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가을, 나는 종종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의 유명한명제 ‘거대 서사의 종언‘을 떠올리곤 했다. 리오타르는 이미 칠십 년대 말 자신의 책에서 ‘포스트모던 시대의 지식‘ 을 제시했다. ‘거대 서사의 종언‘이란 문구는 소설의 형식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근본적인 신뢰상실을 표현한 문구다. 여기서 그가 주목한 ‘서사‘는 정치와 철학이었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두 영역 가운데 어느 한쪽도 자신에게 그 자체로 구속력 있는 ‘합리성‘이 있다고 주장할 수 없었다.
오늘날 우리의 불행이 개인적 실패로 규정될 때가 많다. 실제로는 전적으로 세상과 사회에 대한 타당한 반응일수도 있는데 말이다. 애인이 없는 것 또한 일반적으로 개인의 실패로 인식된다. 매력 결핍, 경제적 빈곤, 정신적 불안정 등으로 보는 것이다. 혼자 사는 사람한테는 늘 이런 식의 억측이 따라다닌다. 특히 동정심과 혐오, 저들보다는 내가 낫지, 하는 은밀한 우월감을 얼굴에 내비치는 사람들 역시 어디에나 존재한다.
우정은 오로지 자유의지에 근거한 유일한 관계이다. 두 사람은 상호 동의하에 다양한 수준으로 교류하고 함께시간을 보내며 서로를 배려한다. 우정은 태어날 때부터 나름의 의식과 의무를 가진 가족 관계와는 다르다. 또한우정은 일반적으로 배타성을 기초로 한 연인 관계의 규칙들과도 전혀 상관없다. 우정은 연인 관계에서 중시되는 욕망과도 전혀 상관없다. 우리는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를 고려해 친구를 선택하며, 반대로 나 역시 그들의 기준에 의해친구로 선택된다.
우리가 가족 관계나 연인 관계와 비교해 우정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이유는 어쩌면 우정을 명확히 규정하는 게매우 힘들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오직 사랑만이 거대 서사를 요구할 수 있다. 우정은 작은 서사들을 수반한다. 미리만들어진 모범 사례들을 마지못해 따라가는 수많은 작은서사들 말이다.
하지만 과연 로맨틱한 연애 없이 혼자서 좋은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친밀함에 대한 우리의 욕구를 과연 우정으로 달랠 수 있을까? 이런 식의 삶의 모델이 과연 사람들한테 얼마나 인정받을 수 있을까? 언젠가 친구들 대부분이배우자나 반려자를 찾고 나만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것 같은 느낌이 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바꿔 말해, 아프지도 않고 거짓말을 하지도 않고 독신생활을 꾸려가는 법을어떻게 배울 수 있을까? 이게 바로 답을 찾지 못한 나의 질문들이었다.
우리가, 특히 혼자 사는 사람이 우정을 쌓는 것은 아마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일 것이다. 현실의 발판을 잃지 않기위해서, 시대의 변화와 증가하는 엔트로피에 조금이라도대항하기 위해서, 그리고 내일의 기회를 잡기 위해서. 또한어쩌면 우정은 자신감과 포기와 수용의 연습이 아닐까? 위압적인 세상의 현실에 직면해 더 이상 상상할 수 없는 미래를 그려보려고 할 때 혹시 우정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아니면 적어도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믿음을 잃고 싶지 않을 때 우정이 아주 약간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정말 내가 그렇게 믿고 있었던 건지 아니면 단지 그렇게 믿고 싶었던 건지 잘 모르겠다.
자부심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그중 몇 가지는 치유 효과가 있다. 다른 것들은 인생에서 거의 극복하기 힘든 장애가 될 수 있다. 나는 내 일에 자부심을 느낄 때가 극히 드물다. 일이 내게 얼마나 많은 고통을 안겨주었는지와는 상관없다. 내가 그 일을 얼마나 잘하는지도 상관없다. 내가 쓴책이 출간되고 나면 나는 그 책을 다시 읽고 싶지 않다. 내글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 의해 쓰였다는 느낌이 들기 전까지 적어도 몇 년 동안은 그렇다. 또는 시간이 아주 많이흘러 어떤 면에서는 실제로 다른 누군가에 의해 그 글이 적힐 때까지는 말이다. 나는 이루고자 했던 많은 것들을 성취했고 그게 얼마나 좋은 것인지, 또 얼마나 감사해야 할 일인지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내가 이룩한 삶에 대해 실제로 자부심을 느껴본 적이 거의 없다.
때로는 그런 행동들이 도움이 된다. 하지만 때로는 그게 강박관념이나 조증으로 변해 정신 상태를 무너뜨리려 한다. 아직 본격적인 우울증이라 할 수는 없지만 우울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그 상태가 몇 주 내지 몇 달 동안 내 삶을 완전히 장악해버린다. 그 단계가 되면 갑자기 모든 게 시들해진다. 일 년중 가장 긴 시간 동안 나를 지탱해주던 자기 환상이 깨져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삶의 근거로 삼고 있는 고의적 망각에 실패한다. 어떤 상태인지 더 잘 설명해 보자면, 그건 마치 중요한 판타지를 상실한 것 같은 기분이다. 결국나는 혼자 사는 내 삶이 좋은 삶이라는 믿음을 버린다.
호숫가에 자리한 보세주르라는 이름의 호텔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훌륭했다. 두 명의 호텔 공동대표는 ‘좋은 체류‘라는 뜻의 이름이 약속한 모든 것을 지켰다. 나는그들의 관대함에 감동했다. 그들은 내게 집기가 구비된 작은 사무실과 호수와 산이 보이는 전망 좋은 침실을 제공했다. 아침이면 침대에 누운 채 해가 뜨는 풍경을 볼 수 있었다. 발코니에 앉아 담배를 피울 때면-사 년 전 다시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 이래 아직 금연에 성공하지 못했다―잔잔한 호수의 수면 위를 유유히 스쳐가는 커다란 흰색 증기선이 보였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겨울 하늘과 눈 덮인산맥을 배경으로 필라투스산과 뷔르겐스톡, 그리고 리기산을 향해 항해 중인 유람선이었다. 그걸 보고 있노라면 세상이 이토록 아름답고 신비로울 수 있다는 것에 절로 감탄이나왔다. 정말이지 엄청난 위로였다.
친밀하거나 밀접한 사이가 아닌 관계들 역시 우리와우리의 심리적 균형에 중요하다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는친밀한 친구와 가족, 동반자로 구성된 범주 안에서만 사는게 아니다. 우리는 훨씬 더 넓은 사회적 범주들 안에서 활동한다. 일반적으로 ‘네트워크‘라고 부르는 이것은 때때로복잡하게 얽혀 있지만 일반적으로 우리 일상에 생각보다훨씬 큰 영향을 미친다."
피어발트슈테터호수 호숫가에서 체류할 때 만난 나의이 새롭고 작은 ‘네트워크‘에서 특히 좋은 인상을 준 태도들 가운데 하나는 기본적이고 사려 깊은 친절이었다. 베를린의 일상에서는 종종 아쉽게 생각했던 부분이다. 친절은종종 지루하고 솔직하지 않은 태도라는 의심을 받는다. 게다가 왠지 고루하고 딱딱하고 시대에 뒤처진 개념 같아서오늘날의 신자유주의 정신에는 맞지 않는다. 만약 사회가당연하게 구성원들을 승자와 패자로 나누면 어쩔 수 없이필요한 사람만 친절한 사회가 될 것이다.
살아오는 동안 나는 이미 많은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입혔다. 때로는 고의로, 때로는 무의식적으로, 때로는 부주의해서, 물론 나 자신도 마음의 상처를 많이 입었다. 내가항상 사람들한테 친절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친절하게 대하려고 노력했다. 우리는 상대방이 보여주는얼굴 뒤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절대 알지 못한다. 다른 사람들이 어떤 인생 행로를 걸어왔는지, 그들이 날마다 무엇과 씨름하는지 절대 알지 못한다. 겉으로만 보면 사람들은 늘 우리가 느끼는 것보다 훨씬 강해 보인다.
자존심 때문에 세상에 감정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나머지 자신은 고통을 전혀 안 느낀다고 스스로 최면을 거는게 고통을 목도하고 그것과 씨름하기보다 훨씬 더 쉽다. 하지만 무릇 감정이란 그게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느끼고받아들이고 극복해야 한다. 혼자 사는 삶은 때로는 아프고때로는 아프지 않다. 제대로 혼자 살기 위해서 때로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한다. 아니면 적어도 새로운 방법이 있을수 있다는 가능성에 마음을 열어야 한다. 때로는 호수나 산을 찾아갈 용기를 내야 한다. 겨울 태양을 향해 고개를 들어야 하고, 나와 함께 그 길을 걸어가고 있는 친절한 사람들에게 의지해야 한다. 자부심에 여러 종류가 있듯이 혼자살 수 있는 방법들 또한 여러 가지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외로움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 법이다.
우정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의 핵심 중 하나는정체성에서 드러나는 동질성이라는 개념이다. 나는 이것을대학 시절 첫 강의를 함께 들은 몇몇 친구들과의 만남에서경험했다. 《니코마코스 윤리학》 이후로 늘 우정은 생각이같은 사람들, 즉 세상을 동일한 방식으로 인식하고, 살아오면서 비슷한 경험을 쌓고, 정치적으로도 동일한 입장을 대변하고, 심리적, 정서적 가치관과 전기적 배경이 비슷한 사람 간의 관계로 정의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진정한 우정은 ‘동질성과 일치‘를 통해 생겨난다. 즉 우정은다른 사람에게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재발견하고, 거꾸로‘친구’에게서 ‘분리된 제2의 자신‘을 발견할 때 가능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