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서 만나리휘돌아 얼싸안고 소용돌이치며만나서도 마음놓고 살 섞고 싶어뒤돌아보는 물굽이반쯤은 넋 놓고반쯤은 눈 감고몇길 물속은 숨죽여 흐르지만나란히 흐르다 이따금 건너다보던남과 북의 두물머리끝내는 만나서 이마 부비며멈칫거리며 흐느끼며천천히 한 빛깔로 태어나리맨몸 뒤척이며서로 다른 체온 낯설어하며

해 어스름푸른 숲 위를 맴돌던 새 한 마리한순간 숲속으로 떨어지듯 내려앉는다다시는 떠오르지 않고 대신바람 한줄기 어지러이 숲을 흔든다어머니 먼 길그렇게 보내고 말았다

젖은 종이처럼 달라붙는 습기 속에드러누워 나를 썩힌다썩히는 일의 깊은 경건함굳은 빵과 짓무른 채소와 먹다 남은 과일들집 안의 먼지 쌓인 구석구석까지휘감기는 축축한 혓바닥우울과 비관과 낙심을 뒤섞어형체도 없이 썩히고 썩혀서뭉글뭉글 아름다운푸른곰팡이 한 무더기

우는 아이를 업고낯선 길을 한없이 헤매었다길 위에 던져진 무수한 신발들 중에내 신발 찾다 찾다 잠이 들었다붉은 황톳물 넘치는 강을 내려다보며해가 지도록 울었다. 제가그렇게, 한 해가 갔다

가을 금산사 가서절은 안하고보리수나무 아래 서성이다노스님 손등 같은 보리수 잎 하나책갈피에 넣어왔다입 다물고 눈 감은 부처바로 보지 못하고보리수나무 아래가을 땡볕 피하다공양간 밥만 축내고 왔다

마비된 내 육신 내 영혼을
끝없이 끌고 다니는
내 영원한 적인그대는 누구인가

미궁 같은 이 도시, 밤이면 하마
달이라도 뜰까 별이라도 돈을
까마른 입김 불며 불며
유리창을 닦는다

나는 더이상불만의 뿌리가 되기를 원치 않는다.
철강과 늑골과 소나무로 엮인일정한 규격의 도시를 멸시한다대지의 가장 깊은 자궁에서 태어난내 아기의 손바닥이더이상 더럽혀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꿈이란 원래 갈기갈기 찢어진 안개더미 같은 것단, 이 금기는 기한이 있소Kos구멍난 벽을 빵과 소금으로만 채우려는 자들이그대의 지붕 위를 떠날 때까지!

더욱 연마된 우리의 신음소리다시 돌아선 무대 단단히 목 조이며막을 올린다무대를 적시는 땀방울다시는 퇴장당하지 않기 위해

우리가 원하는 것은눈의 사치가 아니라 한모금의 냉수였다.
저 높은 산정과 그 위에서부내려다보고 섰는 몇그루 나목과그나목이 떨어뜨리는 몇방울의 땀이었다동행이여스스로의 땀으로 채우는 갈증이 갈증이 갈증으로 끝나기야 하겠는가가장 힘든 것은가장 쉽게 이루어지는 것을이 은밀한 모의가 끝날 때이 허명(虛名)의 흰 벽이 녹아 흐를 때

가로수는 정직하다 자신이 차지한몇 평방미터의 면적과 늘 만나는 거리의 몇점 풍경과팔만 뻗으면 언제나 닿는 쾌적한 공기를 기억한다이마 위에 내려앉는 서릿발이나어느날 새벽의 유황빛 하늘에 놀라지 않고가지에 찢긴 연기나 혹은겨드랑이에 숨겨둔 마파람에똑같이 당당하다

달이, 그 희고 빛나는 팔을 뻗어칠흑 어둠에 묻힌집과 가로수와 행인 들을하나씩 건져내고 있다곁에서 참담한 눈빛으로 지켜보고 있는수천만의 별들

다시 돌이키기를 원치 않으므로옛날은 다만 옛날일 뿐돌이키기를 원치 않으므로라고 얘기하는너의 앞에 비로소 얘기해야지

절망의 한가운데서도 아직 색칠하지 않은너의 욕망낡은 벽, 흔들리는 불빛다 마셔버린 술병처럼 공허한 방 안에서넌 이제 얼마만큼 수척해져가고 있는지

아침의 붉은 햇살과 저녁의 녹슨 바람이 만날 땐지나가던 작은 미물도 이마를 맞대고 입맞춤을 한다만나기 힘든 시간들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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