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시를 가르쳐준 선생님이 사물에 지나친 감상을 투여하는 것을 경계하라 했다. "우체통이 외롭게 서 있다‘ 같은 문장을 쓰지 말라는 것이었다. 우체통은 그저 서 있는 것이지 외로운 것은 우리 자신이라며, 또 다른 선생님은 신파를 경계하라 가르쳤다. 잘 직조된 논리와 내적 정합성으로 설득해야지 무작정 나의 감상을 독자에게 강요하지 말라고 했다. 읽는 이보다 쓴 이가 먼저 울어버리면, 그게 바로 신파라며.
나는 버린 옷장을 보며 감상과 신파를 둘 다 획득했다. 옷장은 내장이 텅 빈 채 쏟아지는 빗줄기 아래 외롭게 서 있었고 나는 내가 비워낸 모든 추억과 역사가 서러워 신파적인 눈빛이 되고 말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의 역량을 파악하고 당당하게 결과물을 내놓기까지 많은 경력이 필요했다. 그런데 가장 쉬울 줄 알았던 내 감정에 대한 자신감을 쌓기가 이렇게 어렵다니.
하지만 앞의 두 자신감도 결국 거머쥐었듯 감정 자신감도 차곡차곡 획득하고 싶다. 화를 내도 된다는 타인의 승인 없이도 내 감정에 당당해지고 싶다. 부당한 대우에 좀처럼 화내지 못하고 생각만 빼곡해지는 당신이라면, 이미 숱한 배려를 했을 자신을 믿고 우리 함께 이렇게 외쳐보자.
"나에게 나쁘게 굴면 나쁜 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불안의 파장은 여전히 나의 대기에 은은하게 감돌다 공습경보처럼 몰아친다. 나는 잘 걷다가도 돌연 귀를 막고 비틀거린다. 아마 평생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어지러울 적마다 내 귀를 막아주던 따듯한 손을 떠올린다. 엄마에게는 엄마의 가치관이 있었다. 그 범위 안의 행복이 있었다. 딸이 갔으면 하는 길은 당신이 일평생 쥐고 왔던 지도 안에 있어야 했다. 하지만 긴박한 순간에 탈주하는 딸에게 엄마는 기왕의 관습과 세계관을 넘어 한 인간으로서 공감과 응원을 건넸다. 그인간을 그렇게 빚어낸 인간으로서.
찰나의 마음일지라도, 나는 그것을 믿기로 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꽝! 다음 기회에‘라는 말의 재미있는 점은 ‘꽝!‘ 뒤에 ‘다음 기회가 붙는다는 것이다. 나는 이제 광보다 다음 기회에 집중하기로 했다. 나의 세계는 광 소리를 내며 무너졌지만 세계의 재건은 무너진 자리에서 이루어지리라. 오늘의 충격파를 통해 새로운 시야가 열리리라. ‘빵‘을 ‘짝‘으로 슬쩍 바꿔본다. 이볼 꽉 물고 좌절을 돌파해 ‘자! 다음 기회를 잡고 싶다. 울며쥔 주먹이 더 단단하다고 믿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평일 밤이 되면 매일 우리 집에서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친구가 기다려주고 있다. 그런 밤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반복하며 오늘도 귀가했다. 현관에는 내 것이 아닌 신발이 놓여있고 그것을 보면 늘 두근거린다. 거실 문을 열면 오늘은 대체 어떤 아이가 기다려주고 있을까. 나도 신발을 현관에 벗어놓고 복도를 걸어가 상대를 놀라게 하지 않도록 문을 열었다.
그때 놀란 사람은 신경을 쓰고 있던 나였다. 내 모습을 보고 소파에 앉아 있던 친구는 귀엽게 손을 들었다.
"야아."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망설이기 전에 사교성이 나에게 손을 들게 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