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엄마가 그랬듯이 한동안 창밖을 바라보다가 나의 미자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가 아는 미자는 열세 살에 우리 집에 왔다. 지금 내게 미자 얼굴은 사진 속의 모습으로만 남아 있다.
나는 미자를 잊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꽃이 어지럽게 핀 봄이 되면 미자의 등이 떠오른다. 한때,
내가 그 등에 매달려 있었다. 등 너머에는 맨드라미와 봉선화가 있었고, "저거 봐! 맨드라미 폈다, 봉선화폈다" 자신이 본 것을 꼬박꼬박 말로 옮겨주는 사람의 목소리도 있었다. 미자는 내게 등의 기억을 남겨 줬고,
그것은 온기의 기억이자 사랑의 기억이다. 다시 볼 수없어도, 얼굴을 잊어도, 이야기가 계속되는 한 그런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엄마, 어떤 작가는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의 무언가를 구하기 위해 글을 쓴대."
내 말에 엄마가 눈을 반짝였다.
"그러니까 우리 이야기도 미자의 무언가를 구하기 위한 것인지도 몰라."
엄마가 아기처럼 눈을 감았다.
"봄이 오면 진짜 봉선화 물들여볼까?"
엄마가 미자처럼 수줍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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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촌은 가게에서 생활했다. 우리가 모두 퇴근한 뒤에도 삼촌은 혼자 가게에 남았다. 그 바람에 하나뿐인 가겟방을 삼촌과 나눠써야만 했다. 방의 한쪽 벽에 못 몇 개가 더 박혔다. 삼촌의 바지가 우리의 드레스와 뒤섞여 걸렸다. 우리는 재미삼아 삼촌의 바지주머니에 콘돔을 집어넣거나 헌 팬티를 쑤셔넣고 들뜬 걸음으로 퇴근했다. 한참 후 다시 주머니를 뒤지면 그것들은 여전히 그대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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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응구가 웃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아내와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에게서 수지가 가수가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마음 맞는 사람 몇몇과 지방을 전전하며 노가다 생활을할 때였다. 숙소의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에서는 수지의 이름을 전혀 들을 수 없었다. 며칠 후,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가 병원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밤새 마신 술이 깨기를 기다렸다가 늦은 오후에 아내를 찾아갔다. 아내는 누운 채로 나를 맞았다. 할 이야기가 없어 수지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이야기를 한참 하다보니 아내가 수지를 모른다는 게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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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을 듣자마자 구내식당의 식판이 눈앞에 떠올랐다. 넉넉 또한 양과 다채로운 반찬들 사이에 언제나 끼어 있던 중국산 김치,
중국에서 먹으면 국내산이다 농담하면서 물컹거리며 짓이겨지는배춧잎을 억지로 삼킬 때, 퇴식구에서 숟가락 젓가락은 따로 내놓으라고 외치던 조리사 아주머니가 다가오는 나를 기다리면서 뚫어져라 수저만 쳐다볼 때, 옆구리를 잡힌 채 전혀 ‘미쓰 같지 않다는 소리를 들을 때, 아버지를 잃은 나에게 자칭 아버지라는 사람이 잘 키워주겠다는 말을 했을 때, 돌이켜보니 전부 비슷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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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바라는 것을 함께 도모했던 우리가, 이제는 각자 살아남을 길을 찾기 위해 흩어지는 사람들로 남아야 한다는 걱정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우리 더이상 남겨지는 방식으로 살지 말자.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내가 지금껏 비교적 행복하게 살아왔던건 둔감해서였다고 해두자. 하지만 행복과 둔감이 같은 상태가 아니라는 건 안다. 말하자면 나는 이제 어떤 단어라도 쉽게 입에 올릴 수 있는, 그런 사람이다. 그렇게 잘 살아가려는 사람이다. 호영의 답장이 늦는다. 견디다보면 결국 누군가를 닮게 될 뿐이라는걸 호영은 알까. 엄마가 사다리를 오르더니 지붕의 눈을 털기 시작했다. 나는 장갑을 끼다 말고 서둘러 썼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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