. 그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삶을 보류한다. 앞으로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기 때문이고, 그렇다고 혼자 사는 삶을 고착시키는 발걸음을 내디디고 싶지도 않기 때문이다.

나는 오랫동안 친밀과 사랑에 관한 판타지에서 부족함을 느낀 적이 없다. 부족하기는커녕 오히려 판타지 과잉 상태였다. 하지만 모호한 손실들과 포기해야 했던 인생 계획들이 하나둘 쌓이면서 내게 꼭 필요한 판타지들조차 제대로 유지할 수 있는 힘이 사라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판타지들을 계속 품고 가느니 차라리 그것들과 결별하는 쪽을 선택했다. 그게 더 의미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나물론 나는 희망이 없다는 말이 내가 느낀 바를 제대로 표현하고 있는지 자문했다. 아무튼 나는 상황이 더 막히고 더 절망적인 것 같이 느꼈다. 이와 관련해 롤랑 바르트가 그의 책 《어떻게 더불어 살 것인가》에서 도입한 ‘아케디아Akedia‘라는 개념이 내 가슴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바르트는 원래 기독교에서 유래된 이 단어를 ‘답답함‘ ‘괴로움‘ ‘메마른 심장‘으로 해석했다. 그에게 아케디아는 사랑에 대한 믿음의 상실이 아니라 사랑에 대한 흥미의 상실을 의미했다. 그는 아케디아를 사랑에 대한 ‘무관심과 사랑의 ‘무능력‘으로 정의하고 이 상태를 보다 정확하게 묘사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어떻게 내 삶의 관대함으로혹은 사랑으로 돌아가야 할지 몰라서 두려워하는-
것. 어떻게 사랑하지?" 내가 느낀 게 바로 그거였다. 내가자문했던 것도 바로 그거였다.

나는 그건 동성애자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이라고 믿는다. 여성 동성애자든남성 동성애자든 양성애자든 트랜스젠더든 상관없이 그는우리 같은 많은 사람의 편을 드는 것처럼 보인다. 종종 아무리 좋은 의도였더라도 우리가 젊었을 때 자주 듣던 경고였다. 우리의 이질성이 우리를 사랑 없이 혼자서 살아가게할 거라는 이야기 말이다.

특히 동성애자들의 삶에서 수치심은 단순한 하나의 감정 이상이다. 이브 코소프스키 세지윅은 수치심을 일종의자유로운 급진주의라고 불렀다. 그는 수치심이 자신의 몸에 대한 우리의 이해, 특정한 태도, 우리의 감정과 욕정 등거의 모든 것과 연관되어 있을 뿐 아니라 모든 것의 의미를 바꿀 수 있다고 했다. 세지윅은 동성애자의 수치심이 우리의 모든 관계에 영향을 미치고,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의방식까지 규정한다고 했다."

수치심은 감출수록 더 커진다. 란차로테섬에서 나는처음으로, 팬데믹으로 인해 오랫동안 혼자 지내면서 겪은삶의 문제는 내가 오로지 내면의 대화에만 집중한 탓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 스스로 알아차리지도 못한 채 마음속으로 나 자신을 비난하고 트집 잡고 창피해하고 있었던이다. 혼자서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그런 생각을 떨쳐버릴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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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가을, 나는 종종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의 유명한명제 ‘거대 서사의 종언‘을 떠올리곤 했다. 리오타르는 이미 칠십 년대 말 자신의 책에서 ‘포스트모던 시대의 지식‘
을 제시했다. ‘거대 서사의 종언‘이란 문구는 소설의 형식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근본적인 신뢰상실을 표현한 문구다. 여기서 그가 주목한 ‘서사‘는 정치와 철학이었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두 영역 가운데 어느 한쪽도 자신에게 그 자체로 구속력 있는 ‘합리성‘이 있다고 주장할 수 없었다.

오늘날 우리의 불행이 개인적 실패로 규정될 때가 많다. 실제로는 전적으로 세상과 사회에 대한 타당한 반응일수도 있는데 말이다. 애인이 없는 것 또한 일반적으로 개인의 실패로 인식된다. 매력 결핍, 경제적 빈곤, 정신적 불안정 등으로 보는 것이다. 혼자 사는 사람한테는 늘 이런 식의 억측이 따라다닌다. 특히 동정심과 혐오, 저들보다는 내가 낫지, 하는 은밀한 우월감을 얼굴에 내비치는 사람들 역시 어디에나 존재한다.

우정은 오로지 자유의지에 근거한 유일한 관계이다.
두 사람은 상호 동의하에 다양한 수준으로 교류하고 함께시간을 보내며 서로를 배려한다. 우정은 태어날 때부터 나름의 의식과 의무를 가진 가족 관계와는 다르다. 또한우정은 일반적으로 배타성을 기초로 한 연인 관계의 규칙들과도 전혀 상관없다. 우정은 연인 관계에서 중시되는 욕망과도 전혀 상관없다. 우리는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를 고려해 친구를 선택하며, 반대로 나 역시 그들의 기준에 의해친구로 선택된다.

우리가 가족 관계나 연인 관계와 비교해 우정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이유는 어쩌면 우정을 명확히 규정하는 게매우 힘들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오직 사랑만이 거대 서사를 요구할 수 있다. 우정은 작은 서사들을 수반한다. 미리만들어진 모범 사례들을 마지못해 따라가는 수많은 작은서사들 말이다.

하지만 과연 로맨틱한 연애 없이 혼자서 좋은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친밀함에 대한 우리의 욕구를 과연 우정으로 달랠 수 있을까? 이런 식의 삶의 모델이 과연 사람들한테 얼마나 인정받을 수 있을까? 언젠가 친구들 대부분이배우자나 반려자를 찾고 나만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것 같은 느낌이 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바꿔 말해, 아프지도 않고 거짓말을 하지도 않고 독신생활을 꾸려가는 법을어떻게 배울 수 있을까? 이게 바로 답을 찾지 못한 나의 질문들이었다.

우리가, 특히 혼자 사는 사람이 우정을 쌓는 것은 아마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일 것이다. 현실의 발판을 잃지 않기위해서, 시대의 변화와 증가하는 엔트로피에 조금이라도대항하기 위해서, 그리고 내일의 기회를 잡기 위해서. 또한어쩌면 우정은 자신감과 포기와 수용의 연습이 아닐까? 위압적인 세상의 현실에 직면해 더 이상 상상할 수 없는 미래를 그려보려고 할 때 혹시 우정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아니면 적어도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믿음을 잃고 싶지 않을 때 우정이 아주 약간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정말 내가 그렇게 믿고 있었던 건지 아니면 단지 그렇게 믿고 싶었던 건지 잘 모르겠다.

자부심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그중 몇 가지는 치유 효과가 있다. 다른 것들은 인생에서 거의 극복하기 힘든 장애가 될 수 있다. 나는 내 일에 자부심을 느낄 때가 극히 드물다. 일이 내게 얼마나 많은 고통을 안겨주었는지와는 상관없다. 내가 그 일을 얼마나 잘하는지도 상관없다. 내가 쓴책이 출간되고 나면 나는 그 책을 다시 읽고 싶지 않다. 내글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 의해 쓰였다는 느낌이 들기 전까지 적어도 몇 년 동안은 그렇다. 또는 시간이 아주 많이흘러 어떤 면에서는 실제로 다른 누군가에 의해 그 글이 적힐 때까지는 말이다. 나는 이루고자 했던 많은 것들을 성취했고 그게 얼마나 좋은 것인지, 또 얼마나 감사해야 할 일인지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내가 이룩한 삶에 대해 실제로 자부심을 느껴본 적이 거의 없다.

때로는 그런 행동들이 도움이 된다. 하지만 때로는 그게 강박관념이나 조증으로 변해 정신 상태를 무너뜨리려 한다. 아직 본격적인 우울증이라 할 수는 없지만 우울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그 상태가 몇 주 내지 몇 달 동안 내 삶을 완전히 장악해버린다. 그 단계가 되면 갑자기 모든 게 시들해진다. 일 년중 가장 긴 시간 동안 나를 지탱해주던 자기 환상이 깨져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삶의 근거로 삼고 있는 고의적 망각에 실패한다. 어떤 상태인지 더 잘 설명해 보자면,
그건 마치 중요한 판타지를 상실한 것 같은 기분이다. 결국나는 혼자 사는 내 삶이 좋은 삶이라는 믿음을 버린다.

호숫가에 자리한 보세주르라는 이름의 호텔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훌륭했다. 두 명의 호텔 공동대표는 ‘좋은 체류‘라는 뜻의 이름이 약속한 모든 것을 지켰다. 나는그들의 관대함에 감동했다. 그들은 내게 집기가 구비된 작은 사무실과 호수와 산이 보이는 전망 좋은 침실을 제공했다. 아침이면 침대에 누운 채 해가 뜨는 풍경을 볼 수 있었다. 발코니에 앉아 담배를 피울 때면-사 년 전 다시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 이래 아직 금연에 성공하지 못했다―잔잔한 호수의 수면 위를 유유히 스쳐가는 커다란 흰색 증기선이 보였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겨울 하늘과 눈 덮인산맥을 배경으로 필라투스산과 뷔르겐스톡, 그리고 리기산을 향해 항해 중인 유람선이었다. 그걸 보고 있노라면 세상이 이토록 아름답고 신비로울 수 있다는 것에 절로 감탄이나왔다. 정말이지 엄청난 위로였다.

친밀하거나 밀접한 사이가 아닌 관계들 역시 우리와우리의 심리적 균형에 중요하다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는친밀한 친구와 가족, 동반자로 구성된 범주 안에서만 사는게 아니다. 우리는 훨씬 더 넓은 사회적 범주들 안에서 활동한다. 일반적으로 ‘네트워크‘라고 부르는 이것은 때때로복잡하게 얽혀 있지만 일반적으로 우리 일상에 생각보다훨씬 큰 영향을 미친다."

피어발트슈테터호수 호숫가에서 체류할 때 만난 나의이 새롭고 작은 ‘네트워크‘에서 특히 좋은 인상을 준 태도들 가운데 하나는 기본적이고 사려 깊은 친절이었다. 베를린의 일상에서는 종종 아쉽게 생각했던 부분이다. 친절은종종 지루하고 솔직하지 않은 태도라는 의심을 받는다. 게다가 왠지 고루하고 딱딱하고 시대에 뒤처진 개념 같아서오늘날의 신자유주의 정신에는 맞지 않는다. 만약 사회가당연하게 구성원들을 승자와 패자로 나누면 어쩔 수 없이필요한 사람만 친절한 사회가 될 것이다.

살아오는 동안 나는 이미 많은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입혔다. 때로는 고의로, 때로는 무의식적으로, 때로는 부주의해서, 물론 나 자신도 마음의 상처를 많이 입었다. 내가항상 사람들한테 친절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친절하게 대하려고 노력했다. 우리는 상대방이 보여주는얼굴 뒤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절대 알지 못한다.
다른 사람들이 어떤 인생 행로를 걸어왔는지, 그들이 날마다 무엇과 씨름하는지 절대 알지 못한다. 겉으로만 보면 사람들은 늘 우리가 느끼는 것보다 훨씬 강해 보인다.

자존심 때문에 세상에 감정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나머지 자신은 고통을 전혀 안 느낀다고 스스로 최면을 거는게 고통을 목도하고 그것과 씨름하기보다 훨씬 더 쉽다. 하지만 무릇 감정이란 그게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느끼고받아들이고 극복해야 한다. 혼자 사는 삶은 때로는 아프고때로는 아프지 않다. 제대로 혼자 살기 위해서 때로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한다. 아니면 적어도 새로운 방법이 있을수 있다는 가능성에 마음을 열어야 한다. 때로는 호수나 산을 찾아갈 용기를 내야 한다. 겨울 태양을 향해 고개를 들어야 하고, 나와 함께 그 길을 걸어가고 있는 친절한 사람들에게 의지해야 한다. 자부심에 여러 종류가 있듯이 혼자살 수 있는 방법들 또한 여러 가지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외로움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 법이다.

우정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의 핵심 중 하나는정체성에서 드러나는 동질성이라는 개념이다. 나는 이것을대학 시절 첫 강의를 함께 들은 몇몇 친구들과의 만남에서경험했다. 《니코마코스 윤리학》 이후로 늘 우정은 생각이같은 사람들, 즉 세상을 동일한 방식으로 인식하고, 살아오면서 비슷한 경험을 쌓고, 정치적으로도 동일한 입장을 대변하고, 심리적, 정서적 가치관과 전기적 배경이 비슷한 사람 간의 관계로 정의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진정한 우정은 ‘동질성과 일치‘를 통해 생겨난다. 즉 우정은다른 사람에게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재발견하고, 거꾸로‘친구’에게서 ‘분리된 제2의 자신‘을 발견할 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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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사람들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행동이 있는 반면에………… 사회가침묵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있다. 사회는 명명할 수 없는 이런 것들을느끼는 사람들에게 고독과 불행을 안겨준다. 어느 날 갑자기, 혹은 서서히 그 침묵이 깨진다. 그 감정들이 이름을 하나씩 획득하고 마침내인정을 받게 되는 반면, 그 아래로 또 다른 침묵이 형성된다.
《세월》, 아니 에르노

아마 내가 느낀 감정에 대한 가장 적합한 표현은 ‘도덕적 상처‘일 것이다. 이것은 종군기자들의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에 대한 연구에서 유래된 개념으로, 심리적 상처로 인해 현실이해에 장애가 생긴 것을 의미한다. 주로 심각한 사건을 함께 겪어야 했으나 본인은 개입할 수 없는 경우에 발생한다.‘ 비록 우리 삶이 전쟁 뉴스에 나오는 사람들의 삶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한 가지 비슷한 딜레마가 있다. 우리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공포스러운 사건들을 추적하는데, 이때 대부분이 무기력에 빠진다. 자기 자신과 세상에 대한 나의 이해에 비추어 볼 때 이미 오래전부터 그것을나의 도덕적 기준에 대한 고통스러운 공격으로 여길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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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서 만나리휘돌아 얼싸안고 소용돌이치며만나서도 마음놓고 살 섞고 싶어뒤돌아보는 물굽이반쯤은 넋 놓고반쯤은 눈 감고몇길 물속은 숨죽여 흐르지만나란히 흐르다 이따금 건너다보던남과 북의 두물머리끝내는 만나서 이마 부비며멈칫거리며 흐느끼며천천히 한 빛깔로 태어나리맨몸 뒤척이며서로 다른 체온 낯설어하며

해 어스름푸른 숲 위를 맴돌던 새 한 마리한순간 숲속으로 떨어지듯 내려앉는다다시는 떠오르지 않고 대신바람 한줄기 어지러이 숲을 흔든다어머니 먼 길그렇게 보내고 말았다

젖은 종이처럼 달라붙는 습기 속에드러누워 나를 썩힌다썩히는 일의 깊은 경건함굳은 빵과 짓무른 채소와 먹다 남은 과일들집 안의 먼지 쌓인 구석구석까지휘감기는 축축한 혓바닥우울과 비관과 낙심을 뒤섞어형체도 없이 썩히고 썩혀서뭉글뭉글 아름다운푸른곰팡이 한 무더기

우는 아이를 업고낯선 길을 한없이 헤매었다길 위에 던져진 무수한 신발들 중에내 신발 찾다 찾다 잠이 들었다붉은 황톳물 넘치는 강을 내려다보며해가 지도록 울었다. 제가그렇게, 한 해가 갔다

가을 금산사 가서절은 안하고보리수나무 아래 서성이다노스님 손등 같은 보리수 잎 하나책갈피에 넣어왔다입 다물고 눈 감은 부처바로 보지 못하고보리수나무 아래가을 땡볕 피하다공양간 밥만 축내고 왔다

마비된 내 육신 내 영혼을
끝없이 끌고 다니는
내 영원한 적인그대는 누구인가

미궁 같은 이 도시, 밤이면 하마
달이라도 뜰까 별이라도 돈을
까마른 입김 불며 불며
유리창을 닦는다

나는 더이상불만의 뿌리가 되기를 원치 않는다.
철강과 늑골과 소나무로 엮인일정한 규격의 도시를 멸시한다대지의 가장 깊은 자궁에서 태어난내 아기의 손바닥이더이상 더럽혀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꿈이란 원래 갈기갈기 찢어진 안개더미 같은 것단, 이 금기는 기한이 있소Kos구멍난 벽을 빵과 소금으로만 채우려는 자들이그대의 지붕 위를 떠날 때까지!

더욱 연마된 우리의 신음소리다시 돌아선 무대 단단히 목 조이며막을 올린다무대를 적시는 땀방울다시는 퇴장당하지 않기 위해

우리가 원하는 것은눈의 사치가 아니라 한모금의 냉수였다.
저 높은 산정과 그 위에서부내려다보고 섰는 몇그루 나목과그나목이 떨어뜨리는 몇방울의 땀이었다동행이여스스로의 땀으로 채우는 갈증이 갈증이 갈증으로 끝나기야 하겠는가가장 힘든 것은가장 쉽게 이루어지는 것을이 은밀한 모의가 끝날 때이 허명(虛名)의 흰 벽이 녹아 흐를 때

가로수는 정직하다 자신이 차지한몇 평방미터의 면적과 늘 만나는 거리의 몇점 풍경과팔만 뻗으면 언제나 닿는 쾌적한 공기를 기억한다이마 위에 내려앉는 서릿발이나어느날 새벽의 유황빛 하늘에 놀라지 않고가지에 찢긴 연기나 혹은겨드랑이에 숨겨둔 마파람에똑같이 당당하다

달이, 그 희고 빛나는 팔을 뻗어칠흑 어둠에 묻힌집과 가로수와 행인 들을하나씩 건져내고 있다곁에서 참담한 눈빛으로 지켜보고 있는수천만의 별들

다시 돌이키기를 원치 않으므로옛날은 다만 옛날일 뿐돌이키기를 원치 않으므로라고 얘기하는너의 앞에 비로소 얘기해야지

절망의 한가운데서도 아직 색칠하지 않은너의 욕망낡은 벽, 흔들리는 불빛다 마셔버린 술병처럼 공허한 방 안에서넌 이제 얼마만큼 수척해져가고 있는지

아침의 붉은 햇살과 저녁의 녹슨 바람이 만날 땐지나가던 작은 미물도 이마를 맞대고 입맞춤을 한다만나기 힘든 시간들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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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가 놀랄 정도로 자기 방식대로 엄마가 될 수 있었던
"5덕분에 그녀는 모성을 즐길 수 있었다. 그녀는 일기에 썼다. "자식의 아름다움은 내가 최근에야 가담하게 된 음모다." 그녀는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강렬한 느낌을 갖고 있었고, ‘너는 이런사람이야‘라고 남들이 말하는 것 이상의 존재가 되고자 했다.
그것을 평범한 가정생활과 결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그녀는오랫동안 생각했다. 파트너와 함께 자신의 방식으로 모성을 정의하는 일을 해내게 될 때까지는

답변하기 전 그녀는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더니 한두 번인가 "음・・・・・・." 하고 말했다. 그리고 답했다. "내 작품은 강철칼날로 어떤 남자의 자지 밑동을 잘라버리는 얘기지."
쉬는 시간이 되자 강의실은 텅 비었고, 확실치는 않지만 열네 명쯤 돌아왔다. 어쩌면 열한 명이나 열둘 밖에 안 됐는지도모르고

그녀는 여전히 탐색하며 성장하고 있는 반면, 폴은 자신을만족시켜준 삶에 안주해 있다고 앤절라는 느꼈다. "아니, 도대체내가 왜 결혼을 했을까?"라고 그녀는 일기에 적었다. "나는 계속나아가고 싶다. 폴을 떠나서가 아니라 폴과 함께. 하지만 그는나처럼 발이 가볍지 않지. 처음으로 자신이 그들의 감정적 불평등에 공모하고 있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그를 돕기 위해 내가 노력하고 성장할 때, 변화에 굴복할 때, 그냥 넘어가고 다정하게 행동하고 좋은 아내가 해야 하는 모든 일을 할 때, 내 좆 같은 이해심과 친절한 가슴으로 나는 매일매일 모든 방면에서 나자신을 가둘 더 좋고 튼튼한 우리를 짓는 셈이지 "

플러는 이렇게 생각했다. "글쎄, 우리 모두는 사람들이 아기들한테 무슨 말을 하는지 안다. 사람들은 말한다. ‘자, 어서, 일어날 시간이야. 여기에다 발 넣어. 이제 우리 간다. 여기저녁밥이야. 우린 그냥 아기들한테 중얼중얼 말한다. 하지만 앤절라는아기들이 완벽하게 지적인 존재들이고, 이 모든 중계방송이 필요치 않다고 생각하는 게 분명했다. 아마도 그녀는 아기를 일종의 열등한 종으로 여길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녀가 생각하기로 아기는 동등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

소설의 결말부에서 흥청망청한 생일 파티가 열리는 동안, 노라 챈스는 옛사랑과 짝을 이루는데, 그가 그녀와 그녀의 쌍둥이여동생 도라에게 기적의 선물을 안겨준다. 바로 그들이 직접 키울 쌍둥이 아기들이다. 챈스 자매는 얼마 전 75세가 된 참이지만, 개의치 않는다. 파티에서 떠날 때, 그들은 뒤늦은 모성이라는 정규직을 수행하기 위해 최소 20년은 더 살기 위한 계획을세운다.

돌봄 노동은 시간을 변화시킨다. 인간을 과거와 미래에 연결시키고, 우리를 현재에 묶어두며, 동시성을 요구하고, 자아의순간들을 허용할 뿐 아니라, 우리를 노스탤지어와 미래성에 위탁하면서 말이다. 카터의 소설은 노라 챈스가 새로운 시작을 위해 젖병과 분유를 사러 24시간 약국으로 향하면서 다음과 같은문장으로 끝난다. "이런 영예로운 멈춤은, 진실로 말하건대, 불협화음을 내지만 상호보완적인 우리 삶의 서사 속에서 때때로일어난다. 만일 당신이 거기서 이야기를 멈추기로 선택한다면,
그렇게 멈춰선 채 더 멀리 나아가길 거부한다면, 당신은 그걸 해피엔딩이라고 불러도 좋다.

협조적인 파트너를 찾아라. 스스로의 힘으로 해내라. 아이를 먼저 낳고 그 후에 경력을 쌓아라. 경력을 먼저 쌓은 뒤에 아이를가져라. 돈을 벌어라. 복지제도를 활용하라. 아이는 하나만, 아니셋 정도, 뭐 일곱정도 낳아라. 닫힌 문 뒤에서 작업을 하고,
거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책상 위에 아기를 올려두고 글을 써라.
"어떻게 하면 자신의 적성과 관점, 자립성과 생각을 포기하지 않고 아이를 키울 수 있을까?" 이 질문의 답은 하나가 될 수없다. 이 책에 등장하는 여성들을 보면, 어느 정도 ‘무법자 같은모성‘이나 함께 같은 길을 걷는 친구들이 도움이 된다는 것을알 수 있다.

어머니의 시간은 앨리스 닐과 앤절라 카터의 경우처럼 "지연된 모성의 시간이며, 르귄의 경우처럼 작가이자 어머니라는동시적 존재의 시간이고, 바이엇의 경우처럼 끝나지 않은 연속적 슬픔의 시간이자 로드의 경우처럼 미래 시제로 된 변화의 시간이기도 하다. 앨리스 워커의 어머니를 그녀의 아이들과 정원으로부터 멀어지게 한 것은 착취적이기까지 한시간 빈곤이다.
정체된 커리어의 일시적 밑바닥. 빠른 속도로 흐르는 암페타민의 시간. 아이들이 집을 떠나 독립하면 곧장 풀려버리는 시간의 매듭.

시간과 더불어 창작자 엄마가 가져야 할 두 번째는 자기(self)이다. 자신에게 예술을 창조할 권리가 있다는 확신과 자기 둘레의경계선이 필요하다. 자기 존재의 조각을 여기저기 거저 줄 필요는 없다.

나는 이 형상들이 필연적 공허함, 에이드리언 리치가 예술의 "크리애트릭스(creatrix, creative+matrix), 예술의 매트릭스"라고부른 "빈 공간"을 포함한다고 생각한다. 르 귄은 그 공간을 물을운반하는 항아리처럼 진리를 담을 수 있는 용기이자 잠재력으로 묘사했다. 헵워스의 가장 아름다운 조각품 중 일부는 둥글고속이 빈 형태에 팽팽한 철사가 달려 있는데, 이 작품들 또한 모성적인 것으로, 강렬한 감정, 강렬한 통제, 그리고 견딜 수 없는침해 가능성(availability)에 대해 말하는 것 같다.

이 이야기에서 제외된 사람들은 유용한 것들을 찾아 집으로 가져오기 위해 화살보다 훨씬 더 오래된 발명품인 가방이나그물을 사용하는 수집 채렵인이다. 운반가방은 크로노스에서일어나는 모성 서사(marternal story)의 형상일 수도 있고, 만성적시간, 신체, 성, 자아, 시간 자체와는 관련 없는 숙고를 낳는 시간일 수도 있다. 나는 내가 관찰한 것들과 여러 일화를 비롯해 눈에 띄는 모든 유용한 것들을 수집해 이 책을 어머니들의 생각과경험, 기쁨과 고통, 자기상실과 자기형성의 운반가방으로 만들기위해 노력했다.

완수할 수 없는 과업이 주어지자, 방앗간 주인의 딸은 도깨비와의 거래를 통해 스스로 목숨을 구하고, 왕과 결혼한다. 남편의 성에서 그녀는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강해져야 했다. 결혼1년 후, 그녀를 도왔던 작은 도깨비가 찾아와 그녀의 첫째 아기를 대가로 요구한다. 그녀는 풍부한 지략을 이용해 숲에서 도깨비의 이름을 알아냈고, 자신의 이름을 대면 아기를 빼앗지않겠다는 도깨비의 수수께끼를 풀어 아기와 모성 모두를 지켜낸다.

이 책을 쓰는 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다닐 때 이 책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는데, 책을 마치고 보니둘 다 대학생이 돼 있었다. 길고 느린 팬데믹 시대가 아이들의인생 계획을 바꾸었고, 여전히 아이들은 집 안팎을 오가며 살고있다. 그들의 팔다리는 더 이상 옷소매 바깥으로 자라나지 않는다. 그들의 몸에서 일어난 점진적 성장의 흔적은 여전히 부엌 벽에 수직을 따라 연필로 기록돼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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